2009. 12. 28. 05:49ㆍ추억 이야기
이 인형은, 뚜레쥬르란 제과점에서 크리스마스 이브에
케잌을 사면 사은품으로 곁들어 준 인형이다.
인형의 긴 팔 안에 안겨져 있는 것은 무릎담요인데,
지금은 내가 사랑하는 그녀의 소유가 되었지만 원래는
내 둘째 아들 녀석이 케잌과 인형의 주인이었다.
이렇게 아들 녀석의 굴욕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것이다.
내게는 두 아들이 있다.
큰 녀석은 이미 군대를 제대했고 작은 녀석은 공익근무를
기다리며 지금 백화점에서 열심히 알바를 뛰고 있는 중이다.
근데 아직 이 두 녀석에겐 여자친구가 없는 모양이다.
그냥 내 짐작이긴 하지만 이런 저런 모든 것을 고려해 볼 때
여자친구가 없는 것이 확실해 보인다.
사실 아빠로서가 아니라 객관적인 입장에서 본다면 두녀석
모두 그다지 미남도 아니고 큰 녀석은 키가 178정도가 되지만
작은 녀석은 아버지인 나보다도 작아서 175정도 밖에 안된다.
행동이나 성격이나 이런 모든 것을 종합해 볼 때 여자들이
그다지 좋아하거나 호감을 느낄만한 타입은 아닌것 처럼 보인다.
그래서 가끔 여자친구도 못 사귀는 맹구같은 녀석들이라고 놀리면,
큰놈은 그냥 대수롭지 않게 '여자 사귀면 돈만 많이 들어요'하고
받아 넘기고 만다. 하지만 작은 녀석은 여자친구를 사귀고 싶은 소망이
강해 보인다. 몇 번이나 곧 생길거라는 자랑을 늘어 놓긴 했지만
아직 성공은 하지 못한 모양이다.
이번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기 전, 같이 근무하는 여자애 하나가
또 녀석의 마음을 설레게 했던 것 같다. 자기만의 착각인지는
모르지만 그 여자애도 자기를 마음에 들어 한다는 정보도 이미
입수를 했다고 했다. 그래서 곧 고백할거라고 자랑스레 말했었다.
나는 녀석의 말에 피식 웃고 말았지만 녀석에겐 어쩌면 최초로
여자친구가 생기게 되는 중대한 일이었던 셈이다.
그리고 크리스마스 이브날 드디어 그 결심을 용기를 내어 실행에
옮겼던 모양이었다. 케잌과 이 인형 사은품을 들고 그 여자애에게
사귀고 싶다는 고백을 한 것이다.
하지만 보기좋게 딱지를 맞고 말았던 모양이었다.
그 다음 날, 나는 냉장고 앞을 굴러 다니는 이 작은 인형을 발견했고
냉장고 안에서는 출처를 알 수 없는 케잌 하나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내가 이 귀여운 인형을 별 생각없이 얼른 내가 사랑하는 그녀에게
가져다 준 뒤에야 나는 녀석이 딱지를 맞은 사연을 들을 수 있었다.
이건 분명 녀석의 굴욕이다.
여자에게 고백을 했다가 딱지를 맞았으니 그 창피한 마음이
어떠했을까...... 그날 친구들과 모여서 술을 꽤 마신듯 했다.
냉장고 앞에는 인형뿐만 아니라 친구들과 밤새 마신 소주병과
탁자 위에는 먹다 남긴 안주의 파편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둘째녀석은 큰 녀석과는 달리, 마음이 참 따뜻한 녀석이다.
인정도 많고 예의도 바른 편이지만, 매사에 덤벙거리거나
건성건성인 큰 녀석과는 성격이 완전히 달라서 나에겐
딸같은 아들인양 여겨지는 그런 녀석이다.
그래서 여자친구가 생기면 다정스럽고 자상하게 잘 챙겨주거나
한 사람만을 위하고 사랑해 줄 그런 녀석인데, 여자애들이 아직
이 녀석의 장점과 매력을 못 알아보거나 아님 아직 인연이 오지 않았거나,
아니면 여자애들이 바라보기에 녀석이 그다지 매력이 없거나
아니면 녀석이 주제 파악을 못하거나 그 중 하나일 것이다.
사랑도 정성과 기다림이 필요한 것인 만큼, 아마 녀석도 좀 더
시간이 흐르고 나면 무조건적인 용기보다는 상대의 마음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정성과 기다림이 필요하다는 진리를 알아가게
될 것이다. 이번의 굴욕이 녀석을 한층 성장시켜서 좀 더 남자답고
깊이가 있는 마음을 지니게 되길 바란다.
그리고 언젠간 꼭 여자친구가 생겨서 나에게 자랑도 하고
또 사랑이 주는 인생의 즐거움도 깨우쳐 가게 되길 바란다.
이 굴욕이 언젠간 꼭 아름다운 꽃이 되길 바란다.
꼭 그렇게 되길 바란다.
그 모습과 과정을 지켜보며 늙어가는 내 모습 또한
나에겐 큰 즐거움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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