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 79호 아미타불과 국보 80호 부처..그리고 여러 국보들~<국립중앙박물관>

2016. 1. 21. 08:30박물관.문화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여러 국보들을 만나고 왔습니다.

그동안 여러 번 박물관을 들르면서 박물관의 어두운 조명과 환경 탓에

카메라에 담아 보기를 주저했던 국보 몇 점을 다시 한 번 카메라에

담아 보고 왔습니다.

 

 


3층 조각공예관에서 만난 국보 79호 아미타불과 국보 80호 부처입니다.

국보 79호의 정확한 명칭은 <황복사 터 금제 아미타 불좌상>이며

국보 80호의 정확한 명칭은 <황복사 터 금제불입상>입니다.

우측이 국보 79호, 좌측이 국보 80호입니다.

 

 

 

 

국보 79호 아미타불의 전체 모습입니다.

섬세하고 화려한 광배를 배경으로 앉아 있는 모습입니다.

 

 

 

 

 

국보 80호 부처의 모습입니다.

아미타불에 비해선 수수한 모습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불꽃 무늬의 광배를

배경으로 서 있는 모습 또한 여전히 화려함과 빼어난 조각 기술을 보여주는

문화재였습니다.

 

 

 

 

국보 79호 아미타불은, 1942년 경주 구황동 삼층 석탑에서 발견된

금동사리함 속에 들어 있었던 불상이라고 합니다.

금동사리함의 외면에 새겨진 글귀에 의하면 692년 효소왕이 사리함을 넣어

석탑을 세웠고, 그 뒤 706년에 성덕왕이 다시 아미타상과 '무구정광대다라니경'1권을

넣었다고 쓰여 있다고 합니다. 이에 따르면 이 불상은 706년에 넣은 아미타상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국보 80호 부처 또한 금동사리함 속에서 함께 발견된 문화재라고 합니다.

머리와 몸체 일부에 주조 기법과 관련된 것으로 보이는 구멍과 땜질 자국이

남아 있다고 합니다.

이 불상은 얼굴 모습, 옷매무새와 옷주름, 대좌 및 광배 표현 등에서 함께 출토된

아미타불보다 오래된 방식을 따르고 있어 692년에 넣어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두 문화재의 모습을 좀 더 가깝게 찍어 보기로 합니다.

불상의 높이는 국보 79호가 12.2cm, 국보 80호가 14cm로 크지 않은

편이었습니다.

 

 

 

 

 

 

 

 

 

 

 

 

 

 

 

 

 

 

 

 

 

 

 

 

 

 

 

 

 

 

 

 

 

 

 

 

 

 

 

 

 

 

 

 

 

 

 

 

 

 

 

 

 

 

 

 

 

바로 옆에는, 국보 119호인 또 다른 부처가 있었습니다.

정확한 명칭은 <'연가 칠년'이 새겨진 금동불입상>이며,

또 다른 명칭으로는 <'연가칠년'명금동여래입상>이 있습니다.

 

 

 

국보 119호 부처는, 경남 의령에서 발견되었으며 광배 뒷면에 새겨져 있는

47글자로 인해 제작 연대를 알 수 있는 불상이라고 합니다.

그 제작 연대로 유추해 본 결과, 현존하는 우리나라 불상 중에서

가장 오래된 제작 연대를 지닌 불상이라고 합니다.

 

 

 

뒷면의 모습입니다. 글자가 또렷하게 새겨져 있습니다.

그 내용을 해석해 보면, 연가(延嘉) 연간의 일곱 번째 해인 기미(己未)년에

고구려의 수도 평양에 있던 동사(東寺)라는 절에서 만들어 유포한 천불(千佛) 중

하나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고 합니다.

 

 

 

 

이 불상들은 조선시대에 제작된 불상들로, 국보나 보물로는 지정되어 있지

않더군요. 조각공예관을 둘러보다가 눈길을 끄는 모습이어서 찍어 보았습니다.

 

 

 

 

 

경기도 남양주시에 있는 수종사 오층석탑에서 출토된 불상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결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국보 95호 고려청자입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문화재로 박물관에 들를 때마다 꼭 사진에

담아보곤 하는 문화재입니다.





정확한 명칭은 <청자 투각 칠보무늬 향로>이며 높이가 15.3cm라고 합니다.

고려 청자 중에서 가장 으뜸이라고 할만큼 아름다운 모습을 자랑하며,

제작 기법에서도 기교의 극치를 보여주는 문화재였습니다.





국보 60호 '사자 장식 향로'입니다.

역시 박물관에 들를 때마다 꼭 사진에 담아보곤 하는 문화재입니다.






정확한 이름은 <청자 사자 장식 뚜껑 향로>이며 다른 이름으로는

<청자사자개향로>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높이가 21.2cm이며 향을 피우면 비어 있는 사자의 몸통을 따라 입으로

향이 나오도록 만들어져 있다고 합니다.

고려청자의 전성기였던 12세기에 만들어진 청자로, 고려청자 특유의 비색과

뛰어나고도 세련된 조형으로 당시 고려 공예의 높은 솜씨를 엿볼 수 있는

청자라고 합니다.



 

눈길을 끄는 또 다른 청자입니다.

무심한 듯 버드나무 한 그루가 그려져 있는, 국보 113호 고려 청자입니다.

정확한 명칭은 <청자 철화 버드나무 무늬 병>이라고 합니다.

 

 

 

 

아무런 치장이나 화려한 조각도 없이 앞 뒤로 이렇게 버드나무 한 그루를

그려 넣은 것이 전부인 청자였습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아름다움은 부족한 편이지만 바라볼 수록 멋스러움과

절제된 세련미가 돋보이는 청자였습니다.

이렇게 독특하게 통형으로 빚어 올린 형태는 청자 중에서도 아주 이례적인

형태라고 합니다.

 

 

 

 

조각 공예관의 불교관 맨 끝에서 만날 수 있는 국보 81호 미륵보살 입상과

국보 82호 아미타불 입상입니다.

두 불상은 경주 감산사 터에서 옮겨온 것으로 광배 뒷면에는 이 불상을

만든 사람과 만든 목적 등이 자세하게 새겨져 있다고 합니다.

 

 

 

 

국보 81호 미륵보살 입상의 모습입니다.

정식 명칭은 <감산사 석조미륵보살 입상>으로 높이가 270cm라고 합니다.

온화한 표정과 허리를 약간 비튼 자세로 서있으며, 표현이 사실적이고

관능적인 모습을 한 통일신라 8세기 불상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합니다.

 

 

 

국보 82호 아미타불 입상의 모습입니다.

정식 명칭은 <감산사 석조아미타불 입상>이며 높이가 275cm라고 합니다.

미륵보살 입상에 비해서 단조로워 보이지만 사실적이고도 섬세하게 표현된

옷주름과 광배의 문양이 돋보이는 불상이었습니다.

 

 

 

미륵보살 입상의 뒷 편에 새겨져 있는 명문의 내용입니다.

---개원 7년 기미년<신라 성덕왕 18년(719)> 2월 15일 중아찬 김지성이

돌아가신 아버지 인장 일길찬과 돌아가신 어머니 관초리 부인을 위하여

감산사와 석조아미타상 1구와 석조미륵상 1구를 삼가 만듭니다---

 

 

 

아미타불의 뒷편에 새겨져 있는 명문의 내용입니다.

---아버지 인장 일길찬이 47세에 돌아가시자 동해 흔지(지금의 포항) 앞바다에

그의 유골을 뿌렸다. 후대에 그를 따르고 사랑하는 사람은 이 착함이 그들을

도울 것이다. 중아찬 김지전(김지성)은 살아 있을 때 이미 이 착한 업을 이루었으므로

성덕왕 19년 4월 22일 김지성이 돌아가자 그를 위해서도 이것을 만든다---

 

 

 

 

측면에서 바라본 미륵보살의 모습입니다.

콧날도 오똑하지 않은 것이 넓적한 얼굴 형에 보살의 생김새가 그리 잘생겨 보이진 않더군요.

수수한 노인네의 얼굴을 하고 있는 듯 보였는데, 어쩌면 이 불상을 만든 김지성이

자신의 어머니의 얼굴을 새겨넣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륵보살에 비해서 아미타불의 모습은 사뭇 다릅니다.

콧날도 오똑하고 봉긋한 얼굴형에 눈을 지그시 내려 감고 근엄한 표정을

짓고 있었습니다.

 

 

 

 

 

두 불상의 모습을 부분부분 나누어 확대해서 찍어 보았습니다.

 

 

 

 

 

 

 

 

 

 

 

 

 

 

 

 

 

 

 

 

 

 

 

 

 

 

 

미륵보살의 왼손입니다.

 

 

 

 

 

 

아미타불의 오른손입니다.

 

 

 

 

 

 

미륵보살의 아랫 부분입니다.

 

 

 

 

 

 

아미타불의 아랫 부분입니다.

 

 

 

 

 

 

 

 

 

 

 

 

 

 

 

 

 

 

 

 

 

이렇게,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여러 국보들을 만나고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