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천년의 신비...국보 191호 신라금관, 국보 192호 금제 허리띠..<국립중앙박물관>

2016. 1. 19. 08:30박물관.문화재



국립중앙박물관에 들러 국보 191호 신라 금관과

국보 192호 금제 허리띠를 카메라에 담아 보았습니다.

정확한 명칭은 <황남대총 북분 금관>과 <황남대총 북분 금제 허리띠>로,

발굴 당시 북쪽 고분에서 출토되었기에 '북분'이란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

국립중앙박물관 신라관에 아래 위로 나란히 전시되어 있는 두 문화재를

오랫동안 바라보며 그 흔적을 남겨 왔습니다.




정면에서 바라본 금관의 모습입니다.

신라 금관 중에서 가장 화려함을 자랑한다고 합니다.






황남대총의 두 고분 중에서 여성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북분에서 출토되었으며

아직 누구의 무덤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무덤의 조성 시기는 4세기 말에서 5세기 초로 추정되며, 이 시기는 아직

신라왕의 호칭이 왕이 아닌 마립간으로 불리던 시기라고 합니다.





금관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는 곱은옥을 확대해서 찍어 봤습니다.

모두 77개의 곱은옥이 금관에 장식되어 있다고 합니다.



























다른 각도에서 찍어 본 금관의 모습입니다.

출(出) 자 모양의 세움장식은 나뭇가지를 형상화한 것이라고 합니다.






옆에서 바라본 금관의 모습입니다.

금관 뒷편의 사슴 뿔 모양의 장식이 두드러져 보였습니다.

이 두 장식은 신라 금관에서 나타나는 특징적인 요소라고 하며, 세움장식은

천상과 지상을 이어주는 매개체로서의 나무와 사슴을 상징화한 것이라고합니다.





왕관 아래에 달려 있는 드리개를 가까이 찍어 본 것입니다.

다른 금관에는 드리개가 두 개 밖에 없는 것과 달리 황남대총 금관에는

드리개가 좌.우로 세 개씩 모두 여섯 개가 달려 있다고 합니다.





드리개의 부분을 다시 확대해서 찍어 본 것입니다.

얇은 금판을 원형으로 오려 낸 뒤 금실로 꼬아서 매달아 놓은 형태였습니다.






금관의 높이는 27.5cm이며 드리개의 길이는 13~30.3cm라고 합니다.

금관의 재질이나 전체적인 형태로 볼때 실제로 머리에 쓰고 활동하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보이며, 부장품으로서 상징적인 의미로 제작된 것이

아닐까 하고 추측을 한다고 합니다.


















국보 191호 황남대총 금관은 아마도 국립중앙박물관의 전시 문화재 중에서

가장 인기있는 문화재일 것입니다.

금관 앞에는 늘 관람객들로 붐비는 편이었습니다.

1973년에서 1975년에 걸쳐 발굴된 황남대총에서 1500년이 넘는 세월을

뛰어 넘어 우리 앞에 그 화려하고도 신비한 모습을 드러낸 금관은, 오래오래

바라볼 수록 오히려 그 아름다움이 더욱 더 빛나게 다가오는 소중한

문화재였습니다.





그리고, 금관 아래에 전시 되어 있는 국보 192호 황남대총 금제 허리띠입니다.

역시 금관 만큼이나 화려함을 자랑하는 문화재였습니다.






허리띠의 앞 부분 모습입니다.







뒷 부분의 허리띠 부분만 찍어 봅니다.







넝쿨무늬가 일정하게 새겨진 정사각형 형태의 과판(띠 구미개)을 이어붙여 놓은 형태로,

총 28개의 과판과 13개의 드리개로 꾸며져 있다고 합니다.






신라사회에서는 무덤의 주인이 착용한 허리띠의 모양과 재질이

곧 사회적 신분과 지위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왕족의 무덤에서는 금으로 화려하게 치장한 허리띠가 예외없이 출토 된다고 합니다.





허리띠 뒷 부분의 전체 모습입니다.

드리개의 끝 부분에는 약통, 손칼, 물고기, 숫돌, 곱은옥 등 다양한

상징물을 매달아 둔 모습이었습니다.















































금관을 보고 나오면서 신라관에서 만난 금제 귀걸이입니다.

역시 신라의 고분에서 출토된 문화재로 정교하고도 화려한 모습을 지녔습니다.

옛 신라인들이 어떻게 저런 귀걸이를 만들 수 있었는 지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습니다.




신라의 문화는 찬란한 황금의 문화였다고 합니다.

발굴되는 무덤마다 황금의 유물이 다량으로 출토된다고 합니다.

그야말로 황금의 제국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화려한 금관과 허리띠가 곁들여진 신라의 장례문화는

6세기 이후의 사회적 변화와 함께 점차 사라졌다고 합니다.

현재 신라 금관은 5개가 넘게 발굴되었으며 그 아름다움과 정밀한 세공 기술에서

전 세계 어떤 금관과 비교해 보아도 그 화려함이 결코 뒤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신라인 들이 어떤 이유로 이토록 대단한 문화재를 만들고 후세에 남겼는 지는

확실히 알 수 없지만, 현재 그 문화재를 마주하고 있는 동안은 형용할 수 없는

경이로움만 가득할 뿐이었습니다.

이렇게,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국보 191호와 국보 192호를 보고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