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3. 12. 08:30ㆍ숲속 이야기
수리산에서 변산바람꽃을 만나고 왔습니다.
작년에 비해서 약 열흘 정도 미리 다녀왔는데, 군락을 이루며 피어있는
모습은 만날 수 없었지만 변산바람꽃의 순수하고도 아름다운 모습은
마음껏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눈에 뜨이는대로 무조건 카메라에 담아 보았습니다.
이렇게, 변산바람꽃을 만나고 왔습니다.
그리고, 변산바람꽃이 수난을 겪고 있는 장면도 함께 보고 왔습니다.
저는, 야생화를 찍어본 경험이 거의 없는 사람입니다.
지난 해에 블로그에 수없이 올라오는 바람꽃들과 노루귀 사진을 보고
문득 호기심이 생겨서 처음으로 천마산과 수리산을 들러 야생화를
찍어본 것이 야생화 사진의 전부입니다.
그래서 올해도 다시 그 꽃들이 보고 싶어서 며칠 전 천마산에 들러
너도바람꽃을 만나고 왔고 그저께 10일과 11일에는 수리산에 들러
변산바람꽃과 분홍노루귀를 보고 왔습니다.
10일에는 혼자 수리산을 찾았지만 11일에는 지인이 동행을 부탁해서
함께 다녀왔는데, 그 지인에게 10일 날 사진을 찍으면서 기억에 남았던
꽃자리를 소개해 주다가 변산바람꽃의 수난도 함께 목격한 것이었습니다.
물론, 저 역시 변산바람꽃의 자생지에 카메라를 들고 찾아가는 행위부터
이미 피해를 입히는 것이지만, 그러나 가능한 꽃을 다치게 하는 행동을
하지 않기 위해 무척 노력하는 편이기도 합니다.
가급적 꽃자리 주변을 변형시키지 않고 꼭 필요하다면 촬영에 방해가 되는
주변의 나뭇가지나 낙엽 몇 장 정도 걷어내는 것이 전부입니다.
가능한 눈에 보이는 그대로의 모습을 찍어오려 노력하는 편입니다.
10일에는 어떤 분이 등산용 스틱을 짚고 자생지 주변을 돌면서 사진을 찍고 있는
사람들에게 수없이 당부를 하고 있더군요.
제발 꽃을 꺾지 말고 이끼도 사용하지 말며 촬영할 때 보자기나 넓은 돗자리를
펴놓고 그 위에 엎드려 사진 찍는 행위도 삼가해 달라고 부탁을 하더군요.
돗자리를 펴고 그 위에 엎드리면 주변의 꽃들을 망가뜨릴 수 있고
막 싹을 틔우는 어린 바람꽃을 다치게 할 수 있다는 설명도 곁들여 주셨습니다.
가능한 이미 길이 나있는 곳만 이용하고 아무 곳이나 발자국을 내지 말아달라는
부탁도 큰 소리로 여러 번 말씀하시더군요.
수없이 밀려드는 사람들로 부터 변산바람꽃 자생지를 보호하려는 노력과
절실함이 간절해 보이는 모습이었습니다.
아래 사진들은 제가 목격한 변산바람꽃의 수난의 모습입니다.
오늘 사진을 정리하다가 마침 그 흔적들이 남아 있어서 이렇게 올려 봅니다.
이 사진은 10일 11시 경쯤 찍은 사진입니다.
아직 햇살이 들지 않은 곳에 이렇게 두 송이의 변산바람꽃이 피어 있더군요.
한송이가 유난히 활짝 피어 있길래 지나치면서 무심히 한 장 찍어 둔 것입니다.
그리고, 노루귀를 보고 다시 이곳에 돌아왔을 땐 오후 2시가 조금 지난
무렵이었는데, 그 사이 키작은 꽃송이가 이미 누군가의 손에 의해 뽑혀진
뒤였더군요.
하지만 더 놀라운 건, 11일 오후에 이곳을 들렀더니 저 꽃송이 마저도
흔적도 없이 사라진 뒤였습니다. 저 싱싱하던 꽃송이가 하루 만에 완전히
시들어 버린 것은 아닐텐데, 분명 누군가의 심술에 의해 뽑혀진 것이겠지요.
이 사진도 10일 오후에 찍은 사진입니다.
이렇게 세 송이가 나란히 아주 이쁘게 꽃을 피우고 있어서 많은 분들의
카메라 세례를 받고 있더군요.
하지만, 11일 오후 다시 들렀을 땐 이미 처참히 망가진 뒤였습니다.
누군가가 일부러 발로 밟았거나 아니면 다른 용도로 훼손한 흔적이 역력하더군요.
꽃대가 완전히 꺾여지고 꽃잎은 땅바닥에 버려진 채 시들어 가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한숨만 나오더군요.
그러나, 더 놀라운 장면이 기다리고 있더군요.
이 사진도 10일에 촬영한 사진입니다. 한 곳에 대략 10송이 가량의 바람꽃이
모여서 피어 있던 멋진 장소였습니다.
그런데 11일 오후 여길 들렀더니, 노란 원 안의 바람꽃 세 송이가 보이질 않더군요.
옆을 보니 어떤 여자분이 열심히 땅바닥에 엎드려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그만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작고 평평해 보이는 길쭉한 돌멩이를 하나 가져다 놓고 그 돌멩이 위에 저 바람꽃
세 송이를 꽃대를 분질러 나란히 모아놓고 열심히 사진을 찍고 있더군요.
그 광경을 보고 있으니 불현듯, 바람꽃이 '참수'를 당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이었습니다.
그 여자분이 그 광경을 만든 것인 지 아니면 다른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장면을
함께 찍고 있는 것인 지는 알 수 없었지만, 기막히게도 그 사진으로 추정되는
변산바람꽃 사진이 11일 밤에 사진찍는 사람이라면 이름만 들어도 대부분은
알만한 어느 유명 카페에 떡하니 올라와 있더군요.
마침, 오늘 자원봉사자로 보이는 여러명의 사람들이 수리산을 찾아와서
이렇게 변산바람꽃을 지켜달라는 호소가 적힌 여러 장의 플랜카드도 걸어 놓고
또 코팅이 되어 있는 주의사항이 적힌 노란색의 용지도 여러 곳에 걸어두고
가셨더군요.
모두들 걱정하는 것은, 현재 이렇게 여러 사람들에 의해 바람꽃이 훼손되면
얼마가지 않아서 자생지가 황폐해져 더 이상 이곳에서 바람꽃을 볼 수 없게
되는 것은 아닐까...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름다운 꽃을 사진에 담으려 하는 욕심은 나무랄 일도 지탄의 대상도 아니겠지만
사진을 찍은 뒤 남들이 자기보다 더 이쁜 사진을 찍을 수 없도록 꽃을 훼손해
버리는 욕심은 아주 못된 심술과 같은 것이므로, 마땅히 지탄 받아야 할 대상일 것입니다.
그나마 수도권에서 변산바람꽃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만날 수 있는 어찌보면
최고의 장소나 다름없는 수리산 자생지가 오래오래 보존되고 또 사람들에게
여전한 즐거움이 될 수 있게 하는 것은, 우리 모두가 못된 욕심을 버려야만
가능한 일일 것입니다.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로 부터 눈총의 대상이 되거나
혐오의 대상이 되는 일은 결코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수리산을 다녀온 후, 착잡한 마음에 이렇게 글을 남겨 봅니다.
제 개인적인 소견이므로, 혹 읽으신 뒤 공감하지 못하더라도 태클은
걸지 말아 주시길 바랍니다.
이상, 변산바람꽃의 수난에 대한 단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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