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11. 20. 07:30ㆍ박물관.문화재
올해 마지막 단풍을 만나기 위해 선운사를 다녀오던 길에
그동안, 여러번 이정표를 마주했음에도 그냥 지나치고 말았던
익산의 미륵사지를 돌아보고 싶어 익산을 향해 차를 달렸습니다.
자동차가 익산 시내로 접어 들 무렵, <왕궁리 오층석탑>이라는
또 다른 이정표가 눈길을 끕니다.
내친김에 저곳도 둘러보자며 방향을 바꿔 오층석탑을 향해
차를 달렸습니다.
갑자기 차가워진 날씨와 서해안에 발효된 강풍주의보 탓인지
왕궁리 유적을 찾은 관광객은 거의 보이질 않더군요.
<왕궁리유적>은 고대 백제의 왕궁이 있던 자리로 추정되는
곳이라고 합니다.
발굴.조사 결과 백제 무왕 시대에 왕궁이 조성되었다가 통일신라
초기에 사찰로 바뀐 것으로 추정되는 곳으로, 그래서 왕궁과 사찰의
유적이 함께 남아있는 특이한 유적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유적지 위에 덩그마니 서있는 석탑 하나...!
바로 왕궁리 오층석탑이었습니다.
정면에서 찍어본 석탑의 모습입니다.
거의 원형의 모습을 보존하고 있는 듯 보이더군요.
바라보고 있자니 저절로 감동이 느껴질만큼 아름다운
모습이었습니다.
몸을 움츠리게 만드는 추위와 손과 코 끝을 시리게 만드는
센 바람도 잠시 잊게 만들 만큼 멋지고도 아름다운 모습이었습니다.
국보 제289호로 지정되어 있는 소중한 문화재로,
높이가 9m이며 미륵사지의 석탑을 본떠 만든 백제계 석탑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하지만 지금도 이 탑의 축조 시기를 놓고 백제와 통일신라, 그리고
고려 초라는 학자들의 견해가 엇갈리고 있다고 합니다.
석탑 주변은 지금도 발굴이 계속 되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곳 저곳에 건물 유적들이 석탑을 에워싸고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석탑을 돌아보고 왕궁리 유적을 떠나기로 합니다.
보면 볼 수록 그 매력이 더욱 더 다가오는 문화재였습니다.
왕궁리 유적에서 미륵사지 까지는 약 5km 정도의 거리였습니다.
다시 차를 몰고 주차장을 빠져 나와 미륵사지를 향해 달려가는데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이번에는 <석불입상>이라는 또 다른 이정표를
마주하게 되더군요.
그냥 지나치기가 아쉬워 이 석불입상 역시 둘러보기로 합니다.
정식 명칭은 <익산 고도리 석조여래입상>이더군요.
보물 제46호로 지정되어 있는 문화재로, 특이한 것은 이 불상과
약 200m 떨어진 곳에 마주보고 있는 또 다른 석불입상이 있었습니다.
마주보고 있는 석불입상의 모습입니다.
두 불상 모두 화려함이나 정교한 조각 솜씨는 찾아 볼 수 없는
소박하거나 단조로운 모습으로, 토속적인 마을의 수호신 모습을
하고 있는 고려시대의 석불이라고 하는군요.
전체적인 크기가 3m도 채 되지 않은 작은 불상이었습니다.
석불입상을 돌아보고 드디어 미륵사지를 향해 차를 달렸습니다.
미륵사지로 향하는 길 옆으로는 단풍이 붉게 물든 메타세콰이어 가로수가
한껏 가을의 정취를 더해주고 있었습니다.
드디어 미륵사지에 도착을 했습니다.
미륵사지를 비롯한 백제의 유적지들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 되어 있다는 것도 이번에 처음 알게 된 사실이었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국보 제11호인 미륵사지의 석탑의 모습은
카메라에 담을 수 없었습니다.
지금 한창 보수 공사 중이어서 가림막 안으로 들어가 석탑의 모습은
볼 수 있었지만 완전한 모습을 사진으로 담을 수는 없었습니다.
보수 공사는 거의 막바지 단계라고 하더군요.
상층부의 보수는 모두 끝이 났고 현재 기단 부분을 보수 중이라는
해설사 분의 설명이 있었는데, 석탑이 온전히 그 모습을 다시
드러낼 때 미륵사지를 다시 찾아와봐야 겠다는... 혼자 만의 다짐을
해 볼 뿐이었습니다.
석탑 대신 주변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 보기로 했습니다.
당간지주와 그 너머로 최근에 지어진 것으로 보이는 9층 석탑이
보였습니다.
보물 제236호로 지정되어 있는 미륵사지 당간지주입니다.
좌.우로 두 기가 있었는데 당간지주란, 절에서 행사나 의식이 있을 때
깃발을 달아 절 앞에 세워 두던 길다란 장대를 당간이라고 하고
그 당간을 세워 두기 위해 절 앞에 설치한 돌기둥을 일컫는 말이라고
합니다.
이 석탑은 <동원 구층석탑>이라고 합니다.
1974년 발굴에 의해 그 존재가 확인된 석탑으로, 출토된 기단석및
여러 부재들을 바탕으로 고증을 거쳐 복원한 석탑이라고 합니다.
높이가 무려 27m가 넘는 석탑이라고 합니다.
현재 보수 중인 석탑이 미륵사지 서쪽에 위치한 서탑(西塔)이며
이 탑은 동쪽에 위치한 탑이란 뜻으로 <동원 구층석탑>이란 이름이
붙은 듯 보였습니다.
참고로, 현재 보수 중인 국보 제11호 석탑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 되고 크기가 가장 큰 '최고(最古), 최대(最大)'의
석탑이라고 하는군요.
탑 너머 좌측으로 보이는 산을 미륵산이라고 부르더군요.
정면에서 찍어본 탑의 모습입니다.
미륵사지에서 발굴된 여러 석재들을 모아 놓은 모습입니다.
석재들의 종류나 크기만 보아도 미륵사의 규모가 얼마나 대단했을 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더군요.
후일을 기약하며 미륵사지를 떠났습니다.
가능한 가까운 시일에 미륵사지의 석탑이 다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 주길 바라는 마음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서울을 향해 열심히 길을 재촉했습니다.
자동차가 미륵사지가 있는 금마면을 육군훈련소가 있는 논산의
연무읍을 지날 무렵, 또 다시 눈길을 붙잡는 이정표가 하나 있었습니다.
<견훤왕릉>이었습니다.
이 이정표 역시 여러번 지나치면서 언젠간 꼭 들러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이번엔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습니다.
견훤왕릉은 시골마을 주변의 어느 야트막한 산 위에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이정표를 따라 오르니, 이렇게 안내판 하나가
쓸쓸한 모습으로 방문객을 맞아주고 있었습니다.
산 위로 길게 이어진 계단에는 낙엽이 수북히 쌓여 있었습니다.
아마도 찾아오는 이가 거의 없는 듯 보이는 광경이었습니다.
계단을 다 오르니, 비석 하나와 함께 능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비석엔 <후백제견훤왕릉>이란 글자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습니다.
견훤왕릉의 모습입니다.
무덤 주위엔 아무런 장식도 없이 커다란 봉분만 있을 뿐이었습니다.
한 때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던 영웅의 무덤이라기엔
한없이 쓸쓸하고 초라해 보이기까지 하는 모습이었습니다.
후백제라는 나라를 세우고 그 나라를 호령했던 왕이었으며,
후삼국 중 가장 강한 세력을 자랑하기도 했던 견훤이었으나
결국 왕위 계승을 둘러싼 자식들 간의 내분으로 인해, 멸망의
길을 걸을 수 밖에 없었던 비운의 인물이기도 했습니다.
자신이 세운 나라를 자신의 손으로 무너뜨릴 수 밖에 없었던
견훤의 심정은 그야말로 참담하기 이를데 없었을 것입니다.
임종 시, 후백제의 도읍지였던 '완산(지금의 전주)이 그립다' 하여
이곳에 무덤을 썼다고 합니다.
실제로 맑은 날은 이곳에서 전주의 모악산이 보인다고 합니다.
어쩌면, 이제는 그 모든 시름을 내려놓고 편히 쉬고 있을 지도
모를 일입니다.
이렇게, 뜻하지 않게 이곳저곳을 돌아보았던 어느 늦가을 날의
하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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