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과 부여국립박물관의 < 백제 금동대향로 >~!

2018. 8. 20. 07:00박물관.문화재



국보 제9호로 지정되어 있는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을 보고 왔습니다.

꼭 한 번은 보고 싶었던 문화재였는데, 마침 이번 여행길에

부여를 마지막 목적지로 정하고 정림사지를 찾아 보았습니다.




정림사지 오층석탑은 백제가 부여로 도읍을 옮긴 후인

6세기 말에 세워진 탑이라고 합니다.

규모가 그리 큰 편은 아니었지만 전체적으로 깔끔하고 단정한

느낌이 드는 아름다운 모습이었습니다.





옛 석탑이나 석불 같은 유물을 볼 때마다 늘 느끼는 것은,

당시에는 현재처럼 돌을 쉽게 깎거나 자르거나 다듬을 수 있는

기계도 없었을 텐데... 어떻게 현재보다도 더 정교하고 매끄러우며

반듯한 모습을 만들 수 있었는 지......

어쩌면 옛 사람들은 우리가 도저히 풀어내지 못할 또 다른 능력을

가지고 있었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오층석탑 뒷편으로 보이는 건물인 강당 안에 모셔져 있는

보물 제108호로 지정되어 있는 불상의 모습입니다.

고려시대의 석불로, 불에 타고 심하게 마모되어 거의 형체만

남아 있는 모습이라고 합니다.





오층석탑에는 역사의 아픈 흔적도 남아 있다고 합니다.

신라와 함께 백제를 멸망시킨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스스로의

공적을 치하하고자 석탑에 여덟 글자를 새겨 넣었는데

이렇게 지금까지 선명하게 그 흔적이 전해져 오고 있다고

합니다.












정림사지를 돌아본 후, 백제 금동대향로를 보기 위해

부여국립박물관으로 향했습니다.

국보 제287호로 지정되어 있는 백제 금동대향로는 박물관의

제2전시실에서 만날 수 있었습니다.




백제 금동대향로의 모습입니다.

박물관의 조명이 너무 어두워 제대로 된 모습을 찍기엔

불가능했지만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가슴 떨리는 그야말로

아름답기 그지없는 문화재였습니다.


무려 약 1300여년의 오랜 세월동안 땅 속에 묻혀 있다가

1993년 겨울 부여 능산리 고분군 근처에서 발굴팀에 의해

드디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문화재로, 고고학적 대발견에

비견될 만큼 굉장한 문화재라고 합니다.




전체적인 모습으로 보면, 앞발을 치켜든 용 한 마리가

연꽃 봉오리를 입에 물고 있는 형상이라고 하며 향로의 꼭대기

부분을 장식하고 있는 새는 봉황이라고 합니다.





향로의 윗 뚜껑에는 여러 인물과 동물 자연의 모습들이

다양하게 묘사되어 있고, 동물들은 실존 동물 외에도 상상의

동물들도 많이 등장한다고 합니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자료를 빌리자면, '윗 뚜껑은 불로장생의 신선들이

살고 있다는 삼신산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5명의 악사,

5마리의 새, 24개의 산봉우리, 6군데의 나무와 12군데의 바위, 폭포,

시냇물이 세밀하게 배치되어 화려함을 뽐내는 것'으로 표현되어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대단하기 그지없는 아름다운 문화재였습니다.

한참동안 금동대향로에 빠져 발걸음을 옮길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문화재라는 인식을 뛰어 넘어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도 손색이 없는

화려함의 극치를 이루는 모습이었습니다.



백제 금동대향로를 돌아본 뒤 찾아간 다음 목적지는 공주의

무령왕릉이 있는 송산리고분군이었습니다.

하지만, 송산리고분군은 무령왕릉을 비롯한 모든 고분의 내부를

보존을 위해 비공개로 하고 입구 근처에 모형전시실을 따로 만들어

고분에 관한 역사적 자료들을 복원해 두었더군요.

마침 땀이 비오듯 흘러 내릴만큼 더운 날씨라, 오히려 시원한

전시실 내부가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송산리고분군모형전시실'이란 간판이 붙어 있는 전시실실의

모습입니다.





그 전시실에서 만난 무령왕의 동상입니다.

백제 동성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무령왕은, 당시 수도였던 한성을

고구려에게 함락당하고 공주로 천도한 뒤, 아직 안정기에

접어 들지 못하고 어수선했던 백제를 다시금 바로 세우고 강국의

대열에 올려놓은 훌륭한 임금이라고 합니다.

키가 8척이나 되고 용모가 아름다웠으며 성품은 인자하고

관대하였다고 왕릉에서 발견된 지석에 기록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무령왕릉은 1971년 기존에 발견되었던 6호분으로 흘러드는

유입수를 막기 위해 배수로 공사를 하던 중 우연히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무덤이 통째로 지하에 있었던 덕에 오랜 세월동안 도굴이나 어떠한 약탈도

당하지 않고 온전하게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낼 수 있었다고 합니다.

발굴 당시 묘비석에 <영동대장군 백제사마왕>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어서

백제 무덤 중 유일하게 주인이 확인된 무덤이기도 하다네요.





송산리고분군을 멀리서 바라본 모습입니다.

해방 이후 고고학의 최대의 발굴로 기록될 만큼 커다란 사건이나

다름없었던 무령왕릉이 잠들어 있던 고분군은 생각만큼 넓거나

규모가 커보이는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무령왕의 초상화를 담아보고 송산리고분군을

떠나왔습니다.

그동안 크게 관심없이 소흘했던 백제의 유적을 눈과 마음으로

담아본 뜻깊은 하루였습니다.


그리고, 길었던 4일 간의 여름 여행을 마무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