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릴 지브란... < 예언자 > ...... 법에 대하여. 자유에 대하여. 이성과 감정에 대하여. 고통에 대하여. 자기를 아는 것에 대하여

2024. 12. 12. 19:00아름다운 글

 

 

 

 

 

 

 

법에 대하여

 

그러자 이번에는 한 법률가가 물었다.

그러면 스승이시여, 우리의 법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는 대답하였다.

너희는 법을 세우기 좋아하면서

또 법을 깨뜨리기를 더 좋아한다.

마치 바닷가에서 노는 아이들이 모래탑을 애써 쌓았다가는

또 웃으면서 허물어 버리는 것처럼.

그러나 너희가 모래탑을 쌓는 동안 바다는

더 많은 모래를 기슭으로 밀어 보내고,

너희가 모래탑을 부술 때는 바다도 또한 너희와 함께 웃더라.

진실로 바다는 언제나 티없이 맑은 것들과 함께 웃는다.

 

그러나 삶이란 바다와 같지 않은 자, 인간이 만든 법이

모래탑이 아닌 자에게는 무어라 할 것인가?

삶이 바위와 같은 자, 또 그 바위를 쪼아 그들 자신의 모습을

새기는 끌이 곧 법인 자에겐?

춤추는 자들을 질투하는 저 절름발이에겐 무어라 할 것인가?

저를 묶는 멍에만 좋다 하고 숲속의 사슴과 노루를 보고는

떠도는 것들이라고 여기는 저 숫소에게 무어라 할 것인가?

제 허물은 못 벗으면서 다른 모든 뱀들에게 벌거숭이이며 

부끄러움도 모르는 것들이라고 소리치는 늙은 뱀에겐?

또 혼인 잔치에 먼저 가서 실컷 먹곤 싫증나면 돌아가면서,

모든 잔치는 다 위법이며 잔치 손님들도 법 위반자라고 떠드는 자에겐?

내 이들에 대하여 무슨 말을 할 것인가?

그들도 햇빛 속에 서 있건만 다만 태양을 등지고 선 것이라는 말밖에?

그들은 다만 자기의 그림자만을 볼 뿐. 또 그들의 그림자가 그들에게는 법이다.

그리고 그들에게 태양이란 무엇인가? 다만 그림자를 던져주는 것일 뿐.

또 법을 따른다는 것은 무엇인가?

땅에 엎드려 자신의 그림자를 쫓아가는 것일 뿐.

 

그러나 너희 태양을 향해 걸어가는 자들아,

땅 위에 그려진 어떤 그림자가 너희를 붙잡을 수 있을 것인가?

너희 바람과 함께 여행하는 자들아,

어떤 바람개비가 너희의 길을 인도해 줄 것인가?

너희가 자신의 멍에를 부수되 다른 누군가의 감옥 문을 부수는 것이 아니라면,

어떤 인간의 법이 너희를 구속할 것인가?

너희가 춤추되 다른 누군가의 쇠사슬에 걸려 넘어지지 않는다면,

어떤 법이 너희를 두렵게 할 것인가?

또 너희가 옷을 찢어 버리되 그것을 다른 누군가의 길에 버리는 것이

아니라면, 누가 너희를 재판할 것인가?

 

오르팰리스 사람들아, 

너희가 북소리를 잠재울 수 있고 거문고 줄을 풀어 놓을 수는 있지만,

누가 과연 저 종달새에게 노래를 하지 말라고 명령할 수 있을 것인가?

 

 

자유에 대하여

 

그 다음엔 한 웅변가가 말했다.

우리에게 자유에 대하여 말씀해 주십시오.

그러자 그는 대답하였다.

성문 곁에서, 또 너희의 집 난로가에서 나는 너희가 꿇어 엎드려

너희 자신의 자유를 숭배하는 것을 보았다.

마치 주인 앞에 스스로 머리 조아려 설령 자기를 죽일지라도

찬양해 마지않는 노예들처럼.

그렇다, 사원의 나무 숲속에서, 성채 그늘 아래서 나는 보았다.

너희들 중 가장 자유롭다고 하는 자가 자유를 마치 멍에와 수갑처럼

차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때 내 가슴은 내 안에서 피를 흘렸다.

왜냐하면 자유를 찾고자 하는 욕망조차 너희의 입을 막는 재갈이 되어서

더 이상 자유가 최후의 목적이며 성취라고 떠들 수 없을 때만이

너희는 비로소 자유로운 것이기 때문이다.

 

낮에 근심이 없고 밤에 욕망과 슬픔이 없을 때

너희가 참 자유로운 것이 아니다.

차라리 그보다 그 모든 것이 너희의 삶에 휘감기는 중에도

그것들을 벗어던지고 얽매임 없이 일어설 때

그때 너희는 자유로우리라.

 

또 너희가 어떻게 낮과 밤을 뛰어넘을 수 있으랴.

너희 깨달음의 새벽에 지난 한낮의 시간을 묶었던 저 사슬을 끊지 않는다면,

사실 너희가 자유라 부르는 것은 그 사슬들 중에서도 가장 강한 사슬인 것을.

비록 그 고리가 햇빛에 반짝거려 너희 눈을 부시게 하더라도.

 

또 자유롭기 위하여 너희가 내버리려 하는 것, 그것이 무엇인가?

곧 너희 자신의 부스러기가 아닌가?

옳지 못한 법을 너희는 내버리려 하는가?

그 법은 너희 손으로 너희 이마에 쓴 것.

너희가 아무리 법률 책을 불사른다 해도,

또 재판관의 이마를 씻고 바닷물을 가져다 퍼붓는다 해도

그것을 지울 수는 없으리라.

또 너희가 쫓아내고자 하는 것이 사나운 임금인가?

너희는 먼저 너희 내부에 세운 그의 옥좌를 부수었나부터 보라.

왜냐고? 아무리 폭군이라고 해도 어떻게 자유인과 긍지인을 다스릴 수 있겠는가?

그 자유 속에 억압이 들어 있지 않고, 그 긍지 속에 일말의 부끄러움도

들어 있지 않다면 말이다.

또 너희는 근심을 벗어 던지고자 하는가?

그 근심은 너희 스스로 선택한 것이지, 남이 너희에게 강요한 것이 아니다.

또 너희가 두려움을 쫓아내고자 하는가?

그 두려움의 자리는 너희 가슴 안에 있지 그 두려운 자의 손에 있지 않다.

 

진실로 모든 것이 너희 존재 속에서 반쯤 뒤엉킨 채 끝없이 돌아가고 있다.

원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꺼려하는 것과 소중히 여기는 것,

쫓아가는 것과 피하고 싶은 것들이.

이 모든 것들이 너희 안에서 한 쌍의 빛과 그림자처럼 달라붙어

돌아가고 있다.

그리하여 한 그림자가 사라지고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되면,

남의 빛은 서성거리다가 또 새로 오는 빛의 그림자가 되어 버린다.

마찬가지로 너희의 자유도 족쇄에서 풀려나면

그 자체가 더 큰 자유의 족쇄가 되어 버린다.

 

 

이성과 감정에 대하여

 

그러자 여사제(女司祭)가 다시 말했다.

우리에게 이성과 감정에 대하여 말씀해 주십시오.

그는 대답하였다.

너희의 영혼은 언제나 싸움터다.

그 위에서 너희 이성과 판단은 감정과 욕망에 대항하여 싸우고 있다.

내가 너희 영혼을 줄 수 있다면, 그리하여 너희 내부의 모든 불화와

갈등을 다 쓸어 버려 하나로 만들고 노래로 변하게 할 수 있다면.

그러나 내 어찌 그렇게 할 수 있으랴.

너희 스스로 중재자가 되지 않는다면,

아니, 너희 내부의 모든 것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너희 이성과 감정은 바다 위를 달리는 너희 영혼의 키와 돛.

돛이나 키 중 어느 하나가 부러져도 너희는 정처없이 표류하거나

바다 한복판에 오도가도 못하고 멈추어 섰을 수밖에 없으리라.

그것은, 이성이란 홀로 다스리게 내버려 두면 경직된 힘이요,

감정이란 제멋대로 두면 스스로 타 없어지는 불길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영혼으로 하여금 이성을 감정의 높이에까지

이끌어 올려 노래 부르도록 하라.

또 이성으로 하여금 감정을 인도하게 하여,

너희의 감정이 날마다 스스로의 부활을 통해 살아가도록 하라.

마치 타고 남은 재 속에서 또 다시 일어나는 불사조처럼.

 

나는 너희가 판단력과 욕망을 너희 집에 온

두 사랑하는 손님처럼 대하기를 바란다.

진실로 너희는 어느 한 손님만을 다른 손님보다 더 높여서는 안 될 것이다.

한쪽만을 더 생각해 주는 사람은 결국 양쪽 모두의 사랑과 믿음을

잃어버리는 법이다.

 

언덕에 올라 은백양 나무 서늘한 그늘 밑에 앉아 멀리 보이는 들과 숲의

평화와 맑음을 즐길 때면, 가슴으로 하여금 고요히 말하게 하라.

"신은 이성 속에 쉬신다."라고.

또 폭풍이 불고 거대한 바람이 숲을 흔들며 천둥 번개가 하늘의 위엄을

드러낼 때면, 그때는 가슴으로 하여금 경외감에 차서 말하게 하라.

"신은 감정 속에 움직이신다."라고.

너희는 신의 품 안의 한 숨결이며, 신의 숲속의 한 잎이니,

너희도 또한 이성 속에서 쉬고 감정 속에서 움직여야 한다.

 

 

고통에 대하여

 

그러자 한 여인이 물었다.

우리에게 고통에 대하여 말씀해 주십시오.

그는 대답하였다.

너희의 고통이란 너희의 깨달음의 껍질이 깨어지는 것.

과일의 씨도 햇빛을 보려면 그 굳은 껍질을 깨야 하듯이,

너희도 고통을 알지 않으면 안 된다.

너희가 만일 날마다 일어나는 살의 기적들을 가슴 속에 경이로움으로

간직할 수 있다면, 너희의 고통도 기쁨 못지 않게 경이롭게 보았으리라.

그러면 들판 위로 지나가는 계절에 언제나 순응했듯이

너희 가슴 속을 지나가는 계절도 즐거이 받아들였으리라.

그리하여 너희 슬픔의 겨울 사이로 고요히 바라볼 수 있었으리라.

 

너희 고통의 대부분은 너희 스스로 선택한 것.

그것은 너희 내면의 의사가 너희의 병든 자아를 치료하는 쓰디쓴 약.

그러므로 그 의사를 믿으라.

그리고 말없이 침착하게 그가 내주는 약을 마시라.

왜냐하면 그의 손이 아무리 맵고 사정없을지라도

저 '보이지 않는 이'의 보다 부드러운 손길에 인도되고 있으므로.

그가 내주는 잔 또한 너희 입술을 태울지라도

저 '도공(陶工)'이 자기의 신성한 눈물로 적신 흙으로 빚은 것이므로.

 

 

자기를 아는 것에 대하여

 

또 한 남자가 말했다.

자기를 아는 것에 대하여 말씀해 주십시오.

그는 대답하였다.

너희의 가슴은 침묵 속에서 낮과 밤의 비밀을 알고 있다.

그러나 너희의 귀는 가슴이 아는 것을 소리를 듣고자 목말라 한다.

생각으로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너희는 말로써 알고자 한다.

너희는 너희 꿈의 벗은 몸뚱이를 손가락을 만지고 싶어 하는 것이다.

 

또 그렇게 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너희 영혼의 보이지 않는 샘은 마침내 솟아올라 소리내며

바다로 흘러가야만 하는 것.

너희 내면의 무한히 깊은 곳에 있는 보물도 너희의 눈앞에 드러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너희들, 미지의 보물의 무게를 결코 저울로 달려고는 하지 말며,

너희의 앎의 깊이를 자와 끈으로 재려고는 하지 말라.

자아(自我)란 잴 수 없는 무한의 바다이기 때문이다.

 

"나는 진리를 발견했노라."라고 말하지 말라.

그보다는 "나는 한 가지 진리를 발견했노라."라고 하라.

"나는 영혼의 길을 찾았노라."라고 말하지 말라.

왜냐하면 영혼이란 모든 길을 다 걷는 것.

영혼은 하나의 길을 따라 걷는 것도, 또 갈대처럼 자라는 것도 아니다.

영혼은 무한 잎새의 연꽃이 피어나듯이 스스로 열리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