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릴 지브란... < 예언자 >...... 집에 대하여. 옷에 대하여. 사고 파는 일에 대하여. 죄와 벌에 대하여

2024. 12. 12. 19:02아름다운 글

 

 

 

 

 

 

 

집에 대하여

 

그러자 이번에는 어떤 돌 일하는 사람이 나와서 말하였다.

우리에게 집에 대하여 말씀해 주십시오.

그는 대답하였다.

성벽 안에 집을 짓기 전에 너희는 먼저 광야에 너희가 상상하던 움막을 지으라.

너희가 황혼녘이면 집으로 돌아오듯이 너희들 속의 떠도는 나그네,

언제나 멀리 홀로 헤매는 나그네도 결국 돌아오리니.

너희의 집은 보다 큰 너희의 육체,

그 집은 햇빛 속에 자라며 밤의 고요 속에 잠든다. 또한 꿈꾼다.

너희의 집이 꿈을 꾸지 않던가?

꿈꾸며 도시를 떠나 숲으로, 언덕 위로 가지 않던가? 

 

내가 씨뿌리는 사람처럼 너희의 집들을 내 손에 거두어 산과 들에

뿌릴 수 있다면, 그리하여 골짜기는 너희의 거리가 되고 초록길은 너희의

골목길이 되어, 너희가 포도밭 사이로 서로 찾아다니고 너희 옷깃에

흙냄새를 품어 돌아올 수 있다면.

그러나 그럴 수 있으려면 아직 멀었다.

너희의 조상들은 두려움 때문에 너희를 너무 가까이 모아 놓았다.

그리고 그 두려움은 좀더 계속되리라. 앞으로도 얼마간 너희의 성벽은

들판에서 너희의 집을 떼어 놓으리라.

 

오르팰리스 사람들아 내게 말해다오.

이 집들 속에 너희가 가진 것이 무엇인가?

문을 잠그고 너희가 지키는 것, 그것이 무엇인가?

너희에겐 평화가 있는가, 너희의 힘을 드러내 줄 고요한 정열인 평화가?

너희는 기억을 가지고 있는가, 마음의 산봉우리들을 이어 주는 반짝이는

둥근 다리에 대한 기억을?

너희에게는 아름다움이 있는가, 나무와 돌로 만들어진 물건으로 부터

너희의 가슴을 이끌어내어 거룩한 산으로 인도해 주는 아름다움이?

말해다오. 너희는 이 모든 것을 너희 집 속에 지녔는가?

그렇지 않으면 편안함과, 편안함에 대한 욕심 뿐인가?

손님으로 찾아와서는 이윽고 주인이 되고, 드디어는 정복자가 되는

저 도둑같은 편안함 뿐인가?

 

그렇다. 그것은 너희를 길들이는 자가 되어 갈고리와 채찍으로

너희를 더욱 큰 욕망의 꼭두각시로 만든다.

그 손길은 비단 같을지라도, 그 속은 무쇠로 만들어져 있다.

그것은 너희에게 노래를 불러 주어 잠이 들게 하나,

그러면서 침상옆에 서서 너희 육체의 존엄성을 비웃는 자이다.

그 자는 너희의 건전한 감각을 업신여겨 금방 깨어질 그릇처럼

엉겅퀴 가시 속에 던져 버린다.

진실로 편안함을 탐하는 마음은 영혼의 정열을 죽이는 것, 그리고는

장례식장으로 웃음을 던지며 걸어가는 것이다.

 

그러나 너희 허공의 아들들아,

잠 속에서도 잠들지 못하는 너희는 덫에 걸리지도, 길들여지지도 말라.

너희의 집은 닻이 아니라 돛대가 되어야 한다.

또 상처를 감추는 번쩍이는 껍질이 아니라 눈을 지키는 눈꺼풀이 되어야 한다.

너희는 문으로 들어가기 위하여 너희 날개를 접어서도 안 되고,

또 천정에 부딪히지 않으려고 머리를 숙여서도 안 되며,

벽이 무너져 내릴까 숨쉬기를 두려워해서도 안 된다.

너희는 죽은 자가 산 자를 위해 만든 무덤 속에 살지 말라.

또 아무리 웅장하고 화려하더라도 너희의 집이 너희의 비밀을 감추어서는

안 되며, 너희의 바램을 가리워서도 안 된다.

왜냐하면 너희 속에 있는 무한한 것은 하늘의 집에만 살기 때문이다.

아침 안개가 그 집의 문이요, 밤의 노래와 고요가 그 집의 창이다.

 

 

옷에 대하여

 

그러자 또 옷짜는 직공이 말했다.

우리에게 옷에 대하여 말씀해 주십시오.

그는 대답하였다.

옷이란 너희의 아름다움을 많이 가리면서도 아름답지 못한 것은 가리지 못한다.

너희는 옷으로 개인의 자유를 얻으려 하지만,

그러나 도리어 그것이 갑옷이 되고 사슬이 됨을 알게 되리라.

너희가 옷을 좀 덜 입고 살을 좀더 내놓아 햇빛과 바람을 맞이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은가?

생명의 숨결은 햇빛 속에 있고 생명의 손길은 바람 속에 있으니까.

 

너희 중 누구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에게 옷을 짜입힌 이는 북풍이다."

나도 말한다. 그래, 북풍이었다.

그러나 그의 베틀은 부끄러움, 그의 실은 연약해진 힘줄이었다.

그리하여 일을 다 마쳤을 때 바람은 숲 속에서 웃었다.

잊지 말라, 부끄러움이란 깨끗지 못한 이의 눈을 가리는 방패일 뿐.

그리고 깨끗지 못한 것이 더 이상 있지 않을 때, 부끄러움이란 마음의 족쇄,

마음의 더러움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또 잊지 말라, 대지는 너희의 맨발의 감촉을 기뻐하고, 

바람은 너희의 머리카락과 장난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음을.

 

 

사고 파는 일에 대하여

 

또 어떤 상인이 말했다.

우리에게 사고 파는 일에 대하여 말씀해 주십시오.

그는 대답하였다.

땅은 너희에게 자기의 모든 열매를 준다.

그러므로 너희가 다만 어떻게 손에 넣을지만 안다면 결코 부족함이 없으리라.

풍요와 만족이란 너희가 땅의 선물을 서로 잘 바꾸는 가운데 있다.

그러나 그 바꿈이 사랑과 부드러운 정의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다만 어떤 자를 탐욕으로, 어떤 자를 굶주림으로 이끌 뿐이다.

 

너희들 바다와 밭과 포도원에서 수고하는 자들이

장터에서 길쌈하는 자, 질그릇 굽는 자, 향료 모으는 자를 만나거든

간절히 빌라. 이 땅을 주관하는 절대 영(靈)에게.

너희 가운데 와서 저울과, 서로의 값을 매기는 셈을 깨끗이 하여 주기를.

또 빈손으로 와서 말로써 너희의 수고를 사려는 자들이 있으면

그들을 너희 거래에 끼이지 못하게 하라.

그런 자에게 너희는 이렇게 말하라.

"자, 우리와 함께 밭으로 가자. 아니면 우리 형제와 함께 바다로 가서

그물을 던지자. 땅과 바다는 우리에게처럼 너에게도 넉넉히 주실 것이다."

 

만일 또 그곳에 노래하는 자, 춤추는 자, 피리부는 자가 오거든

그들의 선물도 팔아 주어라.

그들 역시 열매와 향료를 거두는 자들이며, 그들이 가져온 것도

비록 꿈으로 엮은 것이긴 해도 역시 너희 영혼의 옷이며 밥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너희가 장터를 떠나기 전에 보라, 누가 빈손으로 돌아간 이가 없는가를.

땅을 주관하는 절대 영은 너희 중 지극히 작은 자에게 까지도 그 필요한 것이

채워지기 전에는 바람 위에 평화롭게 잠들지 못한다.

 

 

죄와 벌에 대하여

 

그러자 이번에는 그 성의 재판관 한 사람이 앞으로 나아와 말했다.

우리에게 죄와 벌에 대하여 말씀해 주십시오.

그는 대답하였다.

너희 영혼이 바람 속을 헤매일 때

아무도 지켜주는 이 없이 홀로이기 때문에 너희는 남에게 죄를 짓고,

그래서 또한 너희 자신에게도 죄를 짓는다.

그리하여 그 저지른 죄 때문에 너희는 축복받은 이의 문을 두드려야 하며,

또 도무지 돌아보시는 기색이 없어도 한동안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너희의 신적 자아는 큰 바다와도 같다.

그것은 영원히 더럽혀지지 않는다.

그것은 가벼운 공기처럼 날개가진 자를 들어올린다.

또한 너희의 신적 자아는 태양과도 같다.

그것은 두더지의 길을 모르며 뱀의 구멍을 찾지 않는다.

그러나 너희 속안에는 신적 자아만이 홀로 살고 있지 않다.

너희 속안의 많은 부분은 아직 사람에 불과하며,

또한 아직 사람에 이르지 못한 부분도 많다.

다만 스스로 깨어날 때를 기다리며 잠든 채 안개 속을 헤매는

형상 없는 난쟁이만이 있을 뿐.

그러니 이제 나는 너희 속안의 그 사람에 대하여 말하고자 한다.

죄를 알고 죄에 대한 벌을 아는 것은 안개 속의 난쟁이도,

너희의 신적 자아도 아닌, 바로 그 속안의 사람이기 때문이다.

 

때로 나는 너희가 잘못을 저지른 자를 마치 너희 중의 한 사람이 아니라

전혀 이방인이며, 너희의 세계에 뛰어든 침입자인 듯이 말하는 것을 듣는다.

그러나 내 말하지만, 아무리 거룩하고 성스러운 자라도 너희들

한 사람 한 사람 속에 있는 저 지극히 높은 것보다 더 높이 올라갈 수는 없는 것. 

또 아무리 악하고 약한 자라도 너희들 각자 속의 더없이 낮은 것보다

더 떨어질 수는 없다.

하나의 나뭇잎이 갈색으로 변하는 것도 나무 전체의 묵인 속에서 가능하듯이

죄를 짓는 자도 너희들 모두의 숨은 뜻이 아니면 될 수 없는 법.

너희는 너희의 신적 자아를 향하여 마치 하나의 행렬처럼 함께 나아가는 것이다.

너희는 길이요 또 길 가는 나그네.

그러므로 너희들 중의 누군가가 넘어진다면

그것은 뒤에 오는 이들을 위하여 넘어지는 것,

걸려 넘어지는 그 돌이 거기에 있음을 경고하기 위하여 넘어지는 것이다.

그렇다. 그는 또 저보다 앞서 가는 이들을 위하여 넘어지는 것도 된다.

비록 빠르고 확실한 걸음으로 앞서 갈지라도

아직 그 돌을 치우지 않은 이들을 위하여.

 

또 비록 이 말이 너희 가슴을 무겁게 짓누를지라도 이 역시 사실이다.

죽임을 당한 자, 자신의 죽음에 책임이 없지 않으며

도둑맞은 자, 자신의 도둑맞음에 잘못이 없지 않다.

의로운 자라고 해서 악한 자의 행동에 결백하지 않고

정직한 자라고 해서 흉악한 죄인의 행위에 죄가 없지 않다.

그렇다. 죄인이란 도리어 피해자의 희생물인 경우가 많다.

나아가 죄인이란 때로 죄없고 비난받을 것이 없는 자의 짐을

대신 지고 가는 자이다.

너희는 부정한 자와 정의로운 자를, 악한 자와 선한 자를 나눌 수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마치 검은 실과 흰 실이 함께 짜여지듯이

태양의 얼굴 앞에 함께 서 있기 때문이다.

만약 검은 실이 끊어지면 천 짜는 자는 헝겊 전체를 들여다봐야 하고

베틀까지도 조사해야 하는 것이다.

 

너희 중 누군가 부정한 아내를 재판하고자 한다면

그 남편의 속도 저울에 달아 보고 그의 영혼도 자로 재어 보라.

또 죄인을 채찍질하려거든 그 죄의 대상이 된 자의 정신도 들여다보라.

너희 중 누군가 정의의 이름으로 벌을 내려 

악한 나무에 도끼를 대려 한다면, 그 나무의 뿌리도 살펴보라.

그러면 분명 선과 악의 뿌리, 열매 맺는 것과 열매 맺지 못하는 것의

뿌리가 대지의 말없는 가슴 속에 함께 뒤엉켜 있음을 알게 되리라.

또 너희들, 정의롭게 재판하려는 자들아,

비록 육체적으로는 정직하나 정신적으로는 도둑인 자에게

너희는 어떤 판결을 내릴 것인가?

또 육체적으로는 살인자이나 정신적으로는 그 자신이 살인을 당한 자에게

너희는 어떤 형벌을 내릴 것인가?

또 너희는 어떻게 고소를 할 것인가?

그 행동으로 보면 남을 속인 자요 억압한 자이지만

그 역시 학대받고 모욕당한 자를?

 

또 저지른 죄보다 뉘우침이 이미 더 커진 자를 너희는 어떻게 벌하려 하는가?

뉘우침이란 무엇인가? 너희가 기꺼이 따르는 그 법이라는 것을 통하여

정의를 집행하는 것도 바로 뉘우침을 심어 주기 위해서가 아닌가?

하지만 물론 너희는 죄 없는 자에게 양심의 가책을 심어 줄 수도 없고,

또 죄지은 자의 가슴에서 양심의 가책을 이끌어낼 수도 없다.

누구의 명령 없이도 양심의 가책은 한밤중에 찾아와 사람들을 깨우고

스스로 제 자신을 들여다보게 한다.

그러므로 너희 정의를 알려는 자들아,

모든 행위를 완전한 빛에 비춰 보지 않고 어떻게 정의를 알 수 있겠는가?

오직 그때에만 알게 되리라.

똑바로 섰느니 넘어졌느니 하는 것이 사실은 한 사람이 자기 안에 있는

난쟁이 같은 자아의 밤과 신적 자아의 낮 사이 어스름 속에 서 있는

것이라는 것을.

또 사원의 머릿돌이 결코 바닥에 놓인 가장 낮은 주춧돌보다

높지 않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