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2. 12. 19:04ㆍ아름다운 글
아이들에 대하여
그러자 아이를 품에 안은 한 여인이 말했다.
"우리에게 아이들에 대하여 말씀해 주십시오."
그는 말했다.
너희의 아이는 너희의 아이가 아니다.
아이들은 스스로를 그리워하는 큰생명의 아들 딸이니.
저들은 너희를 거쳐서 왔을 뿐 너희로 부터 나온 것이 아니다.
또 저들이 너희와 함께 있기는 하나 너희의 소유는 아니다.
너희는 아이들에게 사랑은 줄 수 있어도, 너희의 생각까지 주려고 하지말라.
저들은 저들의 생각이 있으므로.
너희는 아이들에게 육신의 집은 줄 수 있으나, 영혼의 집까지 주려고 하지말라.
저들의 영혼은 내일의 집에 살고 있다.
너희는 결코 찾아갈 수 없는, 꿈속에서도 갈 수 없는 내일의 집에.
너희가 아이들 같이 되려고 애쓰는 것은 좋으나,
아이들을 너희같이 만들려 애쓰진 말라.
생명은 뒤로 물러가지 않고, 어제에 머무는 법이 없으므로.
너희는 활이요, 그 활에서 너희의 아이들은 살아있는 화살처럼 날아간다.
그래서 활쏘는 이가 무한(無限)의 길에 놓인 과녁을 겨누고,
그 화살이 빠르고 멀리 나가도록 온 힘을 다하여 너희를 당겨 구부리는 것이다.
너희는 활 쏘는 이의 손에 구부러짐을 기뻐하라.
그 분은 날아가는 화살을 사랑하듯이 또 흔들리지 않는 활도 사랑하기에.
주는 일에 대하여
그러자 이번에는 부자 한 사람이 말했다.
주는 일에 대하여 우리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그래서 그는 대답했다.
너희가 너희 가진 것을 줄 때 그것은 주는 것이 아니다.
참으로 주는 것은 너희가 너희 자신을 줄 때이다.
너희가 가진 것이란 무엇인가? 내일 모자랄까 두려워하여 간직하고
지키는 물건에 지나지 않은가?
또 내일이라는 것은, 순례자들을 따라 거룩한 도시로 가면서
자취도 없는 모래밭에 뼈다귀를 묻어 두는 조심성 많은 강아지에게
내일이 무엇을 가져다 줄 것 같은가?
또 모자랄까 두려워함이란 무엇인가? 두려워함, 그것이 이미 모자람 아닌가?
집에 우물이 가득찼는데도 목마를까 두려워한다면 그 목마름은
영원히 채울 길이 없지 않은가?
세상에는 많은 것을 가졌으나 조금밖에 주지 않는 사람이 있다.
이들은 주되 남이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주기 때문에,
그 숨은 욕심이 그나마의 주는 일마저 추한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또 가진 것이 조금밖에 없으면서 그 가진 전부를 주는 사람이 있다.
이들은 생명을 믿고, 생명의 아낌없이 줌을 믿는 사람이다.
그리하여 그들의 궤짝은 비는 날이 없다.
세상에는 또 기쁨으로 주는 사람이 있으니, 그 기쁨이 바로 이들의 보상.
또 고통 속에 주는 사람이 있으니, 그 고통이 바로 이들의 세례.
그러나 주되 고통도 모르고, 기쁨도 찾지 않으며,
덕을 행한다는 생각도 없이 주는 사람이 있으니,
이들은 마치 저 골짜기의 상록수가 공중에 향기를 날리듯 그렇게 준다.
이런 이들의 손을 통해 신은 말씀하시고, 이들의 눈 속에서
신은 대지를 향해 미소짓는다.
부탁을 받고 주는 것, 그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부탁하기 전에 다만 이해함으로써 주는 것, 그것은 더욱 좋은 일.
그리고 아낌없이 주려는 이에겐 받을 사람을 찾는 기쁨이 주는 기쁨보다 더 크다.
또 너희가 움켜쥐고 있을 만한 것이 무엇인가?
너희가 가진 것은 언젠가는 모두 다 주어야 하는 것을.
그러므로 지금 주라.
주는 때가 너희 뒷 사람의 것이 아니라 너희 자신의 것이 되게 하라.
너희는 자주 이렇게 말한다.
"나는 주리라. 그러나 오직 받을 자격이 있는 자에게만 주리라."
과수원의 나무들, 목장의 가축들은 결코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저들은 자기가 살기 위하여 준다. 주지 않고 아끼는 것은 멸망으로 가는 길이기에.
분명한 것은, 밤과 낮을 맞이할 자격이 있는 사람이면 너희로 부터
무엇이나 받을 자격이 있다.
생명의 큰 바다에서 마실 만한 사람이면, 너희의 작은 시냇물로
그 잔을 채울 만하다.
또한 받을 줄 아는 저 용기와 자신감, 아니, 그보다도 받아주는
저 자비심 외에 무슨 자격이 더 필요한가?
또 남의 가슴을 찢고 자존심을 벌거벗겨서 그들의 형편없이 된 가치와
부끄러움 모르는 자존심을 바라보는 너희는 대체 누구인가?
무엇보다 먼저 너희 자신이 줄 자격이 있는가, 주는 심부름꾼이 될 자격이
있나를 생각하라.
사실은 생명이 생명에게 주는 것이요, 스스로 주는 자라고 생각하는
너희는 하나의 증인에 불과할 뿐.
그리고 너희 받는 자들아,
물론 너희는 모두 받은 자이지만, 얼마나 감사해야 할까를 생각지 말라.
그러면 너희 자신에게도, 주는 자에게도 멍에를 씌우게 된다.
그보다 주는 자와 함께 그의 선물을 날개삼아 날아 오르라.
지나치게 빚진 생각을 하는 것은, 아낌없이 주는 땅을 어머니로 삼고
신을 아버지로 삼는 그의 넓은 마음을 의심하는 일이 된다.
먹고 마심에 대하여
그러자 이번에는 여관 주인인 한 노인이 말했다.
우리에게 먹고 마심에 대하여 말씀해 주십시오.
그래서 그는 대답했다.
너희가 대지의 향기로만 살 수 있고, 풀처럼 햇빛으로만 살 수 있다면.
그러나 너희는 먹기 위하여 죽여야만 하고, 마른 목을 축이기 위해
갓난 것에게서 어미의 젖을 뺏아야만 한다.
그러므로 하나의 예배 행위가 되게 하라.
또 너희의 식탁을 제단으로 삼아, 그 위에서 산과 들의 깨끗하고 순결한 것들이
너희 속안의 더 깨끗하고 순결한 것을 위해 희생되도록 하라.
너희가 짐승 하나를 죽일 때는 마음 속으로 그 짐승에게 이렇게 말하라.
너를 죽이는 바로 그 힘으로 나 역시 죽임을 당하며, 나 또한 먹히운다.
너를 내 손에 인도해 준 그 법칙이 또 나를 더 힘있는 손에 인도할 것이기에.
너의 피나 나의 피나 다른 것이 아니라, 하늘 나무를 키우는 수액일 뿐.
또 너희가 사과를 한 입 깨물 때에 그것에게 말하라.
너의 씨앗이 내 몸 속에서 살아있을 것이며, 너의 미래의 싹이 내 가슴속에서
피어나리라.
그리하여 너의 향기가 내 숨결이 되리라.
그리하여 우리는 함께 온 계절을 즐기리라.
또 가을이 되어 포도주를 짜기 위해 포도밭에서 포도 열매를 따 모을 땐
마음 속으로 이렇게 말하라.
나 역시 하나의 포도밭과 같으니, 나의 열매 또한 포도주 짜는 기계 속으로
거두어지리라.
그런 다음 나 역시 내 포도주처럼 영원한 그릇에 담겨지리라.
그리하여 겨울이 되어 그 포도주를 따를 때면,
잔마다 하나의 노래가 너희 마음 속에 있게 하라.
그리고 그 노래 속에 그 가을날과 포도밭과 포도주 짜던 추억을 잊지 말라.
일에 대하여
그 다음은 농부 한 사람이 물었다.
우리에게 일에 대하여 말씀해 주십시오.
그러자 그는 대답하였다.
너희가 일을 하는 것은 대지와, 또 대지의 영혼과 발걸음을 맞추기 위해서다.
게으름이야말로 계절을 외면하는 것이며, 장엄하고도 자랑스럽게 영원을
향해 나아가는 생명의 행렬에서 벗어나는 길이기에.
너희가 일을 할 때 너희는 한 개 피리요,
그 피리 속으로 시간의 속삭임이 음악으로 변해 울려 퍼진다.
남들이 모두 한데 어울려 노래를 부르는데
너희들 중 누가 혼자서 벙어리 갈대 노릇을 하고 싶겠는가?
너희는 언제나 일이란 재난과 같은 것이요,
노동이야 말로 불행이라는 말을 들어왔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일을 할 때는 대지의 가장 깊은 꿈의 한 조각을 실현하는 것이다.
그 꿈이 처음 생겨났을 때부터 너희 몫으로 남겨진 그 한 조각을.
또 일을 통해서만 너희는 진실로 생명을 사랑하게 되며
또 일을 통해 생명을 사랑하는 길만이 생명의 가장 깊은 비밀을
알게 되는 길이다.
그러나 만일 너희가 괴로운 나머지 세상에 태어남을 고통이라 하고
육신으로 살아감을 너희의 이마에 씌어진 저주라 한다면,
그렇다면 나는 너희에게 대답하리라.
너희들 이마에 흐르는 땀만이 거기에 씌어진 저주를 씻어 줄 것이라고.
너희는 또 인생이 암흑이라는 말을 들어 왔으며,
삶에 지친 나머지 너희 역시 삶에 지친 자들의 말을 되풀이 한다.
그러나 나는 말한다.
정열이 없을 때 인생은 진실로 암흑이며,
또 모든 정열은 깨달음이 없는 한 장님에 불과하다.
또한 모든 깨달음은 일하지 않는 한 쓸모 없는 것이며,
모든 일은 사랑이 없는 한 헛된 것이다.
너희가 사랑으로 일할 때에 너희는 너희 자신을 스스로에게 붙들어 매고,
또 너희 서로끼리 붙들어 매고, 마지막엔 신에게 붙들어 매게 된다.
그러면 사랑으로 일함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너희의 심장에서 실을 뽑아 옷을 짜는 것이다.
마치 사랑하는 이가 그 옷을 입기라도 하듯이.
그것은 애정으로 집을 짓는 것이다.
마치 사랑하는 이가 그 집에 살 것 처럼.
그것은 정성으로 씨를 뿌려서 기쁨으로 거두는 것이다.
마치 사랑하는 이가 그 열매를 먹기라도 하듯이.
그것은 너희가 만드는 모든 것들 속에 너희 자신의 영혼의 숨결을 불어 넣는 것.
그리하여 모든 축복받은 죽은 자들이 너희 주위에 서서 너희를 지켜보고
있음을 깨닫는 것이다.
나는 때때로 너희가 마치 잠꼬대처럼 하는 말을 들었다.
"대리석을 가지고 일하면서 돌 속에서 자신의 영혼의 모습을 발견하는
자는 땅을 가는 자보다 더 귀하고, 무지개를 잡아 헝겊 위에 인간의 형상을
그려내는 자는 우리의 발에 신는 신발을 만드는 자보다 더 높다."
하지만 나는 말한다. 잠 속에서가 아니라 활짝 깬 대낮의 정신으로.
바람은 키 큰 참나무라 해서 하찮은 풀잎보다 더 다정하게 속삭이지 않는다.
또 자신의 사랑으로 바람소리를 변화시켜 더 다정한 노래로 만드는
자야말로 위대한 사람이다.
일은 사랑이 눈으로 볼 수 있게 나타난 것.
너희가 만일 사랑으로 일하지 못하고 싫은 마음으로 일할 수 밖에 없거든
차라리 일을 버리고 사원 문앞에 앉아, 기쁨으로 일하는 이들에게 구걸이나 하라.
왜인가? 너희가 만일 무관심 속에서 빵을 굽는다면, 너희는 인간의 배고픔을
반밖에 채우지 못하는 쓴 빵을 굽는 것이고,
또 원한에 차서 포도를 밟는다면, 너희의 원한이 그 포도주 속에
독을 뿜을 것이며,
또 너희가 천사처럼 노래하면서도 자신이 그 노래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너희는 사람들을 귀멀게 하여 낮의 소리, 밤의 소리를 듣지 못하게 할 뿐이다.
슬픔과 기쁨에 대하여
그 다음에는 한 여인이 말했다.
우리에게 슬픔과 기쁨에 대하여 말씀해 주십시오.
그러자 그는 대답했다.
너희의 기쁨은 가면을 벗은 너희의 슬픔.
너희의 웃음이 떠오르는 바로 그 우물이 때로는 너희의 눈물로 채워진다.
또 어찌 그렇지 않을 수 있겠는가?
슬픔이 너희의 존재 속으로 깊이 파고들수록,
너희는 더 많은 기쁨을 거기에 담을 수 있다.
너희의 포도주를 담는 그 잔이 바로 도공의 가마 속에서 구워진
그 잔이 아닌가?
너희가 기쁠 때 너희 가슴 속을 깊이 들여다보라. 그러면 알게 되리라.
너희에게 슬픔을 주었던 바로 그것이 너희에게 기쁨을 주고 있음을.
너희가 슬플 때에도 가슴 속을 다시 들여다보라.
그러면 너희에게 기쁨을 주었던 바로 그것 때문에 너희가 지금 울고 있음을
알게 되리라.
너희들 중 어떤 이는 "기쁨은 슬픔보다 위대하라."고 말하며,
또 어떤 이는 "아니다, 슬픔이야 말로 더 위대하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말한다. 그 둘은 서로 나눌 수 없는 것.
그들은 언제나 함께 오며, 하나가 너희와 함께 식탁에 앉아 있으면,
기억하라, 다른 하나는 너희의 침대에서 잠들고 있다.
진실로 너희는 기쁨과 슬픔 사이에서 저울추처럼 매달려 있다.
너희가 텅 비어 있을 때에만 너희는 정지하여 균형을 이룬다.
저 보물지기가 자신의 금과 은을 달고자 너희를 들어 올릴 때,
너희의 기쁨, 또는 너희의 슬픔은 오르내리지 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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