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릴지브란... < 예언자 >...... 쾌락에 대하여. 아름다움에 대하여. 종교에 대하여. 죽음에 대하여

2024. 12. 12. 18:53아름다운 글

 

 

 

 

 

 

쾌락에 대하여

 

그때 일년에 한 번씩 그 도시를 방문하는 은자가 나와서 말했다.

저희에게 쾌락에 대하여 말씀해 주십시오.

알무스타파는 대답했다.

쾌락은 자유의 노래, 하지만 그것이 자유는 아니다.

쾌락은 너희의 갈망이 꽃피는 것, 하지만 그것이 열매는 아니다.

쾌락은 정상을 향해 소리치는 심연, 하지만 쾌락은 심연도 정상도 아니다.

쾌락은 날개를 새장에 가두는 것이지만 공간은 막혀 있지 않다.

아! 참으로 쾌락은 자유의 노래.

내 기꺼이 너희로 하여금 가슴 가득히 쾌락을 노래하게 하리라.

그래도 나는 노래 속에서 너희 가슴을 잃게 하지는 않으리.

 

너희 젊은이 중 어떤 이는 쾌락이 모두인 것처럼

그것만을 찾아 다니며, 그로 인해 심판받고 비난받기도 하는구나.

나는 그들을 심판하거나 비난하지 않으리라.

나는 그들로 하여금 쾌락을 찾게 하리라.

왜냐하면 그들이 쾌락을 구할 때 결코 쾌락만을 찾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쾌락의 일곱 자매, 그들 중 가장 못한 자도 쾌락보다 휠씬 더 아름다우니,

너희는 뿌리를 캐려고 땅을 파다가 보물을 주운 사람의 이야기를

듣지도 못했는가?

 

또한 너희 노인들 가운데 어떤 이는 취중에 저지른 잘못처럼 쾌락을 회상한다.

하지만 후회란 마음의 징벌이 아닌 마음의 흐림.

여름날의 수확처럼 그들은 감사로써 쾌락을 회상해야 하리라.

하지만 후회가 위로가 된다면 그들로 하여금 위로받게 하라.

 

그리고 너희 중에는 쾌락을 찾을 만큼 젊지도,

회상에 잠길만큼 늙지도 않은 사람이 있다.

그들은 탐구와 회상이 두려워 쾌락을 피한다.

영혼을 무시하거나 죄짓지 않기 위해서.

하지만 도피 속에도 쾌락은 있는 것.

비록 떨리는 손으로 뿌리를 캐더라도 보물을 찾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내게 말해 다오. 영혼을 거역할 수 있는 자가 누구인가?

나이팅게일이 밤의 고요를 거역하는가? 아니면 반딧불이 별을 가리는가?

그리고 불꽃이, 연기가 바람을 괴롭힐 것인가?

그대는 영혼이 막대기로 휘저을 수 있는 연못이라고 생각하는가?

때때로 그대는 스스로 쾌락을 거부하면서도 그 갈망을

존재 깊숙히 감추어 둔다.

오늘은 잊은 듯하지만 내일을 기다리고 있음을 누가 알랴?

육신조차 상속받은 쾌락과 그 당연한 요구를 알고 있으니

이를 짓밟지 못하리라.

너희 육신은 너희 영혼의 하프.

감미로운 음악을 울릴 것인지 시끄러운 소리를 낼 것인지는 너희 손에 달렸다.

이제 너희는 마음속으로 묻는다.

"저희가 쾌락 속에서 무엇이 선이며, 악인지를 구별할 수 있습니까?"

너희의 정원과 들로 가 보라.

그러면 꽃으로 부터 꿀을 모으는 벌의 쾌락을 알게 되리라.

벌에게 꿀을 주는 것 또한 꽃의 쾌락이리니,

벌에게 꽃은 생명의 샘.

그리고 꽃에게 벌은 사랑의 심부름꾼. 그리하여 꽃과 벌 모두에게

쾌락을 주고받는 것이 하나의 요구이며 황홀경이니.

오르팰리스 사람들이여, 꽃과 벌처럼 기뻐하라.

 

 

아름다움에 대하여

 

그러자 한 시인이 말했다.

저희에게 아름다움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그리하여 그가 대답했다.

"너희, 어디에서 아름다움을 찾을 것인가? 아름다움 스스로가

길이 되고 안내자가 되지 않는다면 어떻게 아름다움을 찾을 것인가?

아름다움 스스로 너희 말을 엮지 않는다면 어떻게 아름다움에 대해

말할 것인가?"

 

고통받은 이와 상처받은 이는 말한다.

"아름다움은 상냥하고 자비로운 것. 스스로 누리는 축복에

조금 수줍은 젊은 어머니처럼 아름다움은 우리들 사이를 거닌다."

또한 정열적인 이는 말한다.

"아니, 아름다움이란 강하고 두려운 것. 폭풍우처럼 아름다움은

우리 발 아래의 대지와 머리 위의 하늘을 뒤흔드는 것."

지치고 피곤한 이는 말한다.

"아름다움이란 부드러운 속삭임.

아름다움은 우리 영혼 속에서만 말한다.

마치 그림자가 무서워 떨고 있는 가느다란 빛처럼

아름다움의 목소리는 우리의 침묵을 따르는 것."

그러나 불안한 이는 말한다.

"우리는 산 속에서 아름다움의 외침 소리를 들었노라.

그리고 그와 더불어 말발굽 소리, 날개치는 소리, 또한

사자의 울부짖는 소리도 들었노라."

 

밤이 오자 도시의 파수꾼은 말한다.

"아름다움은 동쪽의 새벽빛과 더불어 솟아 오르리라."

한낮에 노동자와 나그네는 말한다.

"우리는 아름다움이 석양의 창문으로부터 대지를 향해

몸을 구부리고 있는 것을 보았노라."

한겨울 눈 속에 갇힌 이는 말한다.

"봄이 오면 아름다움은 언덕 위로 뛰어오를 것이다."

그리고 여름의 뙤약볕 밑에서 곡식을 거두어 들이는 이들은 말하기를,

"우리는 아름다움이 낙엽과 함께 춤추는 것을 보았으며

아름다움의 머리카락 사이로 눈발이 휘날리는 것도 보았노라."

이 모든 것이 너희가 아름다움에 대해 말해 온 것.

하지만 너희는 아름다움이 아니라 불만족스러운 욕구에 대해

말한 것이 아닌지.

아름다움은 욕구가 아니라 황홀경.

아름다움은 목마름에 타는 입술도 아니며 앞으로 내미는 빈손도 아니다.

오히려 불타는 가슴이며 매혹된 영혼인 것이다.

아름다움은 너희가 보았던 영상이 아니며 너희가 들었던 노래도 아니다.

아름다움은 두 눈을 감아도 보이는 영상이며 두 귀를 막아도 들리는 노래.

아름다움은 주름진 나무껍질 속을 흐르는 수액도 아니며,

날카로운 발톱에 달린 날개도 아니다.

아름다움은 항상 꽃이 피어 있는 정원이며

언제나 날아다니는 천사의 무리인 것을.

오르팰리스 사람들이여,

아름다움은 신성한 얼굴을 가린 베일을 벗어 버린 삶의 모습이다.

하지만 너희는 삶이면서 또한 베일.

아름다움은 홀로 거울을 응시하고 있는 영원이다.

하지만 너희는 영원이며 또한 거울.

 

 

종교에 대하여

 

그러자 한 늙은 사제가 말했다.

저희에게 종교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그리하여 그가 대답했다.

내가 오늘 그것말고 다른 무엇을 말했단 말인가?

모든 행위와 묵상이 종교가 아닌가?

하지만 손으로 돌을 깎고 베틀을 만지는 동안에도 영혼에서 솟아나는

놀라움과 경탄이 없다면 그것은 행위도 묵상도 아니다.

어느 누가 행위와 신앙을, 직업과 신념을 나눌 수 있는가?

누가 시간을 뿌리며 "이것은 신을 위한 것이고 이것은 나를 위한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영혼을 위한 것이며 이것은 육체를 위한 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가?

 

모든 시간은 자아에서 자아로 허공을 나는 날개이다.

가장 좋은 옷으로서의 도덕을 입으려는 이는 벌거벗는 것이 나으리라.

바람과 햇빛도 그의 살에 어떤 구멍도 만들 수 없으리라.

행위를 도덕에 묶는 이는 지저귀는 새를 새장 속에 가두는 것.

가장 자유로운 노래는 막대기나 줄을 타고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열렸다가 곧 닫히는 창처럼 예배드리는 이, 그런 이는

아직 새벽에서 새벽으로 창이 열리는 영혼의 집에 가보지 못한 자이다.

 

나날의 삶이야말로 너희의 사원이며 종교.

거기에 들어갈 때마다 너희의 모든 것을 가지고 가라.

쟁기와 풀무, 그리고 망치와 피리, 필요에 의해서든 기쁨을 위해서든

너희가 만들었던 모든 것을 가지고 가라.

왜냐하면 몽상 속에서는 너희가 성취한 것 이상으로 오를 수 없으며

너희가 실패한 것 이하로 내릴 수도 없기 때문.

그리고 모든 사람과 함께 가라.

왜냐하면 너희는 그들의 희망보다 높이 날 수 없으며

그들의 절망보다 낮게 너희를 낮출 수도 없기 때문이다.

만약 너희가 신을 알고자 한다면 수수께끼 푸는 사람이 되지 말라.

그보다 너희의 주위를 둘러보라.

그러면 그분이 너희 아이들과 놀고 있는 것을 보게 될것이니.

하늘을 바라보라.

그러면 그분이 구름 속을 걸어다니며, 번개 속에서 팔을 뻗고

빗속에서 내려오시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너희는 그분이 꽃 속에서 미소지으며 나무들 사이에 서서

손을 흔드는 것을 보게 되리라.

 

 

죽음에 대하여

 

그러자 이번에는 알미트라가 말했다.

이제 저희는 죽음에 대해 묻고자 합니다.

그리하여 그가 대답했다.

너희는 죽음의 비밀을 알고자 한다.

하지만 너희가 삶의 한가운데서 죽음을 찾지 않는 한

어떻게 그것을 알 수 있으랴?

밤에만 보이는 눈을 가진 올빼미는 낮에는 눈이 멀어 빛의

신비를 벗길 수 없다.

만약 너희가 진실로 죽음의 영혼을 볼 수 있다면,

생명의 육신을 향해 너희 가슴을 활짝 열라.

강과 바다가 하나인 것처럼 삶과 죽음은 하나,

너희의 희망과 욕망의 심연에 저 세상 침묵의 지식이 누워있다.

마치 눈[雪]밑에서 꿈꾸는 씨앗처럼 너희 가슴은 봄을 꿈꾼다.

꿈을 믿으라, 그 속에 영원에의 문이 숨겨져 있다.

죽음에 대한 너희의 두려움은, 자기에게 영광스럽게 내려진

왕의 손길 앞에서 양치기가 떠는 것과 같은 것이니,

양치기의 떨림은 왕의 은혜를 입은 기쁨을 나타내는 것이 아닌가?

그럼에도 그가 떨기를 두려워하겠는가?

죽음이란 바람 속에서 알몸으로 서서 태양 속으로 녹아드는 것이 아닌가?

숨이 멈춘다는 것은, 끊임없는 조수(潮水)로부터 벗어나

자유롭게 숨쉬는 것이 아닌가?

죽음은 영혼이 솟아올라 가없는 신을 찾는것이 아닌가?

오로지 너희는 침묵의 강물을 들이킬 때 감동어린 노래를 부르리라.

그리고 너희는 산꼭대기에 이르렀을 때에야 오르기 시작하리니.

그리하여 대지가 너희의 손발을 요구할 때,

그때에야 비로소 너희는 진실한 춤을 추게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