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1. 29. 08:15ㆍ세상 이야기
철원으로 두루미를 만나러 가면 늘 백마고지전적지 앞을
지나쳐 가곤 했었는데, 이번엔 그냥 지나치지 않고 들러보기로 합니다.
주차장으로 들어서니 주말이지만 날씨가 추워서인지 방문객의 모습은
거의 보이지 않고 한산한 모습이었습니다.
차에서 내리니 날씨는 좋았지만 매서운 바람이 옷깃을 파고 듭니다.
천천히 백마고지전적지를 돌아보며 그 풍경을 카메라에 담아 보았습니다.

주차장을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만나는 백마의 형상입니다.
주차장 한가운데에 하늘을 향해 도약하는 모습으로 세워져 있었습니다.

백마고지전적지 입구에서 바라본 전체 모습입니다.

입구에는 이렇게 백마고지전적지임을 알리는 표시석도 세워져 있더군요.
표시석 옆에는 백마고지에 관한 안내판도 세워져 있었습니다.
그 안내판의 전문을 옮겨 봤습니다.
< 철원군 북방에 있는 백마고지는 6.25 동란 당시 피비린내 나는 격전지였다.
1952년 10월 6일 중공군의 대공세에 의해 10일간이나 계속 된 백마고지 전투는
약 30만발의 포탄이 이 지역에서 사용되었으며 고지의 주인도 24번이나 바뀌었다.
이 전투에서 1만 4천 여명의 사상자를 낸 중공군 2개 사단이 와해되었으며.,
국군 제 9사단은 백마고지 전투의 대승을 계기로 백마사단이라고 명명 되었다.
격렬했던 전투 끝에 남은 흙먼지와 시체가 뒤섞여 악취가 산을 덮을 정도였고,
서로의 포격에 의해 고지의 본래 모습을 잃어 버렸는데 마치 백마가 옆으로
누워있는 형상이라고 하여 백마고지로 불리게 되었다.
당시 이 백마고지 사수를 위해 용감하게 싸운 국군 제 9사단 장병의 넋을
추모하기 위해 이곳에 백마고지 전적비가 건립되었다.
이 비에는 당시 전투의 격렬함과 많은 사람이 조국의 수호신으로
산화했음을 알려 주는 비문이 새겨져 있다. >

표시석 만을 찍어 본 모습입니다.
표시석 받침에는 이 탑의 건립에 관한 글이 적혀 있었습니다.
< 이 백마고지 전적지는 보병 제 5사단 장병들이 선배 전우들의 숭고한
호국정신과 위훈(偉勳)을 영원히 기리기 위해 온 정성을 다하여 조성하였음을
여기 기록으로 남긴다. 1990. 5. 3. 보병 제 5사단 사단장 소장 김봉찬 >

태극기가 줄지어 늘어서 있는 길을 따라 전적지를 향해 걸었습니다.

넓은 공터가 나타나고, 바람에 펄럭이고 있는 커다란 태극기와 함께
여러 구조물들이 보였습니다.

가장 먼저 방문객을 맞이하고 있는 구조물은 '백마고지위령비'였습니다.

백마고지 전투는 10일에 걸쳐 12차례의 전투를 치르면서 점령과 탈환을
24회나 번복할 만큼 치열한 전투였다고 합니다.
전투를 치르는 동안 중공군 사상자는 14,000여 명을 넘었고 국군도 무려
삼천 명이 넘는 사상자가 발생했는데, 그 중 전사자는 844명에 달했다고 합니다.
그야말로 참혹하기 그지없는 전투였을 것입니다.


위령비 아래에는 위령비 건립에 관한 취지와 전사자들의 넋을 위로하는
짧은 비문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전사자 844명의 이름이 계급과 함께 새겨져 있는 비석의 모습입니다.

위령비 뒷편에는 <백마의 얼>이란 제목의 모윤숙 시인의 시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위령비를 지나니 기념관이 나타났습니다.
기념관은 길의 좌우로 동관과 서관으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먼저 동관의 모습입니다.
백마고지 전투를 날자 별로 기록한 상세한 안내판과 함께 전투 당시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총열이 구부러진 기관총과 여러 병사들의 유품들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당시 백마고지 전투 상황을 보도한 주요 언론들의 보도 내용입니다.
1952년 10월 19일자 조선일보의 기사 내용입니다.

시산혈하(屍山血河)... '시신이 산을 이루고 피가 강을 이룬다'는 뜻으로
섬뜩한 제목의 AP통신의 기사 내용도 걸려 있었습니다.


백마고지를 향해 돌진하는 병사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표현한 조형물이
벽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서관의 모습입니다.
서관은 당시 백마고지 전투를 이끌었던 보병 9사단장 김종오 소장에 관한
전시물들로 채워져 있었습니다.

9사단장 재직시 소장으로 진급하면서 기념으로 찍은 사진으로 보였습니다.
날자로 보아 백마고지 전투가 일어나기 한 달 전 즈음으로 보입니다.

육군참모총장 재직시 대장으로 진급하면서 찍은 기념사진으로 보였습니다.

마이크를 들고 확성기로 백마고지 전투에 임하는 장병들을 독려하고
용기를 북돋아 주고 있는 김종오 장군의 모습을 표현한 조형물로 보였습니다.


기념관을 지나니 하늘을 향해 우뚝 솟아 있는 두 개의 조형물이 보였습니다.
백마고지 충혼탑으로 백마고지에서 산화한 9사단 장병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조형물이라고 합니다.

충혼탑을 지나니 뒷편으로 또 다른 길이 나타났습니다.

그 길을 따라간 곳에 '상승각'이란 간판이 걸려 있는 정자가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그 정자 안에는 종이 걸려 있었습니다.
이 종각은 피를 흘려 지킨 자유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통일을 간절히 염원하는
마음으로 건립했다고 합니다.

그 종각 너머로는 철원 평야가 펼쳐 지더군요.
그리고 그 평야 너머로 실제 백마고지의 모습도 보였습니다.

실제 백마고지의 모습입니다.
해발 395m의 높지 않은 야산으로 6.25 전쟁 전에는 그 누구도 눈여겨보지 않던
어쩌면 이름조차도 얻지 못했던 조그만 야산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휴전을 앞두고 서로 조금이라도 더 많은 지역을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공방을 벌이던 와중에 뜻밖에도 전쟁의 중심에 서게 되었고, 이제는
백마고지란 이름으로 영원히 역사에 기록되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백마고지 너머로는 '김일성 고지'라고도 불리는 고암산도 보였습니다.
가깝게 찍어 본 모습입니다.

기념관 서관에 사진으로 걸려 있던 백마고지 충혼비의 모습입니다.
실제 백마고지 정상에 세워져 있는 비라고 합니다.
백마고지란 이름의 유래에 대해선 여러가지 설이 전해진다고 합니다.
전시관에 걸려 있는 이름의 유래에 관한 안내문을 그대로 옮겨 봅니다.
< 백마고지는 강원도 철원군 묘장면 산명리에 위치한 해발 395m의 야산으로
전쟁 전에는 누구도 눈여겨보지 않던 무명고지에 불과했으나 전선이 고착되면서부터
철의 삼각지 좌견부를 감제하는 중요 지형지물로 유명해진 곳이다.
명칭의 유래는 작전기간 중 포격에 의해 수목이 다 쓰러져 버리고 난 후의
형상이 누워있는 백마처럼 보였기 때문에 백마고지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설과,
당시 참전했던 어느 연대의 부연대장이 외신기자의 질문에 '화이트 호스 힐
(White Horse Hill)'이라고 대답하여 비롯되었다는 설, 또 전투 중 9사단을 방문
격려한 바 있는 이승만 대통령이 조선시대 임경업 장군이 평북 의주군에
백마산성을 쌓고 중국 오랑캐에게 저항하였던 지명을 따라 백마산이라고
명명했다는 설이 있으나 일반적으로 격전을 치루고 난 후 산의 모습이
백마가 누워있는 형상 같다고 하여 백마고지라 불리게 되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백마고지전적지를 떠나 돌아오는 길에 철원의 빼놓을 수 없는 또다른 관광지인
노동당사의 모습도 카메라에 담아 보았습니다.



그리고, 눈 덮힌 북한땅을 배경으로 한가롭게 먹이활동을 하고 있는
재두루미 가족의 모습도 카메라에 담아 봅니다.


이렇게, 철원의 백마고지전적지를 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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