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9. 5. 09:47ㆍ숲속 이야기
천마산 등산로를 걷는데, 누군가 작은 바위 위에 보리쌀인지
또는 밀알인지 모를 곡식을 한웅큼 뿌려 놓은 것이 보입니다.
새의 모이를 주기 위해 뿌려 두었나 보다하고 그냥 지나치려는데
포르르 동고비 한 마리가 바위 위로 내려 앉는 것이 보입니다.
무심코 바라보고 있는데 한 마리 뿐이 아닙니다.
두 세 마리가 교대로 날아와 곡식을 쪼아 먹기 시작합니다.
그 모습이 신기해서 카메라를 꺼내 들고 녀석들의 모습을 찍어 보기로 합니다.
그리고 사진을 확인해 보니, 쪼아 먹는 것이 아니라 몇 알씩 입에 물고 날아가기를
반복하고 있더군요.
이렇게 곡식 낟알을 한 입 가득 물고는 어디론가 날아가 버리더군요.
그러면 근처 나무에서 기다리고 있던 또 다른 녀석이 내려와서 같은 행동을
되풀이 하고 있었습니다.
동고비는 숲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텃새입니다.
나무 위를 기어 다니며 먹이를 찾는데, 아래 위로 걸음을 걷듯 거리낌없이
돌아다니며 먹이를 찾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었습니다.
동고비는 겨울이 지나고 봄의 기운이 숲속에 퍼지기 시작할 무렵이면
딱따구리가 버려둔 둥지나 또는 사람들이 만들어 준 새집을 골라 진흙으로
집단장을 하고 봄이 되면 알을 낳고 새끼를 기른다고 합니다.
먹이는 주로 곤충을 먹지만 곤충의 수가 적어지는 가을과 겨울이 되면
다양한 나무의 열매와 씨앗을 먹는다고 합니다.
풍부한 먹이를 만나면 나무 틈새나 뿌리에 먹이를 저장하는 습성이 있다는군요.
그러니까 지금 이 녀석들이 부지런히 바위를 찾아와 부리 한가득 곡식을 물고
사라지기를 반복했던 이유는 바로 곡식을 저장해 두기 위한 행동이었나 봅니다.
동고비들에겐 바위 위에 놓여진 곡식이 뜻밖의 횡재나 다름없었을 것입니다.
욕심 많은 이 녀석은 무려 여섯 알이나 입에 물었군요.
대단한 신공을 보여주고 있는 중입니다.
동고비는 경계심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들을 그닥 무서워하진 않더군요.
극도의 경계심을 보여주는 박새에 비해 동고비는 그냥 무심한 편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앉아 있거나 지나다니는 근처 나무 위로 거리낌없이 날아와 먹이를 찾곤 하더군요.
동고비는 아마 새들 중에서 나무타기에 있어선 단연 으뜸일 것입니다.
나무발발이나 딱따구리는 위로 오르기만 할 뿐이지만, 동고비는 아래 위로
걸음을 걷듯 자유자재로 나무를 타는 편입니다.
생김새 또한 여느 새들과 다른 편입니다.
목과 꽁지가 짧고 눈을 기준으로 머리 둘레를 따라 쾌걸 조로의 복면 같은
검은 띠가 있으며, 짙은 은빛의 매력적인 빛깔로 인해 다른 새들과 쉽게
구별되는 녀석입니다.
등산로 주변에서 동고비와 함께한 뜻밖의 시간이었습니다.
저 수많은 곡식들로 인해 녀석들의 겨울이 풍요롭기를 바랄 뿐입니다.
힘들고 긴 겨울이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약 열흘이 지난 어느 날 천마산 등산을 갔다가 우연히 녀석들이
감추어둔 곡식 창고를 발견했습니다.
동고비들이 유난히 들락거리는 쓰러진 나무 등걸을 무심코 살펴 보는데
이렇게 나무 틈새에 감추어둔 곡식이 보이더군요.
쓰러진 나무 등걸의 틈새나 구멍 마다 녀석들이 옮겨다 놓은 곡식들이
빼곡히 들어 차 있었습니다. 신기하고도 재밌는 광경이었습니다.
열심히 물고 간 곡식을 이렇게 따로 저장해 두고 있다는 것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니, 새삼 자연의 신비가 새롭게 느껴지는 기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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