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화성문화제가 열리던 날, 수원 화성 한바퀴 돌아보기~!

2016. 10. 12. 08:00여행 이야기



수원화성문화제가 열리던 일요일 오후,

날씨의 유혹을 참지 못하고 수원으로 향했습니다.

수원 화성에 도착해서 바라보니 장안문과 창룡문 주변에는

옛날 정조대왕의 수원 행궁으로의 행차 장면을 재현한

'정조대왕 능행차' 행렬을 보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더군요.

그래서 일찌감치 그 북적임을 피해 화성을 한바퀴 돌아보기로 하고

성곽을 따라 천천히 걸으며 화성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 보았습니다.

다행히도 하늘은 맑고 푸르며 흰구름이 배경이 되어 주더군요.


먼저 북적이는 장안문을 피해 화성의 서문에 해당하는 화서문부터

돌아보기로 했습니다.




화서문과 나란히 서있는 '서북공심돈'의 모습입니다.

화성의 대표적인 건물 중 하나로, 공심돈은 적의 동향을 살피고 유사시

공격할 수도 있는 일종의 망루 같은 건물로, 화성에서만 볼 수 있는

건물이라고 합니다. 이 건물이 완공 된 뒤 화성을 방문한 정조임금은

서북공심돈을 보고 "우리나라에서 처음 만든 것이니 마음껏 구경하라!"라고

하며 무척 만족스러워 하였다고 합니다.




서북공심돈과 화서문은 이렇게 이웃하며 나란히 서 있습니다.


















화서문의 모습입니다.

화서문을 제외한 다른 성문의 모습은, 행사 시설이 설치되어 있어서

사진으로 담을 수가 없었습니다.





화서문을 지나 장안문을 향해 성곽을 따라 걸었습니다.

화성의 둘레는 약 5.7km로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걷는다면

두세 시간은 족히 걸릴 거리였습니다.




장안문이 모습을 드러 냅니다.






화성의 북문에 해당하는 장안문은 화성의 대표적인 관문으로

그 규모나 웅장함 또한 네 개의 성문 중 으뜸이었습니다.











정말 날씨가 어찌나 좋던지요.

자꾸만 하늘을 바라보며 걸었습니다.











장안문을 지나 화홍문과 방화수류정을 향해 걸었습니다.

멀리 방화수류정의 모습이 보입니다.





성곽의 틈 사이로 바라본 방화수류정의 모습입니다.






역시 화성의 대표적인 건물 중 하나로, 주변 감시와 지휘라는

군사적 목적 외에 주변 경치와 조화를 이루는 정자의 기능도

함께 수행하는 건물로 < 꽃을 찾고 버들을 따라 노닌다 >라는

뜻을 지녔다고 합니다.




멀리 동북포루의 모습도 바라봅니다.
























이제, 화성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물인 화홍문을 바라봅니다.

화홍문은 화성의 가운데를 흐르는 수원천의 북쪽 수문으로,

냇물이 수문을 통과하면서 일으키는 물보라를 무지개에 비유하여

화홍문으로 이름 지었다고 합니다.




화홍문 앞에는 등축제를 위한 구조물이 설치되어 있더군요.






이렇게, 화홍문의 반영을 찍고 싶었는데 구조물들로 인해

반영을 찍을 수가 없었습니다.











동북포루를 다시 바라봅니다.

포루는 초소나 군사대기소 같은 기능을 하는 건물이라고 합니다.

화성엔 총 다섯 개의 포루가 있고 동북포루는 그 중 하나입니다.
















연무대라고도 불리우는 동장대의 모습입니다.

군사를 지휘하던 지휘소 역할과 함께 훈련장으로도 사용된

건물이라고 합니다.





동장대에서 바라본 성곽 바깥의 모습입니다.






동북공심돈의 모습입니다.

서북공심돈과 같은 역할을 하는 건물로 사각으로 우뚝 솟은 형태인

서북공심돈에 비해 원형에 가까운 형태로 서있었습니다.


동북공심돈 아래와 동쪽 성문인 창룡문 앞에는 정조대왕 능행차를

맞이하기 위한 행사가 한창이었습니다.

이곳이 능행차의 마지막 종착지라고 하더군요.




봉화대 역할을 하는 봉돈의 모습입니다.

비상사태를 알리는 통신시설 중 하나로, 내부에는 무기고와 봉돈을

관리하는 군졸들이 기거할 수 있는 온돌방도 설치되어 있다고 합니다.










지나온 뒤에 남수문 위에서 다시 바라본 동남각루의 모습입니다.

이곳에서 부터 성벽이 끊긴 뒤에 지동시장과 팔달문로터리를 지나면

다시 성벽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팔달문을 지나 가파른 성벽을 오르며 내려다본 시내의 모습입니다.

건물로 둘러싸여 있는 팔달문의 모습이 보입니다.





그리고, 드디어 서장대가 바라보였습니다.






팔달산 정상에 위치한 서장대는 사방 백리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곳으로, 성 주변을 살피면서 군사를 지휘하던 곳이라고 합니다.





정조임금이 사도세자의 무덤인 융릉을 참배하고 이곳 서장대에 올라

성을 수비하고 공격하는 주간 훈련과 야간 훈련을 직접 지휘하였다고 합니다.

그 모양이 늠름하고도 아름다운 건물이었습니다.





서장대 앞에서 내려다 본 장안문 방향의 시내 모습입니다.






화성 행궁 앞에는 정조대왕 능행차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엄청나게

붐비고 있는 모습이 내려다 보이더군요.





서장대 뒷편의 서노대의 모습입니다.

노대는 다연발 활인 쇠뇌를 쏘기 위해 지은 건물이라고 합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행궁방향을 내려다보니 드디어 능행차 행렬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더군요.

오후 5시 반이 가까워 오는 시간이었습니다.




행궁 앞 삼거리를 지나 연무대 방향으로 행진을 계속하는 중이었습니다.






잠시 후, 그 뒤를 따르고 있는 긴 말의 행렬이 나타났습니다.












서장대 앞에서 그 광경을 내려다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저녁 해가 서장대를 조금씩 붉게 물들이기 시작하는 것을 보곤

화성을 내려왔습니다.





서북각루 앞 언덕엔 억새꽃이 한창이었습니다.

그 억새꽃 너머로 저녁 노을이 물들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정조임금은 이곳 수원에 화성을 짓고 임금 직속의 장용영 군사 만여 명을

훈련 시켰다고 합니다.

화성은 백성들의 부역이나 남한산성 축조 시 처럼 승려들을 동원해서

축성한 것이 아니라 공사에 동원된 사람들에게 임금을 지불하였다고 합니다.

그 결과 일꾼들이 엄청나게 몰려 들어 공사를 차질없이 진행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정조임금은 왜 이곳에 화성을 건설한 것일까요?

개혁을 꿈꾸었던 정조임금에겐 우리가 모르는 또 다른 목적이

숨어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영원한 제국'이란 소설에는 정조임금의 화성 건설에 관한 꿈을

이야기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소설의 내용을 빌리자면, 효심이 뛰어났던 정조임금은 개혁과 더불어

비참하게 죽은 아버지 사도세자의 복수 또한 계획하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세자가 자라 성인이 되면 왕위를 양위하고 상왕으로 물러난 뒤

이곳 화성으로 내려와 새로운 세상을 열 계획을 세운 것으로 묘사되어 있더군요.





화성에서 군사를 훈련시킨 목적도 그 계획을 이루기 위한 것으로,

상왕으로 물러난 뒤 군사들을 이끌고 한양으로 쳐들어 가는 쿠데타를

일으키는 것이 정조임금의 목적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다시 권력을 장악한 뒤에 아버지를 죽인 원수인 노론을 모두 처단하고

조선을 완전히 새로운 나라로 개혁하는 것이 정조임금의 오랜 꿈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꿈을 이루기 전에 정조임금은 숨을 거두고 맙니다.





정조임금의 죽음에 대해선 후세에 독살설에 무게가 실리기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죽음이 비교적 갑작스럽게 이루어진 탓에 정적들로 부터 독살당한 것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일으키기도 했을 것입니다.

또 다른 설로는 정조임금의 수원 축성과 군사 훈련에 위기를 느낀

청나라가 독살을 사주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역사학자들의 추론으로는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 사도세자의 죽음을

목격하고 비정한 권력의 틈바구니 속에서 목숨조차 위협 받았을 정조임금은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음은 물론 개혁을 위해 몸을 혹사한 것이 건강을 해치는

결정적인 이유가 되었을 것으로 짐작을 한다고 합니다.





만약 정조임금이 그런 꿈을 실제 꾸었고 더 오래 살아서 그 꿈을 이루었다면

조선은 어쩌면 그렇게 허망하게 패망의 길로 들어서진 않았을 것입니다.

세도정치로 나라를 도탄에 빠뜨렸던 사대부도 사라지고 백성들이 신분의 차이가

사라지면서 누구나 노력하면 잘 살 수 있었던 새로운 세상이 시작되었을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입니다.

커다란 역사의 전환점이 되었을 꿈이 그렇게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개혁을 꿈꾸고 진실로 백성을 위하고자 했던 현명한 군주였던 정조임금...!

인재를 키우고 조선 후기의 문예부흥을 이끌었으며  당파 싸움으로 찌든 나라를

바로 세우고자 부단히 노력했던 정조임금...!

4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면서 비록 꿈을 이루진 못했더라도

다만 후세의 사람들이 그를 후하게 평하는 것에 위안을 삼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렇게, 수원 화성을 다녀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