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7. 10. 14:02ㆍ박물관.문화재
이번 주말에는 국립중앙박물관을 둘러 보고 왔습니다.
일 년에 서너 번은 이렇게 국립중앙박물관에 들러 천천히
전시되어 있는 문화재들을 둘러 보곤 합니다.
주로 발길이 향하는 곳은, 1층 우측 맨 끝에 있는 신라관과
3층 고려청자와 백자, 그리고 여러 불교 유물이 전시되어 있는
조각.공예관입니다.
비색이라 칭하는 고려청자의 은은한 푸른빛을 보고 있으면
왠지 마음이 편안해지는 느낌이 들기 때문입니다.
이번에도 주로 신라관과 조각.공예관을 천천히 돌아보며 여러 점의
문화재를 사진에 담아 보았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사진 촬영이 가능한 곳이며, 다만 삼각대를 사용하거나
플래시를 터트리는 것은 금지하고 있더군요.
신라관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역시 신라 금관입니다.
현재 국보 191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1973년 경주 황남대총 발굴 당시
출토되었다고 합니다. 그야말로 화려함의 극치를 이루고 있는 모습입니다.
금관의 옥장식을 확대해서 찍어본 모습입니다.
옥장식 외에 원형의 금판을 길게 꼬운 금실로 장식하여 그 화려함을
더욱 돋보이게 한 것이 특징이었습니다.
신라 금관은 전체적으로 견고한 편은 아니어서, 실제 사용했다기 보다는
왕릉의 부장품으로 따로 제작한 것으로 추측을 한다고 합니다.
역시 신라관에 걸려 있는 귀걸이의 모습입니다.
정교한 세공기술이 돋보이는 유물로, 어떻게 신라시대에 이런 정교하고도
화려한 귀걸이를 만들 수 있었는지 놀라울 뿐이었습니다.
각 부분을 확대해본 사진입니다.
아주 작은 금구슬을 촘촘히 이어붙인 놀라운 모습입니다.
아랫 부분의 장식을 확대해서 찍어본 사진입니다.
어쩌면 현대에서도 만들기가 쉽지않아 보일 정도였습니다.
보물 456호로 지정되어 있는 금목걸이입니다.
경주 노서동 무덤에서 출토된 것이라고 합니다.
아주 작은 금구슬로 테두리를 장식한 나뭇잎 모양의 수많은
달개로 이루어진, 아름답기 그지없는 목걸이였습니다.
함께 전시되어 있는 또 다른 목걸이입니다.
화려한 다른 유물에 비해선 비교적 단순해 보이는 모습입니다.
그러나 아주 단순한 것만은 아닙니다.
각각의 구슬마다 여러 개의 장식을 매달아 놓았더군요.
역시 황남대총 출토 유물로, 국보 193호로 지정되어 있는 유리병입니다.
당시 신라에서는 유리병을 제조할 수 있는 기술이 없었던 것으로 보아
멀리 서역으로 부터 수입된 것으로 추측을 한다고 합니다.
'로만글라스'라는 총칭으로 불리는 이 유리병은 로마제국에서 만들었던
유리제품을 일컫는 말로, 지중해 연안을 따라 널리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부러진 손잡이 부분을 금실로 수리했을 정도이니, 당시 이 병이 얼마나
귀한 것이었는 지를 짐작할 수 있다고 합니다.
다음으로 사진에 담아 본 유물은 국보 91호인 <말 탄 사람 토기>였습니다.
<기마인물형토기> 또는 <도제기마인물상>으로 칭하기도 한다네요.
그런데 국보 91호는 모두 두 개입니다.
<주인상(像)>과 <하인상>로 나뉘어져 있으며, 언뜻 보기엔 비슷해 보이지만
완전히 다른 모습을 갖추고 있습니다.
주인상의 모습입니다.
장식이 달린 삼각형 관모를 쓰고 갑옷을 입었으며 오른손으로
말고삐를 잡고 있습니다.
하인상의 모습입니다.
윗옷을 벗고 머리는 수건을 질끈 동여 매었으며, 어깨엔 짐을 걸쳐 메고
오른 손엔 방울을 들고 있는 모습입니다.
말머리의 모양도 확연히 다릅니다.
주인상의 말은 말갈기를 땋아 앞으로 드리웠고 권위가 느껴지는
여러 마구를 착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인상의 말은 단순하고 필요한 마구만을 착용했을 뿐입니다.
말의 생김새는 다리가 짧은 조랑말의 생김새라고 합니다.
이 유물은 경주 '금령총'에서 출토 되었으며, 이외에도 보물 338호인
금관과 금제 허리띠가 출토 되었다고 합니다.
장신구가 대체로 소형이었던 것으로 봐서 무덤의 주인이 어린 왕족으로
추정된다고 하네요.
하인이 오른손에 들고 있는 것은 방울이라고 합니다.
방울을 흔들어 영혼세계에서 주인의 영혼을 인도하는 하인의 모습을
나타낸 것으로 추측을 한다고 합니다.
금령총에서 기마토기와 함께 출토된 금관입니다.
보물 338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역시 함께 출토된 허리띠입니다.
황남대총에서 출토된 금관과 허리띠에 비하면 그 크기나 화려함에서
소박한 편이었습니다.
'말 탄 사람 토기'는 1층 신라관에, 이 금관과 허리띠는 3층 금속공예관에
전시되어 있더군요.
이 귀걸이는 백제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유물로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것은 복제품입니다.
신라의 귀걸이 만큼이나 정교하고 화려함을 자랑합니다.
역시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유리목걸이입니다.
형형색색의 재료를 하나로 꿰어 만든 아름다운 목걸이였습니다.
3층 조각.공예관으로 발길을 옮겼습니다.
3층의 좌측에 위치한 전시관으로 다양한 불교 유물과 금속공예품
그리고 고려청자를 비롯한 분청사기, 백자가 전시되어 있는 곳입니다.
이 불상은 석불좌상으로, 경주 남산 삼릉곡에서 옮겨온 불상이라고 합니다.
국보나 보물로 지정되어 있진 않더군요.
나란히 진열되어 있는 불상입니다.
철로 만들어진 '철불'이며, 고려시대의 불상으로 하남시 하사창동의
절터에서 옮겨온 불상이라고 합니다.
마주보고 있는 또 다른 철불입니다.
충남 서산시 운산면 보원사 터에서 옮겨온 불상이라고 합니다.
철불이 등장한 시기는 통일신라 시대 후기이며 이후 고려시대에
크게 유행하였다고 합니다.
철불과 이웃하며 비로자나불이 나란히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통일신라 후반기의 석불로, 비로자나불은 온누리에 가득찬 진리의 빛을
형상화한 부처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불교 유물중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뭐니뭐니해도
<국보83호 반가사유상>입니다.
크기가 93.5cm인 이 불상은 금동으로 만든 반가사유상 중에서 크기가
가장 클뿐 아니라 최상의 아름다움을 뽐낸다고 합니다.
방 한 칸을 모두 차지하고 어두컴컴한 조명 아래에서 전시되고 있었습니다.
반가사유상은 부처님이 출가하기 전, 생로병사를 고민하며 명상에 잠겨 있는
싯다르타 태자의 모습을 표현한 것이라고 합니다.
지그시 눈을 감고 고뇌하고 있는 표정을 사실적이고도 세심하게 표현한
그야말로 빼어난 문화재였습니다.
일제강점기에 발견되었으며 출토지가 정확하게 밝혀져 있지 않다고 합니다.
그래서 현재도 신라와 백제 중 어느 시대의 유물인지를 밝히지 못한 채
의견이 분분하며, 아직도 연구 중에 있다고 합니다.
약사불 만을 모아놓은 전시공간입니다.
약사불은 갖가지 질병을 고쳐 주고 재난에서 벗어나게 하며
음식과 옷을 제공해 주는 부처라고 하네요.
그래서 약사불의 왼손에는 모두 약병을 들고 있습니다.
이 약사불은 보물 328호로 지정되어 있는 통일신라 시대의 불상입니다.
이 불상은 국보 127호 관음보살로 크기가 20센티 정도의 작은 불상입니다.
그 불상을 부분 부분 나누어서 찍어 봤습니다.
삼각형의 보관을 쓰고 입가에 은은한 미소를 띠고 있습니다.
보관 중앙에 새겨져 있는 작은 무늬는 화불(化佛)로, 중생 구제를 위해
여러 모습으로 나타나는 부처를 일컫는 말이라고 합니다.
왼손의 모습입니다.
엄지와 검지로 V자를 그리고 있는 특이한 모습입니다.
오른손엔 정병을 들고 있습니다.
정병은 깨끗한 물이나 감로수를 담는 물병으로, 관음보살은 이 감로수로
모든 중생의 고통을 덜어주고 갈증을 해소해 준다고 합니다.
이 불상은 보물 329호로 지정되어 있는 '석조여래좌상'입니다.
아래의 좌대 부분까지를 합한 크기가 13.5센티 밖에 되지 않는 작은 불상으로
좌대의 크기만 거의 반 가까이를 차지할 정도입니다.
재질이 무른 곱돌을 깎아 만들었으며 사실적인 표정을 살펴보기 위해
윗 부분만 찍어 보았습니다.
이 세 불상은 조선시대의 불상으로, 경기도 남양주시 두물머리 근처의
수종사 오층석탑에서 출토된 불상들입니다.
가운데 불상의 모습입니다.
이 불상들 역시 조선시대의 불상입니다.
크기가 모두 10센티 내외의 작은 불상들이었습니다.
가까이에서 바라보니 의외로 정교하고 세밀한 무늬가 눈에 들어옵니다.
그리고 드디어 청자관으로 들어 섰습니다.
입구 벽에는 <벽옥처럼 푸르고, 수정처럼 영롱한...>이라는 문구가
쓰여져 있고 전시관 중앙과 벽을 따라 은은한 비색을 뿜어 내는
수많은 종류의 청자들이 전시되어 있는 곳입니다.
그 중 특히 내가 좋아하는, 국보로 지정되어 있는 세 점의 청자만 따로
카메라에 담아 보았습니다.
국보 61호 <청자 어룡형 주자>입니다.
높이가 24.4cm이며 용의 머리와 물고기의 몸통을 가진 특이한 형태의
동물을 형상화한 상형청자입니다.
이런 형태의 물고기 모양은 예로부터 화재를 예방하기 위한 상징적인
의미로 건축물에 많이 장식하였다고 하네요.
머리 부분의 조각이 너무 생생하고 정교해서 금새라도 살아 움직일 듯한
모습입니다.
꼬리부분으로 주전자의 뚜껑에 해당하는 부분입니다.
지느러미와 비늘의 섬세한 무늬가 잘 나타나있고 손잡이는
연(蓮) 줄기를 몇 가닥 꼬아 만든 형태라고 합니다.
가장 기발한 형태의 청자 중 하나라고 합니다.
앞에서 바라본 모습입니다.
앞에서 바라보니 청자를 빚은 장인의 조각 솜씨가 훨씬 더 도드라져
보이는 느낌입니다. 용의 모습이 살짝 공포스럽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국보 60호 <사자 장식 향로>입니다.
<사자형 뚜껑 향로> <청자사자개향로>라고도 불리더군요.
높이가 21.2cm이며 향로로 쓰이는 몸체와 사자 모양을 장식한 뚜껑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높이가 21.2cm이며 향을 피우면 비어있는 사자의 몸통을 따라
입으로 향이 나오도록 만들어져 있다고 합니다.
이 청자는 송나라 문헌에도 기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송나라 사신이 고려의 여러 곳을 둘러보고 기록한 문헌에는
'산예출향'이라고 적혀 있는데 '산예출향'은 사자가 장식된 향로를
말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덧붙이기를, <여러 그릇 가운데 이 물건만이 가장 정교하고
빼어나다>라고 표현하였다고 합니다.
그 형태를 유추해 볼때 현재까지 남아있는 청자 중에서 이 청자가
가장 근접한 형태의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많은 고려 청자중에서도 단연 그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국보 95호 <칠보무늬 향로>를 카메라에 담아 보았습니다.
학창 시절 국사책에서 보았던 문화재를 직접 눈으로 확인해 보는
순간이었습니다.
<청자 투각칠보문향로>라고도 부르더군요.
전체 높이는 15.3cm이며 받침 부분인 대좌지름은 11.5cm라고 합니다.
뚜껑 부분은 향이 골고루 퍼질 수 있도록 둥근 공 모양의 형태에 수많은
구멍을 뚫어 장식하였다고 합니다.
투각기법이라고 하며 구멍은 칠보무늬를 새긴 것이라고 하네요.
몸통 부분은 틀로 찍어낸 연꽃잎(또는 국화잎)을 위에서 아래로 감싸듯이
꽃봉오리 모양으로 겹겹히 붙여 놓았습니다.
그야말로 그 무엇도 흉내낼 수 없는 기교의 극치였습니다.
칠보무늬 향로의 아름다움의 백미는 바로 이 받침으로,
세 마리의 앙증맞은 토끼가 등으로 향로를 떠받치고 있는 모습입니다.
최소한의 크기로 무게를 지탱하게한 장인의 뛰어난 솜씨와
검은 점으로 두 눈까지 선명하게 표현해낸 모습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습니다.
국보 95호 '칠보무늬 향로'는 고려청자의 대표적인 명품 가운데 하나로,
조화와 균형이 안정감있게 잘 어우러진 뛰어난 청자 향로라고 합니다.
어떻게 이런 형태의 청자를 빚어 낼 수 있었는지, 바라보면 볼 수록
그 아름다움에 점점 더 빠져들 수 밖에 없더군요.
그렇게 한참을 칠보무늬 향로앞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이렇게 국립중앙박물관을 쉬엄쉬엄 돌아보고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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