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9. 8. 00:08ㆍ박물관.문화재
주말을 이용해 모처럼
국립중앙박물관을 다녀왔습니다.
예전에 비해 달라진 점이 있다면, 박물관 입구에
거의 공항검색대 수준의 검색을 실시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귀찮다거나 성가신 느낌이 들기보다는 오히려 당연히
해야할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아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소중한 문화재인 국보와 보물이 즐비하게
전시되어 있는 소중한 공간 속을 입장하면서 이 정도의 불편쯤은
충분히 감내할 수 있는 정도에 지나지 않아 보였습니다.
늘 그렇듯 박물관에 오면 가장 먼저 들르는 곳이
국보 제191호인 신라금관입니다.
정확한 명칭은 <황남대총 북분 금관>으로 현재까지 발견된
신라의 금관 중에서 가장 화려한 모습을 자랑하는 금관이라고 합니다.
금관 아래에는 국보 제192호인 '황남대총 금제 허리띠'가 함께
전시 되어 있었지만 금관 만 카메라에 담아 보았습니다.
금관을 비추고 있는 조명도 예전에 비해 달라진 느낌이었습니다.
조명의 밝기가 훨씬 줄어든 느낌이었는데, 사진을 찍기엔
불편했지만, 눈으로 감상하기엔 오히려 한결 편해진 느낌이었습니다.
경주 대릉원 안에 있는 황남대총에서 1973~1975년 발굴 당시
발견된 금관으로, 나란히 붙어 있는 무덤 중 북쪽 무덤에서
이 금관이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금관의 높이는 27.5cm로, 금관의 재질이나 전체적인 형태로 볼때
실제로 사용하기엔 어려웠을 것으로 보이며, 부장품으로서 상징적인
의미로 제작된 것이 아닐까 하고 추측을 한다고 합니다.
아무리 오래 바라보아도 지겹지 않을 만큼 화려하고도
아름다운 문화재였습니다.
금관을 둘러본 뒤 신라시대의 유물을 모아둔 '신라관'으로
발길을 옮겼습니다.
입구를 지키고 있는 국보 제91호 <기마인물형토기>입니다.
'말 탄 사람 토기'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국보 제91호는 모두 두 개로
경주 '금령총'에서 함께 출토되었다고 합니다.
이 토기는 무덤 주인을 형상화한 듯한 모습의 <주인상(像)입니다.
그 두 번째의 토기인 <하인상(像)>입니다.
주인상에 비해 전체적으로 행색이 초라해 보이며 손에는
방울을 들고 있는데, 아마도 주인의 영혼을 인도하는 모습으로
추측을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신라관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문화재 중 하나인
유리병입니다.
황남대총 발굴 당시 남쪽 무덤에서 발굴되었다고 하며, 함께 출토된
유리잔과 함께 국보 제193호로 지정되어 있다고 합니다.
당시 신라에서는 유리병을 제조할 수 있는 기술이 없었던 것으로 보아
멀리 서역에서 수입한 것으로 추측을 한다고 합니다.
이 유리병은 '로만글라스'라는 총칭으로 불리는데 당시 로마제국에서
만든 유리 제품을 일컫는 말이라고 합니다.
당시 지중해 연안을 따라 널리 사용되었다고 하며, 신라에서는
이 유리병을 얼마나 귀하게 여겼던지 부러진 손잡이 부분을 수리하면서
사진에서 처럼 금실로 수리했을 정도라고 합니다.
아마도 금보다도 더 귀한 대접을 받았던 것으로 추측을 한다고 합니다.
영화 속에서나 본듯한 화려한 목걸이도 있더군요.
구슬과 특이한 모양의 금장식을 차례대로 꿰어놓은
특이한 모양의 목걸이였습니다.
옛 신라의 왕족이나 귀족들의 화려했던 생활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한 문화재들이었습니다.
끝에 매달려 있는 굽은옥을 가깝게 찍어본 것입니다.
이런 목걸이는 요즘 현대에서도 제작이 쉽지 않을 듯한 모습이더군요.
보물 제456호로 지정되어 있는 금제 목걸이였습니다.
금구슬로 장식한 아주 작은 나뭇잎 모양의 수많은 금판으로
이루어진 목걸이였습니다.
국보 제90호로 지정되어 있는 금귀걸이의 모습입니다.
목걸이와 귀걸이 들이 예전에 전시되어 있던 곳에서 신라관 안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전체적으로 조명이 어두워지는 바람에 깔끔한 모습을
찍기가 어려웠습니다.
박물관 내에서는 사진 촬영은 할 수 있지만, 후레쉬와 삼각대는
엄격히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오롯히 손에만 의지해서 사진을 찍기엔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전 밝은 조명 아래에 있을 때 찍어본 귀걸이의 모습입니다.
그야말로 화려함의 극치를 이루는 모습입니다.
윗 부분과 아랫 부분을 좀 더 가까이에서 찍어본 모습입니다.
아주 작은 수많은 금구슬을 촘촘히 이어 붙인 놀라운 모습이었습니다.
약 1500년 전에도 이렇게, 현대인들도 흉내내기 어려울 정도의
뛰어난 금세공 기술이 존재했었나 봅니다.
국보 제3호인 <진흥왕순수비>입니다.
북한산 비봉에서 발견된 순수비로, 진품입니다.
비석 뒷편의 배경이 북한산 비봉으로, 현재 비봉에는
복제품이 놓여져 있다고 합니다.
진흥왕순수비는 신라 진흥왕이 한강유역 일대를 정복하고
영토확장을 기념하기 위해 세웠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진흥왕은 생전 신라의 부흥을 이끌면서 다섯 개의 비를 세웠는데
북한산, 마운령, 황초령의 순수비와 창녕의 척경비, 단양의 적성비가
그것이라고 합니다.
신라관을 돌아본 뒤 박물관 3층의 불교조각실로 발길을 옮겼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가장 좋아하는 문화재들이 대부분 3층에 몰려 있어서
박물관에 들르면 1층의 고대 선사관 내에 있는 신라 금관과 신라 유물들을
둘러본 뒤, 바로 3층으로 이동하는 편입니다.
3층엔 반가사유상을 비롯한 불교문화재와 아름다움을 헤아리기 어려운
고려청자를 비롯한 도자기들이 전시되어 있는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불교조각관의 전경입니다.
좌우로 고려시대의 철불과 안쪽으로는 신라시대의 석불이
전시되어 있는 곳입니다.
이 두 석불은 모두 국보입니다.
좌측이 국보 제81호 미륵보살입상이며, 우측이 국보 제82호
아미타불입상이라고 합니다.
경주의 감산사 터에서 옮겨온 석불들이라고 하며, 국보급에 걸맞을 만큼
섬세하고도 사실적인 빼어난 조각 솜씨를 자랑하는 석불이었습니다.
우측에 전시되어 있는 비로자나불과 철불의 모습입니다.
철로 만든 불상인 철불은 고려시대에 들어와서 성행한
불상이라고 합니다.
좌측으로 전시되어 있는, 약사여래좌상과 철불입니다.
사진으로는 크기가 비슷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철불의 크기가 석불에 비해
약 1.5배는 더 큰 모습이었습니다.
이 약사여래좌상은 경주 남산의 삼릉계곡에서 옮겨온 불상이라고 합니다.
국보나 보물로 지정되어 있지는 않았지만, 전체적으로 단정하고
균형잡힌 모습이었습니다.
박물관 1층의 고려관에서 만난 철불입니다.
정확한 명칭은 <철조아미타불좌상>으로, 강원도 원주에서
발견된 불상이라고 합니다.
불교조각관에는 아주 규모가 큰 괘불도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높이가 11m에 달하고 너비가 7m나 되는 보물 제1260호
<공주마곡사괘불>이었습니다.
괘불은 야외에서 큰 법회나 의식을 열 때 사찰 마당에 걸었던
대형 불화를 말한다고 합니다.
실제로 보니 그 규모가 어마어마하더군요.
옛 사람들이 이렇게 규모가 크고 색상이 화려하며 표현이 섬세한 그림을
어떻게 그릴 수 있었는 지가 문득 궁금해지는 모습이었습니다.
괘불에는 부처와 여러 보살, 사천왕들을 포함한 모두 서른네 분의
모습이 그려져 있더군요.
부처의 머리에 씌워져 있는 화관 위에 장식처럼 그려져 있는 작은
부처들까지 합하면 모두 마흔한 분이 그려져 있는 대형 괘불이었습니다.
그리고, 불교조각관의 최고의 문화재라고 할 수 있는
국보 제83호 반가사유상을 만났습니다.
정확한 명칭은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이라고 합니다.
반가사유상은 석가가 출가를 하기 전, 생로병사를 고뇌하며
명상에 잠겨 있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엔 두 개의 반가사유상이 있는데 또 다른 반가사유상은
국보 제78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몇 년 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두 반가사유상을 한자리에
전시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 사진은 그때 찍어본 사진으로, 두 국보를 함께 감상할 수 있었던
그야말로 대단한 순간이었습니다.
국보 제78호 <금동미륵보살반가상>입니다.
국보 제83호와는 사뭇 다른 모습으로 더 화려하고 정교한
조각 솜씨를 자랑하는 문화재였습니다.
두 반가사유상 모두 정확히 어디서 출토가 되었는지, 또는
어느 시대에 제작된 것인지 밝혀진 것이 없지만 조각의 기법이나여러
정황에 비추어 볼때 국보 제78호는 백제에서, 제83호는 신라에서
제작된 것으로 추측을 한다고 합니다.
국보 제83호 반가사유상을 정면에서 바라본 모습입니다.
마지막으로 고려청자를 둘러보기로 합니다.
그리고 평소 가장 좋아하는 고려청자 몇 점 만을 카메라에 담아보고
박물관을 떠나 왔습니다.
국보 제94호인 <청자 참외모양병>입니다.
<고려도자 청자과형병>이라고도 부른다고 하네요.
고려청자들 중에서 단연 그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국보 제95호
<칠보무늬 향로>입니다.
<청자 투각칠보문향로>라고도 부르더군요.
전체 높이는 15.3cm이며 받침 부분인 대좌지름은 11.5cm라고 합니다.
뚜껑 부분은 향이 골고루 퍼질 수 있도록 둥근 공 모양의 형태에 수많은
구멍을 뚫어 장식하였다고 합니다.
몸통 부분은 틀로 찍어낸 연꽃잎(또는 국화잎)을 위에서 아래로 감싸듯이
꽃봉오리 모양으로 겹겹히 붙여 놓았습니다.
그야말로 그 무엇도 흉내낼 수 없는 기교의 극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국보 제60호인 <사자 장식 향로>를 찍어 봤습니다.
<사자형 뚜껑 향로> <청자사자개향로>라고도 불린다고 하는군요.
이렇게, 중앙박물관을 둘러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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