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11. 9. 20:15ㆍ박물관.문화재
공주 공산성을 한바퀴 돌아 보고 왔습니다.
공주 공산성은 웅진백제시기(475~538년)를 대표하는 왕성으로
백제의 대표적인 고대 성곽이라고 합니다.
백제는 고구려 장수왕의 공격으로 도성이던 위례성이 함락되고
개로왕이 탈출 도중 붙잡혀 참수 당하는 엄청난 환란을 겪은 뒤,
그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문주왕 원년에 웅진(공주)으로 도읍을
옮겼다고 합니다.
그후 사비(부여)로 도읍을 옮길 때 까지 64년간 백제의 왕성으로
남아 있었다고 합니다.
공산성의 서문(西門)인 금서루의 모습입니다.
주차장과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어서
관광객들이 가장 먼저 만나는 공산성의 문루였습니다.
현재의 모습은 1993년에 복원한 모습이라고 합니다.
마침 성문 아래에는 노란 산국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더군요.
금서루와 성곽의 모습입니다.
성곽을 따라 오르면서 내려다본 금서루의 모습입니다.
금서루 뒷편 가장 높은 곳에 세워져 있는 공산정의 모습입니다.
공산성에는 마침 늦가을의 단풍이 곱게 물들어 가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공산성의 북문인 공북루의 모습입니다.
금강을 건너 남쪽과 북쪽을 오가던 남북 통로의 주 출입문 역할을 하던 성문으로,
현재의 건물은 조선 선조 36년에 신축한 것이라고 합니다.
공북루를 지나 가파른 성벽을 넘어서니 특이한 모양의 건물이
눈에 들어옵니다. 연지와 만하루였습니다.
연지는 공산성 안에서 사용하던 물을 저장하던 연못으로,
기록에 따르면 '공산성에 물이 부족하여 연못을 만들고 금강의 물을
끌어다 썼다'라고 기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연지는 아래로 내려갈 수록 폭이 좁아지는 특이한 계단 형태로
석축을 쌓았으며 깊이는 약 9m라고 합니다.
물이 줄어들면 물을 퍼올리기 쉽게 계단 형태로 석축을
쌓았을 것으로 추측이 되더군요.
만하루는 금강과 연지 사이에 지은 정자로, 군사적인 용도외에
경치를 감상하던 누각으로도 사용되었을 것으로 짐작한다고 합니다.
공산성은 금강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산등성이를 따라
성벽이 둘러쳐져 있었는데, 대부분 깎아지른 절벽과도 같은
능선을 따라 세워져 있어서 그야말로 난공불락의 요새처럼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성곽을 따라 걷는데, 문득 뜻밖의 건물 하나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꽤 규모가 있는 건물이었는데, 임류각이란 현판이 걸려 있더군요.
임류각은 백제 동성왕 22년에 왕궁의 동쪽에 지은 건물이라고 합니다.
왕과 신하들의 연회 장소였을 것으로 추정되며 현재의 건물은
발굴조사를 토대로 1993년에 고쳐 지은 건물이라고 합니다.
광복루의 모습입니다.
원래 위치는 북문인 공북루 옆에 세워져 있었으며 군영의 출입문으로,
또는 바깥을 관찰하던 망루 역할을 했던 건물이었다고 합니다.
본래는 '해상루'라는 이름으로 불렸으나 일제에 의해 지금의 자리로 옮겨진 후
'웅심각'으로 바꿔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광복 후 이곳을 들렀던 백범 김구 선생님이
광복을 기리는 의미로 '광복루'란 이름을 붙여 주셨다고 합니다.
성곽을 따라 내려오니 또 다른 성문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동문인 영동루였습니다.
역시 1993년 복원한 건물로, 영동루라는 이름은 원래의 이름을 알 수 없어
2009년 시민 공모를 거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합니다.
현재 공산성의 모습은 대부분 조선시대에 성을 석성으로
개축하면서 갖춰진 모습이라고 합니다.
성의 총길이는 2660m이며 석성이 1925m, 토성이 735m라고 합니다.
영동루 근처엔 토성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어쩌면 백제시대에 쌓은
토성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는 듯 보였습니다.
공산성의 남문인 진남루의 모습입니다.
조선시대 성을 개축하면서 함께 지은 건물이라고 하며
삼남(三南)의 관문 역할을 하였다고 합니다.
북문인 공북루와 함께 처음 지어졌던 건물의 모습을
간직한 건물이라고 합니다.
진남루를 지나 성곽을 따라 오르니 단풍에 둘러싸인 건물 하나가 보였습니다.
바로 쌍수정이었습니다.
쌍수정에는 인조임금에 관한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고 합니다.
인조임금이 이괄의 난이 일어 났을 때
이곳 공산성까지 피난을 와서 6일을 머물렀다고 합니다.
머무르는 동안 초조한 마음을 달랠길 없어 나무 두 그루를 위안 삼아
그 아래에서 머물며 난이 평정되기를 기다렸다고 합니다.
드디어 난이 평정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기뻐하며 자신이 위로를 삼았던
나무 두 그루, 즉 쌍수(雙樹)에게 정 3품의 벼슬을 내렸다고 합니다.
그 후 관찰사로 부임해온 이수항이 그 쌍수가 있던 자리에
세운 정자가 바로 이 쌍수정이라고 합니다.
그 이유로 공산성은 한동안 쌍수산성으로 불리기도 했다고 합니다.
다시 금서루 앞으로 돌아오는 것으로 공산성을 모두 돌아 보았습니다.
공주를 지나칠 때 마다 꼭 한 번 이 공산성을 돌아보고 싶다는 마음을
가져보긴 했으나 상황이 여의치 않아 늘 그냥 지나치곤 했는데
드디어 꿈을 이룬 셈이 되었습니다.
비록 남한산성에 비해 규모는 작은 편이었지만 그에 못지않게
볼거리와 역사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아름답고도 의미있는
산성의 모습이었습니다.
서울로 돌아오는데, 멀리 공산정 너머로
노을이 물들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차를 멈추고 노을까지 감상해 보기로 합니다.
공주 공산성의 모습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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