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만난... 세한도와 평양감사향연도 (한겨울 지나 봄 오듯)~!

2020. 11. 25. 18:15박물관.문화재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11월 24일부터 열리고 있는,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를 가장 먼저 달려가서 만나보고 왔습니다.

특별전으로 열리고 있는 이번 기획전시는
<한겨울 지나(세한歲寒), 봄 오듯(평안平安)>이란 주제로 세한도와 함께
단원 김홍도의 그림인 <평양감사향연도> 3점을 함께 전시하는 행사였습니다.
그 흔적을 사진으로 남겨 보았습니다.

 

 

 

입구를 들어서서 영상관을 지나고 나니 넓다란 공간 한켠에
길게 전시되어 있는 세한도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동안 책이나 얘기로만 들었던 세한도를 직접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뜻깊은 순간이었습니다.



세한도가 놓여진 위치나 어두운 조명으로 인해
세한도의 모습을 카메라에 제대로 담아보는 것은 힘들더군요.
겨우 이렇게, 실물을 영접한 인증을 남기고 왔습니다.



 

 

 

 

현재 국보 제180호로 지정되어 있는 세한도는 전체 길이가
무려 14m가 넘는다고 합니다.
추사가 말년에 유배지였던 제주에서 기약없는 귀양생활을 할 때
자신에게 중국의 귀한 서적을 보내주며 살뜰히 살펴준 역관 이상적에게
고마움을 전하기 위해 그린 이 그림은,
그림의 크기만 보면
실제 큰 편은 아니었습니다.
가로 69cm 세로 23cm 정도의 작은 그림으로, 그 나머지의 대부분은
그림에 대한 절절한 찬사를 담은 당대 청나라
문인 16명과, 20세기
국내 전문가 4명의 감상글로 채워져 있다고 합니다.



추사로 부터 세한도를 선물받은 역관 이상적은
중국으로 가 청 문인의 글을 받고 자식에게 이 그림을 물려줬으나,
경술국치 뒤엔 친일파 민영휘 일가의 수중으로 들어갔다고 합니다.
그러다 다시 추사학을 정립한 일본 학자 후지쓰카 지카시의
소유가 되었으며, 그 뒤 서예 거장 소전 손재형이 일본의 후지쓰카
거처까지 가서 그림을 달라고 간청해 마침내 1945년 해방 직전
이 땅으로 돌아왔다고 합니다.
소전 손재형은 선거에 출마하면서 정치자금으로 쓰기 위해 그림을 팔았고,
이를 입수한 개성상인 손세기·손창근 부자가
세한도의 소유자가
됐다고 합니다.

 

그렇게 40여년을 소장하고 있던 손창근씨가 올 1월
그림을 위탁했던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 의사를 밝히면서
<세한도>는 마침내 국민의 공공 문화유산이 됐다고 합니다.
국립중앙박물관 홈페이지에는, '<세한도>176년간의 여정을 마치고
국립중앙박물관에 올 수 있도록 결심한
손창근(92) 선생과
부친 고
 손세기(1903~1983) 선생의
숭고한 뜻을 알립니다'라는
소개글이 올라와 있었습니다.

 

세한도를 지나 전시실을 나서니 추사의 초상화가 걸려 있었습니다.
우리에게는 추사라는 호로 잘 알려져 있지만, 김정희 선생은
생전에 완당을 비롯한 약 100여개의 호를 사용하였다고 합니다.

 

추사께서 유배생활 중에 아내에게 보낸 한글편지도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내인 예안 이씨는 이 편지를 쓴 한 달 뒤에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어쩌면, 이 편지가 전해지기 전 세상을 뜨셨는 지도 모를 일입니다.

 

추사의 예서체 글씨도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세한도를 돌아보고 동선을 따라 전시실을 나서니
<평안, 어느 봄날의 기억>이란 부제가 붙어 있는 또 다른 전시공간이
펼쳐지더군요.
조선 제일의 화가 중 한 명이었던 단원 김홍도가 그렸다는
<평양감사향연도> 3점을 주제로 한 미디어 전시관으로
각각의 그림에 대한 세밀한 부분들을 커다란 영상으로
확대해서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평양감사향연도>는 꽃피는 봄날 새로 부임한 평양감사를
환영하기 위해 치러지는 잔치를 3점의 그림으로 나누어
표현한 것으로, 당시 평양감사 환영 행사는 전국 팔도에서
가장 성대하고 화려하게 치러진, 평양의 대표적인 행사였다고 합니다.


가장 먼저 만난 그림은 <연광정연회도>입니다.
연광정은 당시 평양성을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최고의 전망대였다고 합니다.

 

그림을 더 가까이에서 찍어 본 것입니다.
연회에 참석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해학과 풍자를 담아
세밀하게 표현한 대단한 그림이었습니다.

 

더 가까이 찍어본 그림입니다.
청색융복을 입은 평안감사가 상석에 앉아 기생들의
춤을 바라보고 있고, 주변에 호위무사인 비장, 고을 수령들,
그리고 다음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 사자탈과 학의 탈을 쓴
사람들의 모습도 보입니다.

 

대동문의 모습이라고 합니다.
대동문 주변에서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백성들의 모습을
하나하나 놓치지않고 모두 표현하고 있었습니다.

 

두 번째 그림인 <부벽루연회도>입니다.
부벽루는 '푸른 물 위에 떠있는 누각'이란 의미로
금수한 모란봉 기슭에 있으면서 대동강과 접하고 있어서
마치 물 위에 뜬 것 같은 느낌을 주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합니다.

 

평양감사 환영 잔치 중에서 이 부벽루의 잔치가
가장 성대하게 열렸다고 합니다.
공연을 하고 있는 기생들의 모습과 그 공연을 구경하기 위해
모여든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는
멋진 그림이었습니다.

 

부벽루에는 평안감사와 옆으로 고을 수령들이 앉아 있고
마당엔 사령들과 기생들이 줄을 이루고 앉아 있는 가운데
다섯가지 궁중무용이 차례대로 펼쳐지고 있는 모습이라고 합니다.
가만히 살펴보면, 사령들의 뒷편으로는 너무 가까이 다가오는
사람들을 쫒아내기 위해 애를 쓰고 있는 포졸들의 모습도 보입니다.

 

공연을 구경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각각 공연이 가장 잘 내려다보이는 산비탈에 자리를 잡고
떼를 지어 구경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 그림인 <월야선유도>입니다.
평양감사의 환영 잔치 중 세 번째로 이루어지는 뱃놀이 행사로
날이 저문 뒤 횃불로 사방을 환히 밝히고 배 위에서 연회를
베풀었다고 합니다.
그림 속에는 좌측에서 부터 대동문과 연광정, 부벽루가
차례대로 늘어서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대동문과 연광정 앞 성벽 위로 횃불을 들고 늘어서 있는
사람들의 모습과 성벽 아래로 떼를 지어 모여있는 구경꾼들의
모습이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근엄한 표정의 평양감사가 타고 있는 배가 보입니다.
그 주변으로 호위하는 군졸들이 타고 있는 배와 구경 나온
사람들이 타고 있는 작은 배들이 평양감사 주위를 에워싸고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강가에는 횃불을 흔들며 줄을 지어 서있는 백성들의 모습이 보입니다.

 

평양감사의 배을 뒷편에서 따르고 있는 기생들이 타고 있는
배의 모습입니다.

 

앞쪽의 풍악을 울리고 있는 악사들이 탄 배가 보이고
좁고 긴 배 위에 늘어서 있는 군졸들의 모습이 보입니다.
참으로, 평양감사의 위세가 대단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아마도 저 배에 타고 있는 사람은 초대 받은 사대부이거나
평양에서 내노라하는 유지처럼 보입니다.

 

강가에서 횃불을 흔들고 있는 백성들의 모습을 찍어본 것입니다.
물론 행사에 동원된 백성일 수도 있겠지만, 다들 즐겁게 횃불을
흔들고 있는 듯 보이는 것은 백성들 역시도 이 대단한 행사를
즐기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더군요.
그 뒷편에서 삼삼오오 가족끼리 또는 친구들끼리 한데 모여 서서
구경 나온 사람들의 모습도 이 대단한 구경거리를 놓치고
싶지 않은 듯한 모습으로 보입니다.

이 뱃놀이 행사는 고려시대부터 이어져 내려온 전통이라고 합니다.
평양의 명소를 한눈에 둘러보는 대동강 유람은 국왕의 나들이와
평양감사의 연회, 사신 접대에 이르기까지 평양의 대표적인
행사였다고 합니다.

그 다음 전시실은 모두 이 그림들을 기반으로 한 영상을
보여주는 곳이었습니다.
그림에서는 잘 발견하기 어려운 부분부분을 확대해서 커다란
영상으로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그 다음 전시실은 연광정연회도와 부벽루연회도에 그려져 있는
무희들의 춤을 실제 영상으로 제작해서 보여주는 곳이었습니다.

 

궁중무용을 시연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학춤을 추고 있는 모습입니다.

 

 

 

마지막 전시실은, 그림에 나타나있는 일반 백성들의 모습을
영상으로 보여주고 있는 곳이었습니다.

 

 

 

 

 

 

 

 

이렇게,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만난 세한도와
평양감사향연도의 모습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