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화성을 한바퀴 돌아보며 (1)...(장안문에서 봉돈까지~)

2020. 11. 23. 06:30박물관.문화재

 

 

모처럼 수원의 화성을 한바퀴 돌아보고 왔습니다.
날씨는 흐린 편이었지만, 아직 화성 주변에 머물고 있던 가을빛이
나름의 운치를 더해 주고 있었습니다.
천천히 화성을 걸으면서 그 모습들을 카메라에 담아 보았습니다.
수원 화성은 정조임금의 꿈이 담긴 성곽으로
우리나라 성곽 건축 사상 가장 독보적인 면모를 자랑할 정도로
아름답고 웅장한 성곽이라고 합니다.
성곽 건축 당시 정약용의 거중기 발명으로도 유명한 성곽이기도 합니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많은 부분이 파손되었으나
복원을 거쳐 현재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어 있는 자랑스런
우리 문화재이기도 합니다.


화성의 대표적인 성문인 장안문의 모습입니다.
북문에 해당하는 성문으로, 화성에서 가장 웅장한 모습을 자랑하는 성문입니다.



장안문의 앞 모습입니다.
정조임금은 장안(長安)의 의미를 <북쪽으로는 서울의 궁궐을 바라보고
남쪽으로는 현륭원을 바라보며 만년의  편안함을 길이 알린다.>라고
풀이했다고 합니다.

 

 

성 안에서 바라본 장안문의 모습입니다.
한국 전쟁 당시 폭격으로 파괴된 것을 1975년에
다시 복원한 모습이라고 합니다.

 

 

위에서 내려다본 장안문의 모습입니다.

 

 

화성 주변에는 아직 채 떠나지 않은 가을이 머물러 있더군요.

 

 

말끔히 복원되어 있는 성벽의 모습에 왠지 아름다움이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이번 답사는 성 안쪽보다는 바깥을 돌면서 그 모습을 남겨 보았습니다.
장안문을 정문으로 바라보는 기준으로 왼쪽 방향으로 방향을 정하고
걷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먼저 북동포루가 모습을 드러내더군요.
화성에는 모두 5곳의 포루가 있는데, 포루는 총과 화포로
적을 공격할 수 있는 시설물이라고 합니다.
벽돌을 쌓아올린 3층 구조로 되어 있고 아래 두 층은 총과 화포를
쏠 수 있도록 만들었고 상층은 군사들이 적을 감시하고
공격할 수 있도록 누각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포루의 명칭 앞에 붙은 '북동'은 포루가 위치한 방향을 나타내는 수식어입니다.

 

 

다음으로 만나는 건물은 화성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물 중 하나인 화홍문입니다.
북쪽 수문에 해당하는 건물로, 북수문이라는 원래의 이름이 있지만
화홍문이라는 별칭으로 더 잘 알려져 있는 건물입니다.

 

 

 

화홍문의 반영을 찍어본 모습입니다.

 

 

 

 

 

 

화홍문과 가까운 성벽 위에 자리잡고 있는 방화수류정의 모습입니다.
동북각루라는 이름이 있지만 역시 방화수류정으로 더 잘 알려져 있는
건물입니다.

 

 

화홍문과 함께 화성의 가장 아름다운 건물로 꼽히며,
화성의 요충지에 일종의 감시용을 목적으로 세워진 군사시설이지만,
성 밖의 연못과 함께 어우러진 경치를  즐기는 정자로도 더 많이 쓰인
건물이라고 합니다.

 

 

방화수류정에서 바라본 동북포루의 모습입니다.

 

 

 

성 안에서 바라본 동북포루의 모습입니다.

 

 

 

성 밖에서 바라본 북암문의 모습입니다.
암문은 일종의 비상출입문으로, 성의 깊숙하고 후미진 곳에 설치해
적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출입과 군수품을 조달하던 통로하고 합니다.
화성엔 모두 5곳의 암문이 있다고 합니다.

 

 

다시 되돌아본 동북포루의 모습입니다.

 

 

 

동북포루를 지나니 동장대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연무대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건물입니다.

 

 

정면에서 바라본 연무대의 모습입니다.
화성에는 두 곳의 장대가 있는데 팔달산 정상에 있는 서장대는
군사훈련지휘소로 사용하고 이 동장대는 평상시 군사들이 훈련하는
장소로 사용하였다고 합니다.

 

 

연무대를 돌아나오니 멀리 우뚝 버티고 서있는 건물 하나가
눈에 들어 옵니다.

 

 

동북공심돈이었습니다.
화성의 동북쪽에 세워진 망루로 주변을 감시하고 공격하는
시설이라고 합니다.
공심돈은 속이 빈 돈대라는 뜻으로 우리나라 성곽 중에서는
이곳 화성에서만 볼 수 있다고 합니다.

 

 

 

 

 

공심돈 옆에 자리잡고 있는 동북노대의 모습입니다.
노대는 기계식 활인 노(弩)를 쏘기 위해 지은 시설이라고 합니다.
다른 기능으로는 적의 동향을 살피고 깃발을 이용해 적의
동향을 알리는 용도로도 쓰였다고 합니다.

 

 

화성에는 두 개의 노대가 있는데, 서노대는 팔달산 정상
서장대 옆에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화성의 동문에 해당하는 창룡문의 모습입니다.
한국 전쟁 당시 무너진 것을 1976년 복원하였다고 합니다.

 

 

밖에서 바라본 창룡문의 모습입니다.
장안문과 마찬가지로 방어를 위해 문 밖에 둥그런 모양의
옹성을 만들어 놓은 모습이었습니다.

 

 

창룡문 근처의 성벽들은 이렇게 복원한 흔적이 뚜렷하게 보이더군요.
거의 새 벽돌로 쌓아놓은 모습이었습니다.

 

 

동일포루(東1舖樓)의 모습입니다.
포루는 치성 위에 지은 누각으로, 치성은 성벽을 돌출되게
쌓아올린 부분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적의 동향을 감시하는 용도로 쓰였으며 화성에는 15곳의 치성이 있고
그 중 중요한 위치에 5곳의 포루를 설치했다고 합니다.

 

 

동포루의 모습입니다.
동북포루와 같은 기능을 가진 건물로, 주변의 성곽 높이에 따라
포루의 높이도 제각기 달리 지었다고 합니다.

 

 

 

 

 

화성이 대표적인 건물 중 하나인 봉돈을 성 밖에서 바라본 모습입니다.
봉화대와 같은 용도로 지어진 건물로, 내부에는 무기고와 함께
군졸들이 기거할 수 있는 온돌방도 설치 되어 있다고 합니다.

 

 

성 안에서 바라본 봉돈의 정면 모습입니다.

 

 

 

화성을 돌아볼 때마다 이 봉돈의 모습이 유난히
제 눈길을 사로잡는 편이었습니다.
화성의 건물 대부분이 그렇듯, 기능에 충실하게 설계하고
튼튼하게 건축하면서도 건물의 미적 감각까지 빼놓지 않는
그 흔적이 이 봉돈에서 고스란히 드러나 보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동이포루(東2舖樓)의 모습입니다.

동이포루를 지나면 성벽이 끊어지면서 남수문이 나타나더군요.
팔달문을 지나는 동안 성벽은 사라지고 북적이는 두 시장거리가
팔달문 주변에 조성되어 있었습니다.
화성의 전체 구간 중 성벽이 복원되지 않은 곳이었습니다.
팔달문과 남수문을 지나 답사를 계속하기로 했습니다.

2편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