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 들러본, 익산 미륵사지 석탑(국보 11호)과 사리봉영기를 만나고~!!

2022. 2. 26. 14:52박물관.문화재



마침 익산을 지나는 길이 있어
2년 전 가을 무렵 들러 보았던 미륵사지를
다시 찾아가 보았습니다.
그동안, 미륵사지 주변은 많이 변모한 모습이었습니다.
넓은 주차장이 새롭게 생겨나고 석탑 주변도
여러 복원을 거쳐 말끔하게 정돈되어 있었습니다.
제법 몸을 움츠리게 하는 추위에, 옷깃을 꽁꽁 여미고
손을 호호 불어가며 미륵사지의 석탑을 사진으로
담아 보았습니다.

 

미륵사지는, 약 20여 년 간의 보수와 복원 작업을 마치고
2019년 초에 드디어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낸,
국보 제11호 익산 미륵사지 석탑이 있는 곳으로도 유명합니다.

< 사진은 클릭하면 더 크게 볼 수 있습니다.>



미륵사지석탑은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석탑 중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규모가 큰 석탑이라고 합니다.
복원을 위해 탑을 해체하는 과정에서 사리장엄구와 석탑의
건립 연대를 기록한 금판인 사리봉영기가 발견되었는데,
그 기록에 따르면 639년 백제 무왕 재위 시기에 석탑을
축조한 것으로 밝혀졌다고 합니다.



백제 무왕은, 선화공주와의 사랑이야기를 담은 '서동요'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백제의 임금입니다.
하지만 출토된 사리봉영기의 기록에 의하면, 무왕의 왕후가
선화공주가 아닌 당시 백제 최고의 귀족이었던 좌평 사택적덕의 딸이
왕후로 기록되어 있고, 그 왕후가 임금에게 부탁해
미륵사를 지은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동안, 삼국유사의 기록을 근거로 백제 무왕의 왕비가
선화공주라는 기정사실화된 통념을 완전히 뒤집는 기록으로
한동안 학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 뒤로 여러 추측들이 학자들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재해석이
이루어지기도 했지만, 서동요의 이야기가 허구인지에 관해선
아직도 여전히 역사적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고 합니다.


















미륵사지 석탑과 나란히 서있는 동탑의 모습입니다.
정확한 명칭은 '동원 구층석탑'이라고 합니다.
미륵사지 석탑을 서탑, 복원된 구층석탑을 동탑이라 부르고 있었는데
미륵사 창건 당시에는 동탑과 서탑 사이에 목탑이 하나 더 서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졸속 복원이란 비난과 함께 논란의 중심에 서있는 탑이기도 합니다.






서탑 앞으로 보이는 낮은 언덕이 목탑이 서있던 자리라고 합니다.
서탑과 동탑은 목탑을 석탑의 형태로 본떠서 지은 형태라고 하며
당시의 미륵사는 한 기의 목탑과 두 기의 석탑이 그 위용을 자랑하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사찰이었을 것으로 짐작해 볼 수 있었습니다.






석탑의 네 모퉁이 마다엔 이렇게 '석인상'이 놓여져 있더군요.
그 중 가장 선명한 모습을 하고 있는 석인상을 찍어 봤습니다.









보물로 지정되어 있는 미륵사 당간지주입니다.
당간은 절에서 행사나 의식이 있을 때 깃발을 달아두는 장대로
주로 사찰 입구에 세워두는데, 그 당간을 양쪽에서 고정하는
돌기둥을 지주라고 한다고 합니다.
미륵사 당간지주는 서탑과 동탑 앞에 각각 두 기가
세워져 있었습니다.



미륵사지를 돌아본 뒤, 석탑의 복원 과정에서 출토된
사리장엄구를 보기 위해 박물관으로 발길을 옮겼습니다.
박물관을 들어서니 미륵사지 목탑의 모습을 복원해 놓은 모형이
가장 먼저 관람객을 맞이 하더군요.



사리봉영기의 모습입니다.
미륵사의 창건 목적과 발원자, 건립 연대가 기록되어 있으며,
앞면 99자, 뒷면 94자, 전체 193자로 이루어져 있다고 합니다.



사리봉영기의 내용을 옮겨 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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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생각하건데,
법왕(法王)께서 세상에 출현하시고 때에 이르러
깨달음에 이르신 뒤 중생의 부름에 응하시어
세상에 설법을 펼치심은 마치 물 속에 비친 달과 같이
중생의 마음을 어루만지셨다.

법왕께서는 왕궁에 의탁해 태어나
사라쌍수 아래에서 열반에 드셨는데,
8곡(斛)의 사리를 남겨 중생들과 삼천대천세계를
이익되게 하시니 모든 이들이 따르고 불법에 귀의하였다.

깨달음에 이르신 뒤
몸으로 찬란히 빛나는 오색 광채를 뿜으시며
7일씩 7번의 선정에 드시면서 보여준 그 신통한 변화는
참으로 불가사의하다 아니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 백제 왕후께서는 좌평 사택적덕의 딸로서
지극히 오랜 세월 선인(善因)을 심으시어
금생(今生)에 뛰어난 과보를 받으셨다.
그리하여 만백성을 잘 돌보고 사랑하심으로
불법을
몸소 실천하셨으니 삼보의 동량이 되셨다.
그런 까닭으로 삼가 깨끗한 재물을 희사하여 가람을 세우고
기해년(639년) 정월 29일에 사리를 받들어 맞이 하셨다.

원하옵건대 공양의 은덕이 대대로 이어져서
영원토록 다함이  없기를 바라오며,
항상 선한 마음으로 선한 일을 몸소 실천하시니
우러러 바라옵건대, 그 은덕으로 대왕폐하의 수명은
산악과 같이 견고하고 치세는 천지와 함께 영구하여
위로는 부처님의 진리를 널리 펴고 아래로는
백성들을 교화하게 하소서.

다시 원하옵건대,
왕후의 몸과 마음은 수경(水鏡)처럼 맑고 깨끗하게
법계를 항상 밝게 비추시고, 모든 번뇌에서 벗어나
불법을 꿰뚫는 지혜로 성불에 이르시어,
빛도 모양도 없이 언제나 온세상을 감싸고 있는 허공처럼
그 은덕 또한 오래토록 불멸하소서.
그리하여 자손대대로 그 복을 누리게 하시고
무릇 마음을 다하여 모든 중생과 함께
불도를 이루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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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붙이는 글 >

如水中月(여수중월)

----- '물 가운데 비친 달과 같다'라는 문장의 의미는
수중월은 가까이 있으나 실제 달은 아득히 먼 곳에 있으므로
닿을 수 없는 경지에 이른 석가의 모습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해석해 볼 수 있었습니다.
어리석은 중생들이 가깝게 보이는 물 속의 달을 건져내려 하고
또 잡아보려 하나 도저히 잡을 수 없는 존재, 그러므로 항상 가까이에서
중생들을 보살피고 있는 석가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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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曜五色 行遶七遍 神通變化 不可思議

----- 부처님은 깨달음을 얻으신 후,
7일씩 7번 장소를 옮겨가며 선정에 잠기셨다고 합니다.
선정에 잠기시는 동안 여러 신통한 변화를 몸소 보여 주셨는데,
네 번째 선정에 드셨을 때 몸에서 오색 광채를 뿜으셨다고 합니다.
지금 불교기로 사용하고 있는 청색, 황색, 적색, 백색, 주황색이
그 오색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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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身若金剛 等虛空而不滅

----- 金剛(금강)은 불교에서는, 너무 단단해서 깨트리지 못할 것이
없다는 뜻으로도 사용되며, 그리하여 번뇌조차 깨트리고 성불에 이르는
도구를 지칭하는 용어로 쓰이기도 한다고 함.

​----- 虛空(허공)은 불교에서는, 빛도 모양도 없으면서 세상의
모든 사물과 물질을 온통 휩싸고 있는 그야말로 원래의 존재,
만물을 감싸고 있는 부처님의 은덕으로 비유되기도 하며
여기서는, 왕비께서 성불 하신 후 그 온유한 불성이 허공처럼
오래토록 세상을 감싸고 있기를 바라는 염원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생각함.



사리봉영기와 함께 출토된 사리함의 모습입니다.
외함의 모습으로, 정확한 명칭은 <금동제 사리외호>입니다.
그리고, 외호 안에 들어 있었던 유리구슬과 금구슬도
외호와 함께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외호의 모습을 가깝게 찍어본 것입니다.
몸통은 내호를 넣을 수 있도록 여닫는 형태로 제작되어 있다고 합니다.
연꽃무늬와 넝쿨무늬가 화려하게 아로새겨져 있는 모습입니다.







외함과 함께 내함도 나란히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정확한 명칭은 <금제 사리내호>라고 합니다.
내함 속에 들어 있었던 유리구슬들도 함께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내함 옆에 함께 놓여져 있는 작은 유리병은
내함 속에 들어있었던 것으로, 사리를 직접 담았던 유리병으로
추측을 한다고 합니다.
현재 놓여져 있는 유리병은 복원품이라고 합니다.






외함과 내함에 새겨져 있는 문양을 바라보니, 옛사람들이 어떻게
이렇게 정교하고 아름다운 문양을 촘촘히도 새겨 넣을 수 있었는지...
그저 놀랍고도 신기할 따름이었습니다.
바라볼 수록, 그 궁금증만 커져가는 놀라운 문화재였습니다.



미륵사지에서 발굴된 보살의 손을 형상화한 조각입니다.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왼손의 모습입니다.



익산 원수리에서 출토된 '순금제 불상좌상'입니다.
아주 작은 크기였는데, 뒷면에 적혀진 글로 인해 1361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을 한다고 합니다.
성분을 분석해본 결과 금 96%의 순도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미륵사지를 다녀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