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 <박병래 기증관> <도자기관>에서 만난 <조선 백자> 그리고, <손기정 기증 투구>와 <신라 금관>

2021. 12. 7. 14:38박물관.문화재

 

국립중앙박물관 2층 기증관에 자리잡고 있는
<박병래 기증관>과 3층 도자기관에서 카메라에 담아본
여러 <조선 백자>의 모습입니다.
전시되어 있는 백자들 하나 하나가 눈길을 뗄 수 없을 만큼
모두 아름답고 소중한 문화재였지만, 다 카메라에 담아볼 수는
없었고, 개인적으로 눈길을 끄는 백자 만을 골라서 몇 점
카메라에 담아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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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초 대나무무늬 병 > 조선 18세기



< 난초무늬 조롱박모양 병 > 보물(제1058호) 조선 18세기



< 풀꽃무늬 병 > 조선 19세기



< 매화 새 대나무무늬 병 > 조선 19세기



< 백자 청화 국화무늬 각병과 합 > 조선 19세기



< 복숭아모양 연적 > 조선 19세기



< 수탉모양 연적 > 조선 19세기



< 분청사기 상감 연꽃 넝쿨무늬 병 > 보물(제1067호)
조선 15세기



< 백자 상감 풀꽃무늬 병 > 조선 15세기



< 백자 상감 나무 연꽃무늬 병 > 조선 15세기



< 백자 철화 매화 대나무무늬 항아리 > 국보(제166호)
조선 16세기~ 17세기 전반



< 백자 청화 매화 새 대나무무늬 항아리 > 국보(제170호)
조선 15세기 후반~ 16세기



< 백자 철화 대나무무늬 편병 > 조선 17세기



< 백자 철화 풀꽃무늬 병 > 조선 17세기



< 백자 청화 십장생무늬 병 > 조선 19세기



< 백자 청화 물고기 파도무늬 병 > 조선 19세기



< 모란무늬 병 > 조선 19세기



< 운현궁에서 사용한 청화백자 >
흥선대원군의 거처였던 운현궁을 뜻하는 '운현(雲峴)이라는 글자가
도자기 밑바닥에 새겨져 있는 도자기라고 합니다.
운현궁이라 불리게 된 것은, 고종이 왕위에 오른 1년 뒤인 1864년으로
따라서 이 백자들은 모두 1864년 이후에 제작된 것이라고 합니다.



< 백자 청화 용 봉황무늬 합 > 조선 19세기
왕실을 상징하는 용과 봉황은 단독으로 장식되는 경우가 많은데
19세기에는 용과 봉황을 함께 장식한 청화백자가 등장한다고 합니다.
이 합에는 용과 봉황, 구름무늬를 그릇 전면에 가득히 장식해
왕실의 위엄을 나타냈다고 합니다.



< 백자 청화 구름 용무늬 항아리 > 조선 18세기 후반
높이 50cm가 넘는 크고 당당한 몸체에 역동적인 자세의 용을
장식한 도자기입니다.
왕실의 행사 때 꽃을 꽂는데 사용한 화준(罇)으로 여겨지는
도자기라고 합니다.



< 왕실용 다각형 청화 백자 접시 >
19세기에는 중국과 일본 자기의 영향으로 사각형, 12각형
16각형 등 다각형 접시가 제작되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접시들은 용과 구름무늬, 봉황과 구름무늬로 장식되어 있어서
왕실에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고 합니다.



< 백자 청화 십장생무늬 접시 > 조선 19세기



< 백자 철화 끈무늬 병 > 보물(제1060호) 조선 16세기



< 백자 달항아리 > 보물(제1437호) 조선 17세기 후반
최대 지름과 높이가 거의 1:1 비율을 이루는 둥근 항아리로
그 모습이 마치 보름달을 닮아 '달항아리'로 불린다고 합니다.
반원형 몸체를 위아래로 이어 붙여서 몸체 가운데에 이어붙인
흔적이 있다고 합니다.
좌우 대칭이 살짝 어긋난 느낌을 주지만, 자연스럽고 편안한
미감으로 조선 후기 백자의 조형성을 대표하는 도자기라고 합니다.




< 손기정 기증 그리스 청동투구 > 보물(제904호)
손기정 선생은 1936년 제 11회 베를린올림픽 대회에 마라톤 선수로
참가하여 세계 기록을 세우며 우승하였습니다.
선생이 기증한 그리스 투구는 당시 우승자에게 수여한 부상품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올림픽 경기 우승자에게는 부상을 줄 수 없다는 규정에 의해
당시에는 전달받지 못하였고, 우여곡절 끝에 50년이 지난 1986년
베를린올림픽 개최 50주년 기념행사에서 수여 받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1987년 이 투구는 그 상징성을 인정받아 보물로 지정되었고
이후 선생은, '이 투구는 나의 것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것'이라는
뜻을 밝히며 투구를 국가에 기증하였다고 합니다.
이 투구는 1875년 부터 진행된 그리스 올림피아 제우스 신전 발굴을 통해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중앙박물관에서 가장 아름다운 문화재 중 하나인
신라 금관의 모습을 다시 찍어 봅니다.
예전에 비해 조명이 많이 어두워진 편이었지만, 오히려 어두워진 조명이
금관의 모습을 더 제대로 바라볼 수 있는 조건이 되더군요.



< 황남대총 북분 금관 > 국보(제191호)
황남대총 발굴 당시 북분에서 출토되었기에 '북분'이란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
현재까지 발견된 신라 금관들 중에서 가장 화려함을 자랑한다고 하며
황남대총의 두 고분 중에서 여성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북분에서
출토되었으나, 아직 무덤의 주인이 누구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금관의 높이는 27.5cm이며 드리개의 길이는 13cm~30.3cm라고 합니다.
금관의 재질이나 전체적인 형태로 볼때 실제로 머리에 쓰고 활동하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보이며, 부장품으로서 상징적인 의미로 제작된 것이
아닐까 하고 추측을 한다고 합니다.







이렇게,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만난 여러 문화재들의
모습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