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움미술관 <조선의 백자> 전에서 만난...... 간송미술관 소장, 국보 <백자청화철채동채 초충난국문 병>~!!

2023. 4. 5. 06:28박물관.문화재

 

 

 

현재, 리움미술관에서

<조선의 백자. 군자지향>이란 제목으로 열리고 있는 백자 전시회에서

가장 만나보고 싶었던 백자는, 간송미술관 소장품이며 국보로 지정되어 있는

<백자청화철채동채 초충난국문 병>이란 긴 이름의 도자기였습니다.

이름을 그대로 풀어 쓰면, <백자를 제작할 때 청화안료. 철채안료. 동채안료

세 가지 기법을 모두 사용하여, 풀벌레 난초 국화 무늬를 새겨 넣은 병>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개인적으로 이 도자기에 더 관심을 보인 까닭은, 바로 간송미술관 소장품이란

사실 때문이었습니다. 간송미술관은 관람 기회를 얻기도 어려울 뿐더러

기회를 얻는다고 해도 눈길을 끄는 어떤 한 대상을 오랜 시간 마음 놓고 들여다 볼

기회를 얻기가 쉽지 않은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간송미술관에서 보관 중인, 그것도 국보인 도자기를 뜻밖의

장소에서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으니...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그래서 이 도자기 앞에서 한참을 머물며 이런저런 사진도 찍어 봤습니다.

그리고, 도자기에 얽힌 이야기를 따라 가보려 합니다.

 

 

<백자청화철채동채 초충난국문 병>을 국화무늬 위주로 찍어본 모습입니다.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라는 책으로 유명하신 미술사학자 최순우 선생은

그 책에서 이 도자기를 <백자 국화무늬 병>으로 간략한 명칭을 붙여 두었더군요.

 

 

 

위 사진 속의 국화무늬 만을 가깝게 찍어본 것입니다.

이 도자기가 유난히 관심을 끌고 또 유명해 질 수 밖에 없는 이유로는,

청화. 철채. 동채 세 안료의 기법을 모두 적용해서 빚어낸 도자기라는 이유에서

찾을 수 있다고 합니다.

하나의 기물에 세 안료를 모두 사용한 예는 극히 드문 경우로, 세 안료는

각기 성질이 달라서 소성 온도나 가마 환경 등의 영향을 크게 받는 편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제작 과정이 몹시 까다로운 공정을 거쳤을 것은 자명한 일일 것입니다.

당시, 도자를 장식하는 기법 중에서 가장 고난도 기술이 적용 되었을 것으로

추측이 되는, 아주 귀한 도자기라고 합니다.

도자기의 전체 높이는 41.7cm이며 입지름은 4cm 굽지름은 13.3cm라고 합니다.

 

 

 

이름 중에서 '초충'에 해당하는 나비의 모습을 가깝게 찍어 본 것입니다.

 

이 도자기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최초의 시작은 1920년대 초, 지금의

경기도 남양주 팔당 부근에서 야산에서 산나물을 캐던 어떤 할머니로 부터

그 이야기가 시작 된다고 합니다.

동네 주변 야산으로 산나물을 채취하러 갔던 할머니는 우연찮게 이 도자기를

발견하게 됩니다. 생김새가 참기름을 담으면 딱 좋을 듯 하다는 생각에 도자기를

집으로 가져 오게 됩니다. 그리고, 이 도자기의 여정이 시작되게 됩니다.

 

 

 

최순우 선생의 책에서도 그 이야기가 소개되어 있더군요. 옮겨 적습니다.

<일제시대 진고개의 어느 일본인 골동품 가게 안채에 참기름을 팔러 온

개성 아주머니 한 분이 있었는데, 골동상 주인 사나이가 무심코 내실에 들어왔다가

기름이 담긴 백자병을 보고 기절할 뻔했으니, 바로 그 기름병이 이 병이었다.

그 기름장수 아주머니는 이 병을 단돈 5원에 팔고 좋아라 하고 돌아갔고,

그 일본 사람은 그 병을 사들고 수전증 난 사람처럼 와들와들 떨었을 것이다.

며칠 후 이 병의 때를 빼고 광을 내서 그 일본 사람은 이것을 놀라운 값에

팔아 넘겼고, 간송 선생이 이것을 사들일 때는 1만원이 넘었다.>

 

아마도 분명 산나물을 캐던 할머니로 부터, 그곳에 어떤 이유였는 지는 모르나

버려지듯 놓여져 있었던 이 도자기가 발견 되었고 그 후로 여러 사람들의 손을 거쳐

최종적으로 간송 전형필 선생에 의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는 내용으로 보였습니다.

 

 

 

이 도자기의 이동 경로는 이러하다고 합니다.

할머니→ 중간상인 광주리장수 개성댁 일본인 부인 부인의 남편 골동품상 무라노

다른 골동품상 스미이 다쓰오 조선백자 수집가경성미술구락부 경매

그리고, 최종적으로 수집가 <모리 고이치>의 손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러는 동안, 가격의 변화는 1원에서 5원으로, 다시 60원으로 600원으로

어느덧 3000원이란 거금으로 올라 있었다고 합니다.

 

 

 

1936년, 모리 고이치가 세상을 떠난 후 그의 유족들은 여러 소장품과 함께

이 도자기를 경성미술구락부 주관하에 전시하고 경매에 내놓았다고 합니다.

바로 그때에 우리의 문화재 지킴이셨던 '간송 전형필' 선생께서 등장하셨고 경합 끝에

무려 1만4580원에 낙찰 되었다고 합니다.

그 당시에는 아주 고가의 금액으로, 당시 기와집 15채에 해당하는 금액이었으며

경성미술구락부 경매 사상 최고 낙찰가였을 뿐만아니라 조선백자로서도

역대 최고가를 기록하였다고 합니다.

이튿날 경성일보에 실릴만큼 아주 큰 화제를 모았던 경매였다고 합니다.

당시의 낙찰가였던 14,580원을 지금의 시세로 계산하면 대략 70~80억 정도의

금액이 된다고 합니다.

 

 

 

이 도자기는 1963년 보물로 지정 되었다가, 1997년 마침내

<백자청화철채동채 초충난국문 병>이란 이름으로 국보로 승격되었다고 합니다.

모든 무늬의 표현은, '돋을무늬'을 먼저 조각하고 그 위에 진사. 철화. 청화를

곁들여 채색한 것으로, 한국 도자기로서는 매우 이례적인 것이라고 합니다.

어느 솜씨좋은 도공의 손에서 최고의 기술을 접목해 태어난 이 도자기가

어떻게 팔당의 야산에 버려지게 되었는 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현재 우리 앞에

그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참으로 다행스런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입니다.

 

다시 최순우 선생의 글을 인용합니다.

<물에 뺀 듯한 늘씬한 몸매의 곡선과 또 배자유(胚子油) 색깔이 보여주는

은은한 기품은 비교할 만한 대상이 또 없을 만큼 뛰어나다. 더구나 애써 올린

병 입을 쾌적하게 잘라 끊은 맛도 다른 병에서 좀처럼 보기 어려운 솜씨이다.>

 

배자유(胚子油)는, 식물의 배아에서 뽑아낸 기름을 뜻한다고 합니다.

첫 구절의 '물에 뺀 듯한'은, 물에서 뽑아낸 것처럼 부드럽고 유연한 형태를

직설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생각되어 집니다.

그야말로, 수려하고 아름다우며 빼어난 문화재의 절정을 눈 앞에서 느끼고

또 충분히 감상할 수 있었던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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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사진 속의 도자기들은, <조선의 백자> 전시관 중, 두 번째 전시관에서 만난

도자기들의 모습입니다.

문화재급의 도자기들은 없었지만, 여러 기법의 도자기들을 한 곳에

모아 놓은 공간으로, 다양한 도자기의 모습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 중, 표현이 비교적 가능했던 여러 점을 골라 옮겨 보기로 합니다.

 

 

 

백자청화 운룡문 호

조선. 18세기

용의 머리 부분 만을 크게 찍어본 것입니다.

 

 

 

백자청화 연화당초문 병

조선. 15세기

 

 

 

백자청화 매죽문 편병

조선. 17세기

매죽문이라는 이름으로 보아, 뒷편에는 매화 그림이

그려져 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백자철화 매화문 편병

조선. 17세기

 

 

 

백자철화 죽문 편병

조선. 17세기

 

 

 

백자청화 사군자문 사각병

조선. 18세기 중반

 

 

 

백자청화 누각산수문 각병

조선. 18세기 후반

 

 

 

백자청화 모란문 병

조선. 19세기

 

 

 

백자청화 인물문 병

조선. 19세기

 

 

 

분채 표복문 표형 병

(표주박, 박쥐 문양 표주박형 병)

중국, 청나라   일본 도쿄국립박물관 소장

 

 

 

백자청화동채 금강산형 연적

조선. 19세기

 

 

 

백자철화 어문 병

조선. 17세기

 

 

 

백자청화철채 난초청낭자문 병

조선. 19세기

 

 

 

백자 주름문 호

조선. 19세기

 

 

 

백자청화 수파문 팔각병

조선. 19세기

 

 

 

백자청화 서수문 각병

조선. 19세기

 

 

 

백자철화 매죽문 팔각연적

조선. 18세기

 

 

 

백자양각동채 운학문 사각연적

조선. 19세기

 

 

 

백자동채 개형 연적

조선. 19세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