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 신라 금관과 금허리띠 (국보 191호, 192호)~!

2022. 12. 5. 06:40박물관.문화재

 

 

국립중앙박물관에 들를 때마다 꼭 한 번씩은 찾아보게 되는

우리나라 최고의 문화재 중 하나인, 신라 금관금허리띠의 모습을

다시 한 번 카메라에 담아 보았습니다.

정확한 명칭은 <황남대총 북분 금관>과 <황남대총 북분 금제 허리띠>로,
발굴 당시 북쪽 고분에서 출토되었기에 '북분'이란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

현재 금관은 국보 191호, 금허리띠는 국보 192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박물관에서 전시되고 있는 두 문화재는 복제품이 아닌 진품입니다.

 

 

아래 위로 나란히 전시되어 있는 두 문화재의 모습입니다.

무척이나 화려한 모습으로, 옛 신라인들의 예술적 감각과 뛰어난 기술력을

오롯이 느껴볼 수 있는 기막히고도 아름다운 모습이었습니다.

 

 

< 황남대총 북분 금관 >

 

정면에서 바라본 금관의 모습입니다.

현재 발굴된 신라 금관 중에서 가장 화려함을 자랑한다고 합니다.

 

 

 

황남대총의 두 고분 중에서 여성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북분에서 출토되었으며

아직 누구의 무덤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무덤의 조성 시기는 4세기 말에서 5세기 초로 추정되며, 이 시기는 아직

신라왕의 호칭이 왕이 아닌 마립간으로 불리던 시기라고 합니다.

 

 

 

금관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는 곱은옥을 좀더 가깝게 찍어 봤습니다.

모두 77개의 곱은옥이 금관에 장식되어 있다고 합니다.

출(出) 자 모양의 세움장식은 나뭇가지를 형상화한 것이라고 합니다.

 

 

 

 

 

 

 

금관 뒷편으로 두드러지게 돌출되어 있는 장식은, 사슴뿔 모양이라고 합니다.

나뭇가지를 형상화한 세움장식과 사슴뿔 장식은  신라 금관에서 나타나는 특징적인

요소라고 하며, 세움장식은 천상과 지상을 이어주는 매개체로서의 나무와 사슴을

상징화한 것이라고합니다.

 

 

 

신라 금관은 아마도 국립중앙박물관의 전시 문화재 중에서

가장 인기있는 문화재일 것입니다.

금관 앞에는 늘 관람객들로 붐비는 편이었습니다.

 

 

 

금관의 높이는 27.5cm이며 드리개의 길이는 13~30.3cm라고 합니다.

다른 금관에는 아래로 길게 드리워져 있는 드리개가 두 개 밖에 없는 것과 달리

황남대총 금관에는 드리개가 좌.우로 세 개씩 모두 여섯 개가 달려 있다고 합니다.

금관의 재질이나 전체적인 형태로 볼때 실제로 머리에 쓰고 활동하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보이며, 부장품으로서 상징적인 의미로 제작된 것이

아닐까 하고 추측을 한다고 합니다.

 

 

 

< 황남대총 북분 금제 허리띠 >

 

금관 아래에 전시되어 있는 금허리띠의 모습입니다.

역시나 금관 만큼이나 화려함을 자랑하는 문화재였습니다.

허리띠의 총 길이는 120cm라고 합니다.

 

 

 

 

 

 

 

허리띠 뒷 부분의 전체 모습입니다.

드리개의 끝 부분에는 약통, 손칼, 물고기, 숫돌, 곱은옥 등 다양한

상징물을 매달아 둔 모습이었습니다.

모두 일상생활에 필요한 도구 또는 양식이라고 합니다.

 

 

 

신라사회에서는 무덤의 주인이 착용한 허리띠의 모양과 재질이

곧 사회적 신분과 지위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왕족의 무덤에서는 금으로 화려하게 치장한 허리띠가 예외없이 출토 된다고 합니다.

 

 

 

넝쿨무늬가 일정하게 새겨진 정사각형 형태의 과판(띠 구미개)을 이어붙여 놓은 형태로,

총 28개의 과판과 13개의 드리개로 꾸며져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허리띠에 일상도구와 음식을 매달고 다니는 행위는 옛 북방인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합니다.

말을 타고 먼거리를 이동하면서 필요한 일상도구와 먹거리를 허리띠에 매달고

다녔다는 사실이 고대 유물과 벽화 등에서도 확인되고 있는데,  어떻게 신라 왕족의

무덤에서 그와 유사한 형태의 허리띠가 출토되었는 지, 이또한 수수께끼가

아닐 수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문화재 하나하나는 모두가 소중한 역사일 것입니다.

1500년의 세월을 뛰어 넘어 우리 앞에 모습을 보여준 문화재 속에는

앞으로 우리가 풀어야할, 또는 우리가 잃어버린 수많은 역사적 사실들이

가득가득 담겨져 있을 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만난 금관과 금허리띠의 모습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