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박인환의 묘소에서~

2010. 5. 6. 01:20세상 이야기

 

시인 박인환의 대표작인 '목마와 숙녀'란 시를 나는 지금도 줄줄 외우고 있다.

내가 이 시를 외우기 위해 노력한 적은 없지만 이십대 초반 무렵부터

이 시를 완전히 외우게 되었지 않나 싶다. 아마, 이 시를 좋아하게 되면서

자주 들여다 보게 되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이 시를 외울 수 있게 된 것 같다.

그리고 그의 또 다른 대표작인 '세월이 가면'이란 시도 역시 외우고 있다.

그러면서 이 시인의 이름은 나에겐 특별한 존재가 되었다.

 

십여년 전 쯤에 망우리 공원묘지 산책길을 운동 삼아 걷다가 안내판에서

박인환 시인의 묘지가 이 곳에 있다는 것을 알고 찾아가 본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 초라함에 놀란 적이 있었다.

망우리 공원 묘지에 있는 많은 유명인사들의 묘지에 비해서 박인환 시인의 묘지는

그야말로 너무 초라했던 것이다. 그리고 오늘 다시 그의 묘지를 찾아 보았다.

까닭없이 문득 이 곳을 찾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의 묘지는 망우리 고갯길 정상 부근에 있는 공원묘지 입구를 따라 올라가면

주차장과 관리사무소가 있는 정문이 나오는데, 정문을 지나 조금 더 올라가면

순환도로의 갈림길이 나오고 오른편으로 백미터 정도 더 걸어 올라가면 돌비석과 함께

묘지로 내려가는 오솔길을 만날 수가 있다.

 

 

 

정문을 지나서 조금 올라가다가 하얀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나무 한 그루를 만났다. 이름은 알 수 없었지만 먼저 디카에 담아 주었다.

 

 

 

 

사람들의 눈길을 붙잡아 둘만큼 이쁜 꽃이었다.

 

 

 

 

조금 더 걸어올라 가자, 묘지의 입구임을 알리는

아스팔트 길 옆에 세워져 있는 돌비석을 만났다.

거기엔 '목마와 숙녀'의 마지막 부분에 해당하는

시의 한 구절이 새겨져 있었다.

 

 

 

 

묘지로 내려가는 오솔길 입구엔 철쭉이 피어 있었고~

 

 

 

 

꽃이 다 지고 잎이 무성해진 벚꽃 나무가 대문인양 잎을 드리우고 있었다.

 

 

 

 

30미터 정도 걸어 내려 갔을까~ 거기에 그의 묘지가 있었다.

무덤앞에도 돌비석이 세워져 있었고 거기엔 그의 시 '세월이 가면'의

한 구절이 새겨져 있었다.

 

<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

 

 

 

 

시인 박인환은 1926년8월15일 강원도 인제에서 태어나서

1956년3월20일 31세의 나이에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시인 이상을 기리며 3일동안 연거푸 마신 술이 화근이 되어

그를 죽음에 이르게 했을거라 사람들은 추측하고 있다.

유족으로는 부인과 삼남매가 있었다고 한다.

그는 조니워커란 술을 즐겨 마시고 카멜 담배를 즐겨 피웠다고 한다.

그의 별명은 명동의 백작이었는데 훤칠한 외모와 패션감각이

그런 별명을 갖게 된 이유라고 했다.

그의 죽음에 대한 또 다른 해석은 그 때 막 시인으로서 꽃을 피우기 시작했으나

그해 연말 자유문학상 수상 실패와 미래에 대한 불안, 빈곤등이 겹쳐 술로 나날을

보내다가 '꽃이 피면 밀린 술값을 갚겠다'는 주모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채

꽃이 피기도 전에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그의 무덤엔 생전에 그가 좋아하던

조니워커와 카멜담배가 함께 묻혔다고 한다.

 

 

 

 

묘지의 가장자리엔 팻말이 하나 꽂혀 있었다.

공원묘지에서 꽂아 둔 것으로 보였는데 무연고 묘지에 해당되어

올해 안에 신고하지 않으면 임의로 개장 처리 하겠다는 경고판이나

마찬가지였다. 어쩌면 내년엔 사라져 버릴지도 모를 무덤인 것이다.

 

 

 

 

무덤위엔 제비꽃이 무심하게 피어 있었고~

 

 

 

 

딸기꽃도 노랗게 무덤을 장식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름모를 풀꽃 하나가 방문객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의 묘지의 모습이다.

그의 시 '세월이 가면'은 술집에서 즉흥적으로 지은 것으로 유명하다.

지금까지도 노래로 불리면서 애송되고 있는 이 시는 선술집에서 술을

마시다가 휴지에 즉흥적으로 쓴 시를 동석했던 작곡가 이진섭이

역시 즉흥으로 곡을 붙여서 탄생한 노래라고 한다.

그야말로 낭만의 시대에 가장 낭만적인 시 한편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다.

 

 

 

 

돌비석 앞에는 아주 작은 노란꽃이 예쁘게 피어 있었다.

비교적 여러 사람들이 그를 추모하기 위해서든 호기심으로든 묘지를

많이 찾는 듯 했다. 묘지로 내려가는 오솔길은 사람들이 오간 흔적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고 묘지도 비교적 깔끔하게 단장되어 있었다.

 

 

 

 

 

언제 또 다시 이 무덤을 찾아 보고 싶은 생각이 들진 모르지만

그가 남긴 시는 앞으로도 계속 내 기억속에 남아서

그 시를 떠올릴 때마다 이 아름다운 시인의 이름도 함께 떠오를 것이다.

오늘은 그가 생전에 좋아했다던 술 한잔 담배 한 개피 준비하지 못했지만

혹 다음에 또 들르게 된다면 그땐 조니워커 대신 소주라도 들고오고

카멜 담배는 아니더라도 담배 한개피를 꼭 준비해 올 것이다.

어쩌면 그는 그의 시속의 구절처럼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그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다는 것을 너무 빨리 깨우쳐 버린 것이 그의 불행이었고

또 그를 일찍 세상과 등지게 만든 원인이 된 것은 아니었을까?

 

봄 햇살이 그의 무덤 위에서 그 또한 무심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그의 시 목마와 숙녀를 노래 부르듯 중얼거리며 그의 묘지를 걸어 나왔다.

그는 31세로 일찍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시는 앞으로도 그가 산 인생보다

몇배는 더 오래 또는 영원히 살아갈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그는 행복한 사람이다.

그의 시와 그의 이름은 그가 살다간 인생보다 훨씬 더 빛나고

아름답게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있기 때문이니까~

다시 도로위로 올라서자 바람과 함께 한무리의 사람들이 내 곁을 스쳐 지나갔다.

왠지 마음속에서 짐 하나를 덜어 낸듯이 가벼워진 느낌이었다.

그를 추모하는 사람들의 방명록에 감히 내 이름 석자를

살며시 남겨놓고 온 기분이랄까......!

그렇게 그의 묘소를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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