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3. 3. 18:57ㆍ박물관.문화재
고려청자관을 지나 분청사기관으로 들어 섰습니다.
분청사기는, 고려 말에서 조선 초기에 걸쳐 약 150여년간 만들어 졌던
도자기라고 합니다. 회청색 그릇에 흰 흙을 입혀 다양하게 장식한 도자기로
고려청자와 달리 생동감과 자유분방한 특징이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국가에서 필요한 그릇을 관요에서 백자로 제작하기 시작하면서
16세기 중엽에 사라지게 되었다고 하네요.
보물347호인 < 물고기무늬 매병 >입니다.
보물1067호 < 연꽃넝쿨무늬 병 >입니다.
< 모란무늬 매병 >입니다.
특이한 모양의 분청사기는 국보260호 < 모란무늬 자라병 >입니다.
국보259호 < 구름 용무늬 항아리 >입니다.
국보178호 < 물고기무늬 편병 >입니다.
< 풀꽃무늬 병 >입니다.
< 모란 넝쿨무늬 항아리 >입니다.
문양은 다르지만 이름은 같은, < 모란 넝쿨무늬 항아리 >입니다.
< 모란무늬 편병 >입니다.
< 연꽃무늬 항아리 >입니다.
< 여의두무늬 병 >으로, 여의는 승려가 독경, 설법, 법요등을 논의할 때 강사가 지니는
도구로, 불교와 관련된 여러 미술이나 장식에서 형상화 되어 나타난다고 하는군요.
고려나 조선시대에 도자기에도 그 무늬가 쓰였다고 합니다.
여러 < 넝쿨무늬 병 >의 모습들입니다.
이 분청사기에는 이 자기를 제작한 관요들의 명칭이 적혀 있다고 합니다.
분청사기는 그 생김새나 색상이 고려청자에 비해서 현저히 떨어지는 느낌이었고
문양을 제외하곤 대체로 단순한 편이어서 그런지, 아니면 연대가 청자에 비해서
떨어지는 편이어서인지 국보나 보물로 지정된 것들이 많지가 않더군요.
이제 백자관으로 들어섭니다.
백자는 조선을 대표하는 도자기로 조선시대 전 기간에 걸쳐 꾸준히 제작되었다고 합니다.
순수와 절제의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도자기라고 하네요.
보물1054호인 백자 병입니다.
어떤 문양도 없이 백색뿐인 도자기였습니다.
국보175호 < 연꽃 넝쿨무늬 대접 >입니다.
국보170호 < 매화 새무늬 항아리 >입니다.
국보166호 < 매화 대나무무늬 항아리 >입니다.
보물1060호 < 끈무늬 병 >입니다.
위에서 아래로 그어 내린 한 가닥 투박한 선이 독특한 도자기입니다.
< 풀꽃무늬 항아리 >입니다.
보물1437호 < 백자 항아리 >입니다.
보물240호 < 모란 넝쿨무늬 항아리 >입니다.
국보93호 < 포도무늬 항아리 >입니다.
< 장생무늬 항아리 >입니다.
십장생을 도자기에 그려넣은 백자였습니다.
< 넝쿨무늬 항아리 >입니다.
이 작고 귀여운 백자는 < 소나무 매화무늬 연적 >입니다.
매화와 대나무 그림이 섞여 있는 작은 항아리는 < 매화 대나무 항아리 >입니다.
자기의 이름은 문양과 모양을 그대로 표현해서 이름을 짓는가 봅니다.
< 시가 있는 접시 >입니다.
대나무숲 시내에 달빛이 서늘하매 도연명이 취하고
꽃시장에 바람 향기로워 이태백이 잠드네
눈 앞의 세상 일은 정겹기 꿈과 같아
인간 세상 술 없이도 술잔 앞에 있는 듯 하구나.
< 모란무늬 필통 >과 < 생황모양 연적 >입니다.
백자는 학문과 서예의 도구로도 널리 쓰였던 모양입니다.
< 장생무늬 병 >입니다.
백자관을 돌아 본 뒤, 2층 서화관과 기증관은 돌아보기만 했을 뿐
사진으로 담아보진 않았고, 1층 역사관을 둘러 보면서 눈길을 끄는 유물
몇 점만 사진으로 찍어 봤습니다.
대부분 교과서나 역사서에서 이미 보았던 유물들이 대부분이더군요.
아이들을 데리고 공부 삼아 돌아보면 좋을 공간이었습니다.
고구려관에서 만난 아름답고 정교한 유물입니다.
고분에서 발견된 것으로 허리띠의 고리로 사용했던 것이라고 하는데,
아마 주인은 신분이 높은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못신'으로 실제로 신었다기 보다는 부장품으로 만들었거나 상징적인
의미로 쓰였을 가능성이 크다고 하네요.
고구려의 것으로, < 맞 새김무늬 꾸미개 >라는 이름이 붙어 있었습니다.
백제관에 전시되어 있는, 무령왕릉의 고분에서 출토된 부장품입니다.
머리에 쓰던 관을 꾸미던 '꾸미개'인데, 왕비의 것이라고 하네요.
이 꾸미개는 왕의 것이라고 합니다.
왕의 꾸미개는 국보154호, 왕비의 꾸미개는 국보155호로 지정되어 있더군요.
왕비의 것은 아기자기한 모양인데 반해, 왕의 것은 권위와 위엄을 나타내듯
훨씬 더 화려하고 호전적인 느낌을 주더군요.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이 금목걸이는 국보158호였습니다.
장신구로 귀걸이인듯 싶습니다.
작은 금제 꽃잎으로, 관복에 수를 놓아 사용했을 것으로 추측이 되네요.
백제관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유물은 국보287호인 < 백제금동대향로 >입니다.
부여 능산리 고분군 근처 절터에서 1993년 발굴된 것으로, 현재 국립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것은 복제품이라고 하더군요.
옛 백제인들의 뛰어난 문화 수준을 짐작하게 해주는 귀중한 유물이었습니다.
가야관에서 찍은 금제 관모입니다.
높은 지위의 관리들이 사용했던 것으로 보이네요.
가야 무사의 모습을 복원해 놓은 인형과 술잔의 모습입니다.
화려한 장신구도 빠질 수가 없네요.
파형동기입니다. 방패에 장식하던 것으로 가야의 기원과 비밀을 풀어줄
중요한 단서가 되는 유물이라고 하네요.
신라관에서 만난 국보191호, 신라 금관입니다.
1973년 경주 황남대총을 발굴할 때 출토된 금관이라고 하네요.
모두 순금으로 제작되었는데, 화려함의 극치를 이루고 있는 모습입니다.
옆에서 바라본 모습으로, 전체적으로 견고한 편은 아니어서 실제로 사용했다기보다는
부장품으로 따로 제작한 것이 아닐까 추측을 한다고 합니다.
금관 아래에 있는 금허리띠는 국보192호 입니다.
옛 신라왕의 권위가 그대로 느껴지는 화려한 유물입니다.
관꾸미개로, 크기가 큰 편이었는데 머리에 꽂고 있으면 무거웠을 것이란
생각이 들더군요. 하지만 대단히 권위적인 모습이었을 것 같습니다.
금제 관모입니다.
가야의 것과 비슷해 보이기도 하는군요.
화려하고 정교한 세공 기술을 자랑하는 귀걸이입니다.
신라시대에 어떻게 이런 정교한 세공 기술로 귀걸이를 만들 수 있었는지
그저 놀랍고 신기할 따름이었습니다.
보물 456호로 지정되어 있는 역시 아름답기 그지없는 금목걸이입니다.
다른 형태의 목걸이와 금으로 만든 장신구입니다.
귀걸이라고 보기엔 너무 커보였는데, 옷이나 허리띠에 장식하던 장신구가
아니였을까 하는 생각도 들더군요.
또 다른 목걸이로, 국보나 보물로 지정되어 있진 않았지만
충분히 아름다운 목걸이였습니다.
방울 모양을 서로 꿰어 놓은 목걸이로, 각 방울 마다엔 나뭇잎 모양의
장식을 가느다란 금실을 꼬아 붙여 놓았더군요.
국보 91호인 < 말 탄 사람 토기 >입니다.
< 기마인물형토기 >라고도 하며 < 도제기마인물상 >이라고도 합니다.
이 토기는 경주 금령총에서 출토되었는데, 국보 91호는 한 개가 아니라
'주인상(像)'과 '하인상'으로 나뉘어진 두 개입니다.
이 토기는 첫 번째의 '주인상'입니다.
이 토기가 '하인상'으로 두 번째의 국보 91호입니다.
두 토기의 인물을 비교해 보면 완전히 다른 모습입니다.
주인은 장식이 달린 삼각형 관모를 쓰고 갑옷을 입고 화려한 장식이
갖춰진 말을 타고 있지만 하인은 웃옷을 벗고 머리에 수건을 질끈 동여 매고
어깨엔 짐을 걸쳐 메고 있는 모습입니다.
하인이 오른손에 들고 있는 것은 방울이라고 합니다.
방울을 흔들어 주인의 영혼을 인도하는 하인의 모습을 나타낸 것으로
추측을 한다고 합니다.
보물626호 < 굽다리 접시 >라고 하네요.
이 유물도 황남대총에서 발굴된 것이라고 합니다.
아름다운 문양으로 장식된 은으로 만든 잔입니다.
천년 전에도 분명,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떤 기술이나 기계가 있었던 것이
분명한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게하는 유물들이었습니다.
국보193호 유리병입니다.
당시 신라에서 유리병을 제조할 수 있는 기술이 없었던 것으로 보아
멀리 서역에서 수입된 것으로 추측을 한다고 합니다.
부러진 손잡이 부분을 수리하면서 금실을 사용했을 정도였으니
당시 이 유리병이 얼마나 귀한 물건이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고 합니다.
로만글라스라는 총칭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로만글라스는 로마제국에서 만들었던
유리제품을 일컫는 말로, 지중해 연안을 따라 널리 퍼져서 사용되었다고 하네요.
신라가 멀리 서역과 교역을 했다는 확실한 증거가 되는 유물인 셈입니다.
그리고 신라관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문화재인 국보 제3호
<진흥왕순수비>입니다.
북한산 비봉에 있던 것을 박물관으로 옮겨 놓은 진품으로, 현재
비봉에는 복제품을 세워 놓았다고 하는군요.
신라 진흥왕이 영토를 확장한 뒤에 그 사실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놓은
총 4기의 순수비 중 하나로, 조선시대 추사 김정희 선생에 의해
진흥왕순수비로 밝혀졌다고 하네요.
아주 소중한 우리의 문화재였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을 제대로 꼼꼼히 돌아볼려면 꼬박 하루가 걸리거나
최소 5시간은 잡아야 할 것 같더군요. 만약 시간이 없거나 전체를 돌아보기가
버겁고 힘들다면 3층만을 돌아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1층과 2층이 비교적 우리 눈에 익은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면 3층은
가장 문화재다운 유물을 만날 수 있는 장소였습니다.
그렇게 국립중앙박물관을 돌아보고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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