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의 문화재들(2)~(국보83호 반가사유상, 고려청자)

2014. 3. 3. 18:52박물관.문화재

 

 

불교조각관에서 커다란 불상들을 지나니,

전시관 한켠에 칸막이가 되어 있는 또 다른 공간이 있었습니다.

안내문을 보니, 국보83호 반가사유상을 전시하고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뜻밖의 문화재를 만난다는 놀라움에 안으로 들어서니, 어두컴컴한 공간에

금빛으로 단장을 하고 단정하게 앉아있는 반가사유상이 우릴 반기고 있었습니다.

 

 

 

 

박물관에서는 국보 제78호 반가사유상과 번갈아 전시를 하고 있다고 하며,

국보83호 반가사유상은 크기가 93.5cm로, 금동으로 만든 반가사유상 중에서

가장 클뿐 아니라 최상의 아름다움을 뽐낸다고 하네요.

 

 

 

 

반가사유상은 생로병사를 고민하며 명상에 잠긴 싯다르타 태자의 모습을

표현한 것이라고 하네요. 일제강점기에 발견된 이 반가사유상은 출토지가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고 하네요. 그래서 신라작과 백제작으로 보는 견해가 분분하며

현재도 계속 연구중에 있다고 합니다.

 

 

 

 

그야말로 숨막히도록 아름다운 문화재였습니다.

 

 

 

 

반가사유상을 둘러 본 뒤에 밖으로 나오니, 또 다른 국보급 문화재들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 작고 아름다운 금동 불상들은 통일신라 시대의 불상들로, 경주 황복사 터 삼층석탑에서

발견되었다고 하네요. 좌측이 국보80호 부처, 우측이 국보79호 아미타불 금동불상입니다.

 

 

 

 

국보 79호 아미타불 금동불상~

 

 

 

 

국보 80호 부처~

 

 

 

 

뒷 부분을 찍은 모습입니다.

 

 

 

 

넓은 광배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이 금동불상은 < 연가칠년 >이란 제작 연대가

새겨진 불상으로, 국보119호라고 하네요.

 

 

 

 

광배 뒷면에 제작 연대와 제작자를 알 수 있는 글이 새겨져 있는데 제작 연대가

새겨진 불상 중에서 가장 오래된 불상이라고 합니다.

고구려에서 제작된 불상이라고 합니다.

 

 

 

 

 

관음보살을 표현한 이 불상은 고려시대의 것으로, 그 모양이 화려하고 정교하지만

국보로 지정되어 있진 않더군요.

 

 

 

 

이 약사불은 보물328호로 지정되어 있더군요.

통일신라 시대의 불상이었습니다.

 

 

 

 

 

 

이 6개의 작은 불상들은, 부처와 보살을 표현한 조선시대의 금동불상으로,

경기도 남양주시 양수리에 있는 수종사 오층석탑에서 출토되었다고 하네요.

 

 

 

 

이 불상은 국보186호로 양평 한강변에서 발견된 불상이라고 하네요.

불상의 크기가 약 30센티 정도로 작은 불상이었습니다.

 

 

 

 

이 불상은 국보127호 관음보살로 서울 삼양동에서 출토 되었다고 하네요.

역시 크기가 20센티 정도의 작은 불상이었습니다.

 

 

 

 

광배 앞에 앉아 있는 이 작은 불상은 보물329호로 지정되어 있더군요.

충남 부여 군수리 절터에서 출토된 백제 초기의 불상이라고 합니다.

 

 

 

 

이 반가사유상은 보물331호로 지정되어 있더군요.

역시 삼국시대에 제작된 것이라 합니다.

 

 

 

 

불교조각관을 지나 금속공예관에서 만난 금동장신구~

 

 

 

 

< 용머리 모양 자물쇠 >라고 하네요.

화려한 생김새로 봐선 궁중이나 귀족들이 사용했던 물건 같습니다.

 

 

 

보물1359호인, < 감은사 터 동탑 사리갖춤 >입니다.

감은사는 신문왕이 수중릉으로 유명한 아버지 문무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

지은 절이라고 합니다.

 

 

 

역시 사리갖춤으로, 위의 사리갖춤이 외함이며 아래는 외함속에 들어 있었던

내함이라고 합니다. 전체적으로 믿기지 않을 정도로 아름답고 정교하며

세밀하게 제작되어 있다고 하네요.

 

 

 

국보92호 <청동 물가 풍경무늬 정병 >입니다.

정병은 불가에서 깨끗한 물을 담는 병으로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여러 정병 중에서 국보로 지정된 이 청동 정병이 단연 아름다워 보이더군요.

 

 

 

이 병은, < 넝쿨무늬를 도드라지게 새긴 병 >이란 제목이 붙어 있었습니다.

고려시대에 제작된 것이라고 합니다.

 

 

 

< 잔과 받침 >이란 짤막한 설명이 붙어 있는 유물입니다.

 

 

 

 

< 정으로 새긴 봉황무늬 그릇 >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는 유물입니다.

고려시대에 제작된 것이라고 하는군요.

 

 

 

금속공예관을 지나면, 드디어 은은한 비색으로 치장한

고려청자들이 전시되어 있는 청자관으로 들어서게 됩니다.

그 눈부신 아름다움에 정신이 아찔할 정도였습니다.

 

 

 

 

모두 다 찍어 올순 없어서 국보급 청자들만 찍어 왔습니다.

 

 

 

 

국보61호 < 청자 어룡형 주자 >입니다.

 

 

 

 

< 사자 장식 주전자와 받침 >으로 그 아름다움에 비해선 국보나

보물로 지정되어 있지 않더군요.

 

 

 

< 꽃 모양 접시 >입니다.

 

 

 

 

<참외 모양 병 >으로 국보 제94호입니다.

 

 

 

 

< 조롱박 모양 주전자 >

 

 

 

 

< 죽순 모양 주전자 >

 

 

 

 

< 석류 모양 주전자 >

석류는 자손번창, 특히 아들을 상징한다고 하네요.

 

 

 

 

많은 청자 중에서 단연 그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국보 제95호 <칠보무늬 향로 >입니다.

화려하면서도 섬세하고 정교한 아름다움에 눈을 뗄 수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높이가 15.3cm, 대좌지름이 11.5cm의 크기라고 합니다.

 

 

 

향로를 떠받치고 있는 세 마리의 토끼중, 한 마리입니다.

칠보무늬향로를 더욱 더 돋보이게 하는, 아름다움의 백미였습니다.

 

 

 

 

< 기린 장식 향로 >입니다.

 

 

 

 

< 연꽃 넝쿨무늬 주전자와 받침 >으로, 국보나 보물로 지정이 되지 않은 것이

의아할 정도로 아름다운 청자였습니다.

 

 

 

 

국보 제60호 <사자 장식 향로>입니다.

<사자형 뚜껑 향로> <청자사자유개향로>로도 불리더군요.

 

 

 

 

국보 제114호 <국화 모란무늬 참외모양병>입니다.

 

 

 

 

국보 제115호 <국화 넝쿨무늬 대접>입니다.

 

 

 

 

국보98호 < 모란무늬 항아리 >입니다.

 

 

 

 

보물346호 < 모란무늬 매병 >입니다.

 

 

 

 

국보116호 < 모란넝쿨무늬 조롱박 모양 주전자 >입니다.

 

 

 

 

< 시가 있는 병 >이란 이름의 청자입니다.

 

 

 

 

국보113호 < 버드나무무늬 병 >입니다.

길쭉한 모양에 여백의 미를 살려 무심한 듯 그려 넣은 버드나무 그림이

운치를 더하는 멋진 고려청자였습니다.

 

 

 

< 연꽃무늬 참외 모양 병 >입니다.

 

 

 

 

< 잎무늬 매병 >으로 보물340호였습니다.

 

 

 

 

이 작은 모양의 청자는 < 국화 넝쿨무늬 항아리 >입니다.

 

 

 

 

< 용머리 장식 붓꽂이 >입니다.

 

 

 

 

특이한 모양의 이 청자는 < 복숭아 모양 연적 >입니다.

 

 

 

 

< 구름 용 무늬 병 >입니다.

 

 

 

 

특이한 생김새의 이 청자는 < 어룡 모양 향로 >입니다.

 

 

 

 

국보253호 < 은테를 두른 모란무늬 접시 >입니다.

 

 

 

 

< 원숭이 모양 묵호 >라는 이름의 먹물을 담는 항아리입니다.

 

 

 

 

이 청자는 2층 기증관에서 찍은 것으로, < 연꽃 넝쿨무늬 주전자 >입니다.

 

 

 

 

역시 2층 기증관에서 찍은 청자인데, < 포도 동자무늬 주자 >입니다.

 

 

< 고려청자 >란~?

고려청자는 세계적인 명품으로, 고려 초기에는 비색이 가장 아름답고 조형감각이 특히 뛰어난

'순청자(純靑磁)'가, 중기에는 세계 초유의 '상감청자(象嵌靑磁)'가, 그리고 후기에는

이밖에 철사(鐵砂) 등으로 그림을 그려 장식하는 회청자(繪靑磁)가 유행하였다.
고려 미술의 대표는 공예이며, 그 중에서도 고려청자는 세계적인 명품이다.

고려청자는 주로 서남 해안에 분포되어 있는 가마에서 만들어졌는데 특히 전라도 지방에

많은 가마가 밀집되어 있었으며, 전남 강진과 전북 부안이 대표적이다.
초기에는 중국 도자기의 영향을 많이 받았지만 12세기부터는 고려만의 특징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청자의 절정기에 나타난 형식이 상감청자로 상감기법은 처음에는 나전칠기와 금속공예에 사용되던 기법이었다.

상감청자의 출현으로 고려청자는 새로운 전환기를 맞이해 유약은 얇고 투명해져서 파르스름한 유약을 통해

상감무늬가 선명하게 드러나게 되었다.
고려청자는 1231년 몽고의 침입 이후부터 쇠퇴하여 조선 초기의 분청사기로 계승되었다.
< daum 지식에서 발췌~ >

 

 

고려청자관을 지나 분청사기와 백자관으로 발길을 옮겼습니다.

< 3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