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성 조문국사적지와 의성 탑리리 오층석탑(국보 77호)~!

2022. 4. 25. 23:31세상 이야기


의성을 지나 군위 방향으로 2차선 도로를
열심히 달리는데, '조문국사적지'라는 커다란
안내판이 눈에 들어 옵니다.
몇 해 전, 작약꽃을 보기 위해 찾아온 적은 있으나
사적지를 제대로 돌아본 적은 없었는데, 문득
사적지를 돌아보고 싶은 마음에 차를 세우기로 합니다.
작약꽃은 아직 이르지만, 철쭉이 화사하게 방문객을
반겨주고 있었습니다.

< 사진은 클릭하면 더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조문국사적지는 드넓은 언덕에 수십 기의 무덤이
모여있는 곳이었습니다.
어떻게 이곳에 경주 부근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고분군이 조성되어 있는 지, 그저 신기할 따름이었습니다.

조문국은 삼국사기에 의하면, 의성 지역을 중심으로
존재했던 부족국가로 신라 벌휴왕 2년에 신라의 영향권으로
편입되었다는 것만 알려져 있을 뿐, 그 이상의 기록은
전혀 남아있지 않다고 합니다.
의성 금성군 일대에 약 200여 기의 고분이 분포하고
있는 것으로 봐선, 나름의 상당한 세력을 갖추고 있었던
부족국가로 추측을 할뿐이라고 합니다.



사적지의 중심에 있는 경덕왕릉입니다.
이 무덤이 조문국의 경덕왕릉으로 알려진 데에 대해선
전설이 전해져 오고 있다고 합니다.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봉분이 사라진 고분 위로 어떤 농부가
외밭(瓜田)을 조성하기 위해 땅을 개간하던 중 고분을 발견했고
그날 밤, 의성 현령의 꿈에 백발 노인이 나타나 스스로
경덕왕임을 밝히면서 무덤을 계속 봉안토록 부탁하였다고 합니다.
그 후 봉분을 다시 쌓고 비석을 세워 제사를 지내기 시작했는데
지금도 그 전통이 꾸준히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고 합니다.



경덕왕릉을 지나 천천히 사적지를 돌아보기로 합니다.
어쩌면...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는 전체적으로 본다면
아주 작은 한 부분 만을 들여다 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문헌상으로 존재하지 않는 역사를 들여다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곳에서 나름의 역사를 일구며, 이렇게 대단한 유적을 남겼던
사람들의 이야기는 모두 사라져 버린 역사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언덕의 정상 부근에 자리잡고 있는 35호 고분의 모습입니다.
이 땅에서 나름의 찬란한 역사를 일구었으나, 역사에 기록되지 못한
어느 왕의 쓸쓸한 무덤인지도 모를 일입니다.












조문국사적지를 돌아보고 다시 차를 달리던 도중
<의성 탑리리 오층석탑>이라는 안내판이 눈에 들어 옵니다.
더군다나 국보라고 하니 꼭 보고 싶은 마음에 탑을
둘러 보기로 합니다.


국보 77호로 지정되어 있는
의성 탑리리 오층석탑의 모습입니다.

사진을 이렇게 정면을 피해서 찍을 수 밖에 없는 이유는
탑의 정면에 소나무가 자리하고 있더군요.
굳이 왜 탑의 정면에 소나무를 배치했는 지... 만약
배치한 것이 아니라 저절로 자라난 것이라면
다른 곳으로 옮겨 심는 것이 타당할 것으로 보였습니다.
정면에서 바라보면 소나무가 탑을 가리고 있는
불편한 모습이었습니다.
이런저런 이유를 떠나 저 소나무는 다른 곳으로
옮겨 심는 것이 타당할 것으로 보였습니다.









의성 탑리리 오층석탑은, 통일신라 시대에
세워진 탑이라고 합니다.
높이가 9.6m이며, 석탑의 각 부분이 거의 완전하게
남아 있고 벽돌로 탑을 만든 전탑(塼塔)의 수법을 모방하는
한편, 일부에서는 목조건물의 양식까지 보이고 있어
우리나라 석탑 양식의 발전을 고찰하는 데에 귀중한
자료가 되는 탑이라고 합니다.

경주 분황사 석탑 다음으로 오래된 탑이라고 하니
충분히 국보로 지정될 만한 석탑의 모습이었습니다.






탑의 뒷면 모습입니다.



계단을 오른 뒤, 바로 앞에서 바라본
탑의 모습입니다.







뜻밖의 여행길에서 만난, 우리의 소중한
문화재들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