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 < 합스부르크왕가 600년, 매혹의 걸작들 >을 관람하고...!

2022. 10. 27. 13:51박물관.문화재

 

 

현재,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는
<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 >을 관람하고 왔습니다.
이번 전시는 한국과 오스트리아 수교 130주년을 기념하여
오스트리아 빈미술사박물관의 대표 소장품들을 전시하는 행사라고 합니다.
합스부르크 왕가는 13세기 신성로마제국 황제를 배출한 이후
15~20세기 초까지 600여년 간 신성로마제국과 오스트리아 영토를 다스리는

황제로 군림한 가문이며, 유럽의 정세에 가장 영향력 있었던 명문가 중

하나라고 합니다.
그 합스부르크 왕가가 15~20세기에 걸쳐 수집한 여러 미술품들과
오스트리아의 역사와 문화를 조명하는 96점의 전시품이 소개되는 전시였습니다.

전시 일정은 10월 25일 부터 2023년 3월 1일 까지라고 합니다.
기획전시에 관한 정보를 미리 입수하고 있었던터라 서둘러 입장권을 예매했고,

전시 개막 이틀 째 되는 26일에 전시를 보고 왔습니다.
96점의 전시품들을 모두 찍기는 어려워서, 그 중 중요한 인물들의 초상화와
눈길을 끄는 미술품 만을 골라 블로그로 옮겨 봅니다.
꼭, 추천하고 싶은 멋진 전시였습니다.

< 스크롤 압박이 있습니다 >

 

기획전시실 입구에서 만나는, 전시를 알리는 커다란 안내판입니다.
박물관 개장 시간인 10시 무렵 도착하니, 이미 전시 티켓을 구하기 위해

길게 줄이 늘어서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차례를 기다려 티켓을 교환한 뒤에, 드디어 전시실로 입장할 수 있었습니다.


 

전시실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막시밀리안 1세의 초상화입니다.
막시밀리안 1세는 합스부르크 왕가가 유럽의 패권을 쥘 수 있도록 기초를 다진

진정한 설계가 역할을 했던 인물이라고 합니다.

막시밀리안 1세 이전의 신성로마제국 황제들은 다른 군주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공국 만을 다스리던 특별하지 않은 군주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1508년 황제로 등극한 막시밀리안 1세는 나름의 비책을 가지고 있었는데,

바로 결혼으로 영토를 확장하고 동맹을 맺어 제후들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황제의 권위를 세우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막시밀리안 1세는 마리와 결혼하여 부르군트공국을 얻었고, 아들과 딸을
스페인 왕실의 공주, 왕자와 결혼시켜 스페인 왕국 전체와 식민지 영토까지 얻었다고 합니다.
거기다 손녀와 손자를 보헤미아 왕실의 공주, 왕자와 결혼시켜 동유럽까지 손에 넣으면서

진정한 유럽의 패권을 손에 넣을 수 있었던, 합스부르크 왕가의 번영을 이끌어 낸

진정한 설계자였다고 합니다.


 

루돌프 2세
루돌프 2세의 궁정화가였던 마르티노 로타가 황제 즉위를 기념하여 제작한

초상화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루돌프 2세는 합스부르크 군주를 통틀어 가장 독특한 인물로 꼽힌다고 합니다.
루돌프 2세의 치세 동안 구교와 신교의 갈등은 커져만 갔고, 또한 13년 이상 지속된

오스만튀르크 전쟁에서는 별 다른 소득을 얻지 못해, 무능한 황제라는 인식이

강했던 군주라고 합니다.


 

마티아스
마티아스는 1576~1612년까지 신성로마제국 황제를 지냈던
루돌프 2세의 동생이라고 합니다.
정치적 야망이 컸던 마티아스는 헝가리 신교 진영 세력을 규합해
1608년에는 오스트리아. 헝가리, 1611년에는 보헤미아의 왕이 되었고
결국 1612년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로 추대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황제가 된 이후에 오히려 신교 진영을 탄압하는 정책을 폄으로서
30년 종교전쟁의 단초를 제공한 인물로 평가 받는다고 합니다.

 

 

 

페르디난트 2세 대공
1564~1595년까지 티롤지역을 다스렸던 페르디난트 2세 대공의 모습입니다.
대공은 종교 대립이 심했던 티롤에서 비교적 온건한 입장을 취한
인물이었다고 합니다. 그 결과, 다양한 종파가 자리잡고 예술이 발달하면서
르네상스 인본주의가 티롤에 유입되는 효과가 일어났다고 합니다.


 

페르디난트 카를 대공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프랑스식 옷차림을 한 페르디난트 카를 대공의 모습은,

그가 패션에 민감하고 허영심이 많았음을 드러낸다고 합니다.
의복을 장식하는 리본과 나비모양 매듭은 '갈랑'이라 불리던 프랑스 패션의 요소로,

17세기 중엽 유럽에서 유행했다고 합니다.


 

우물가의 리브가와 엘리에셀
구약성경에서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의 신붓감을 고르기 위해
시종 엘리에셀을 라반에게 보냅니다. 그는 길을 떠나던 중 우물가에서
낙타에게 물을 먹이고 있는 젊은 여성 리브가를 발견하곤 그녀가 신이 정한

신부임을 알게 해달라고 기도를 합니다.
작가는 리브가가 낙타에게 먹일 물을 엘리에셀에게 건네 주는 순간을

그렸다고 합니다.


 

가족
아기 예수를 바라보고 있는 성모 마리아와 그녀의 남편인
요셉의 모습을 그린 그림이라고 합니다.


 

카를 5세가 있는 메달
카를 5세가 1535년 튀니지를 정복한 것을 기념하여 제작한 메달이라고 합니다.
월계관을 쓴 황제는 고전주의풍의 가슴 갑옷을 입고 그 위에 망토를 걸치고 있습니다.

황제 주위로는 카를 5세를 아프리카 황제로서 축하한다는 의미의 문구가

새겨져 있다고 합니다.


 

스페인 왕 펠리페 4세
이 초상화는 펠리페 4세의 첫 번째 왕비인 엘리자베트의 초상화와
짝을 이루는 작품이라고 합니다.
15~17세기 남성들이 즐겨입던 더블릿을 입고 있으며 소매에만
검은색과 흰색 문양의 장식이 있고, 목에는 검은색 리본의 황금양모 기사단

휘장을 걸고 있다고 합니다.


 

스페인 왕비 엘리자베트
위의 펠리페 4세의 초상화와 짝을 이루는 초상화로, 첫 번째 왕비인
엘리자베트는 프랑스 왕 앙리 4세마리 데 메디치 사이에서 태어났다고 합니다.
왕비는 초상화를 그리는 것을 즐기지 않았는데, 딱 한 번 포즈를 잡아
초상화를 그렸다고 합니다.


 

흰옷을 입은 마르가리타 테레사 공주
이번 합스부르크 기획전시의 표지를 장식하고 있는 귀엽고 깜찍한 모습의
마르가리타 테레사 공주의 초상화입니다.
마르가리타 테레사는 스페인 왕 펠리페 4세와 두 번째 부인 오스트리아의
마리아나 사이에서 태어났다고 합니다. 스페인의 공주를 보고 싶어하던
페르디난트 3세를 위해 그린 초상화라고 합니다.


 

레오폴트 빌헬름 대공
성공한 지휘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초상화로, 레오폴트 빌헬름 대공은
1619~1637년까지 신성로마제국을 다스렸던 페르디난트 2세의 막내 아들로
30년 전쟁 시기 독일 기사단의 단장이었다고 합니다.
1646년에는 스페인령 네덜란드의 총독으로 임명되기도 했다고 합니다.


 

페르디난트 3세
페르디난트 3세는 페르디난트 2세와 바이에른의 마리아 안나의
세 번째 아들이라고 합니다. 음악적 재능이 뛰어났던 페르디난트 3세는
합스부르크 군주들 중 처음으로 작곡을 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에 서명하는 것으로 길고 길었던 30년 종교전쟁을
종식하고 평화를 이루어낸 군주라고 합니다.

 

 

 

갑옷 입은 남자

창밖 바다에 떠있는 빨간 군함으로 보아 초상화 속의 주인공은

공화국 해군에 복무하며 해상원정에서 부를 쌓으려고 했던 베네치아

귀족이었던 것으로 추측을 한다고 합니다.

 

 

 

레오폴트 빌헬름 대공의 브뤼셀 화랑
전시실의 벽면 전체를 장식하고 있던 그림으로, 그림이 너무 커서
전체의 모습이 아닌 중요한 부분만을 찍어본 것입니다.
그림 속에는 모자를 쓴 레오폴트 빌헬름 대공과 그의 궁정화가
다비드 테니르스 2세를 중심으로 당시 구입한 51점의 이탈리아 회화를
둘러보는 장면이 표현되어 있다고 합니다.


 

동방박사의 경배
성모 마리아의 무릎에 앉은 아기 예수가 무릎을 꿇고 경의를 표하는
나이 든 왕을 축복하고 있는 모습이라고 합니다.
왕의 오른편으로는 터번을 쓰고 코트를 입은 무어인 왕이 금그릇을
손에 들고 아기 예수에게 허리를 숙이고 있는 모습도 보입니다.
그리고, 성모 마리아의 뒤에서 이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요셉의 모습도 보입니다.
'세 명의 동방박사'는 16세기 베네치아에서 인기가 많았던 주제라고 합니다.

 

 

 

마리아 테레지아
바라보고 있으면 금방이라도 초상화를 뚫고 나올듯 강렬한 포스로
시선을 끌던 초상화였습니다.
마리아 테레지아는 1740년 아버지 카를 6세가 사망하자 오스트리아와
헝가리, 보헤미아의 왕위를 차례대로 계승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여성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될 수 없었기 때문에 남편인
프란츠 슈테판이 1745년 신성로마제국 황제로 즉위했다고 합니다.

 

 

 

1780년 11월 29일 폐렴으로 사망할 때까지 마리아 테레지아는, 여성이라는

불리한 점을 극복하고 합스부르크 왕가의 유일한 여성통치자로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고 합니다. 통치기간 동안 오스트리아는 정치적으로 안정되고 문화적으로

번성하였으며 왕정의 근대화를 이루어낸 뛰어난 정치가였다고 합니다.

남편인 프란츠 슈테판과의 사이도 무척이나 좋은 편이어서, 둘 사이에 무려

5남 11녀의 자식을 낳았다고 하며 마리아 테레지아가 살아있는 동안 6명의 자녀가

먼저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후세의 평가에 따르면, 합스부르크 왕가의 통치자들 가운데 가장 유능한
인물 중 하나였고, 어떤 역사가에 따르면 '합스부르크 왕가에서 가장 인간적인
인물'로 평가 되고 있다고 합니다.


 

요제프 2세
마리아 테레지아와 프란츠 1세의 아들인 요제프 2세는 아버지의 황위를
물려 받아 1745년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되었다고 합니다.
초상화의 배경을 서재로 한 것은 요제프 2세가 '일하는 황제'로 묘사되기를
원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초상화에는 전통적으로 그려지던 휘장이 없어
그가 허례허식 없는 황제로서 오스트리아 국민 앞에 서고 싶어 했음을
알 수 있다고 합니다.


 

마리 루이즈 엘리자베트 비제 르브룅
이번 전시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초상화로 그 크기가 무려 2m 70cm라고 합니다.
초상화의 주인공은 우리에겐 마리 앙투아네트로 더 잘 알려져 있는
마리 안토니아(1755~1793)로, '베르사이유의 장미'라는 만화의 모델이 된
여인이기도 합니다.
마리 안토니아는 1774년 프랑스의 왕위 계승자였던 루이 16세와 결혼합니다.
그리고, 후에 왕비가 되고 프랑스 대혁명을 겪으면서 단두대에서 처형당하는
비극적인 삶을 살다간 여인이기도 합니다.

 

 

 

그림을 가깝게 찍어본 모습입니다.
프랑스 대혁명 전부터 프랑스 국민들은 '정치에 간섭하는 오스트리아 여자'라고
부르며 낭비가 심한 어린 왕비를 싫어했다고 합니다.
초상화에서는 실크로 만들어진 전통적인 프랑스식 드레스를 입고 있는 모습으로
일생을 악평에 시달렸지만 한편으로는 일찍이 패션의 선구자였던 인물로
재평가를 받고 있기도 하다고 합니다.


 

꽃다발을 꽂은 파란 꽃병
전시실의 한켠에는 꽃그림이 있는 정물화 만을 모아둔 공간이 있었습니다.
그 전시실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정물화 한 점만을 올려 봅니다.


 

이집트로 피난 중 휴식
요셉과 마리아, 그리고 요셉이 헤롯왕의 박해를 피해 이집트로
피신하는 도중 휴식을 취하고 있는 장면을 묘사한 그림이라고 합니다.
그들을 보호하고 있는 천사의 모습도 보이며, 숲을 배경으로 아기 예수 가족이

쉬어가는 장면은 당시 화가들이 즐겨 그렸던 주제였다고 합니다.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
얀 브뤼헐 2세의 그림으로,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를 둘러싼
수풀과 꽃은 꽃정물에 뛰어 났던 얀 브뤼헐 2세의 화법을 보여준다고 합니다.


 

쥬피터와 머큐리를 대접하는 필레몬과 바우키스
나그네로 변장한 신들은 프리기아라는 마을을 방문합니다.
집집마다 문전박대를 당하지만 유일하게 이 늙은 부부만이 그들을 성심성의껏 대접합니다.

화가는 노인이 그들에게 대접한 포도주가 줄어들지 않자, 신들의 정체를 깨닫는 순간을

묘사한 것이라고 합니다.
서로 마주보고 있는 붉은 옷의 머큐리와 필레몬, 그리고 단 한 마리 남은 거위마저

대접하기 위해 잡으려는 바우키스를, 놀란 얼굴로 손을 들어 저지하고 있는

쥬피터의 모습이 생생하게 표현되어 있는 그림이었습니다.


 

기름 부음을 받는 솔로몬
밧세바의 아들 솔로몬이 다윗의 왕위를 물려 받아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기름 부음을 받는 구약성경의 이야기를 그린 그림이라고 합니다.
기름 부음은 왕위 계승 의식을 의미한다고 하며, 그림 속의 나선형 기둥은
로마 성 베드로 대성당에 있는 솔로몬 기둥을 연상시키므로 기름 부음의
주인공이 솔로몬임을 나타낸다고 합니다.


 

마리아 크리스티나 대공의 약혼 축하연
1766년 4월 2일 호프부르크 왕궁에서 열린 마리아 테레지아의 딸
마리아 크리스티나 대공과 작센공작 알베르트의 약혼을 축하하는
공식 연회를 그린 그림이라고 합니다.


 

그림의 중앙 부분을 확대해서 찍어 본 것입니다.
테이블 중앙에는 요제프 2세 황제와 황후가 자리하고 있고 황제의 오른쪽에
신랑 신부가 자리하고 있다고 합니다.
테레지아의 두 남자 대공과 후일 마리 앙투아네트가 되는 마리 안토니아를
포함한 다섯 여자 대공이 왕위 계승 순서대로 앉아 있는 모습도 확인해 볼 수
있다고 합니다.


 

프란츠 2세(오스트리아 제국 프란츠 1세)
프란츠 대공은 후일 신성로마제국의 프란츠 2세이자 오스트리아 제국의
초대 황제 프란츠 1세가 된다고 합니다.
할머니인 마리아 테레지아가 주문해서 그린 초상화라고 합니다.
초상화에는 그가 왕위 계승자로서의 적법성과 정당성, 그리고 기사도적 용기와
고결함을 상징하는 여러 물품들이 함께 묘사되어 있다고 합니다.


 

나폴레옹 1세
이번 전시에서 역시 가장 눈길을 끌던 나폴레옹의 초상화입니다.
부릅뜬 눈과 굳게 다문 입술, 화려한 제복에서 황제로서의 권위가 듬뿍
느껴지는 그림이었습니다. 이 초상화는 1805년 5월 26일 밀라노 두오모
대성당에서 열린 대관식을 기념하기 위해 그려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이 그림을 그린 안드레아 아피아니는 나폴레옹의 제 1궁정화가가 되었다고 합니다.


 

스테파니 황태자비
스테파니 황태자비는 프란츠 요제프 1세의 아들, 루돌프 황태자와
17세 생일이 얼마 남지 않은 어린 나이에 결혼했다고 합니다.
꽃으로 장식한 우아한 새틴 드레스를 입은 이 초상화는 약혼을 기념하여
선물로 그려진 그림이라고 합니다.


 

얼굴 부분을 확대해서 찍어본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선물만큼 인생은 화려하지 않았던가 봅니다.
루돌프 황태자가 내연녀 메리 베체라와 동반 자살한 뒤, 스테파니는
재혼해서 헝가리에서 행복하게 살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러시아군에 의해 궁에서 쫒겨나 수도원에서 생을 마감했다고 합니다.


 

엘리자베트(시시) 황후
시시로도 불리는 엘리자베트 황후는 오스트리아 국민이 가장 사랑하는
황후라고 합니다. 초상화는 그녀가 21세 때 그린 것으로 실물을 보는 듯
잘 표현된, 돋보이는 미모가 인상적인 그림이었습니다.
엘리자베트는 바이에른에서 자유롭게 성장했다고 합니다.
원래는 그녀의 언니가 오스트리아의 프란츠 요제프 1세 황제와 약혼하기로
되어 있었지만, 황제는 엘리자베트에게 첫 눈에 반해 버렸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녀는 예정에 없던 황후가 되었다고 합니다.


 

엘리자베트 황후의 모습을 더 가깝게 찍어본 것입니다.
당시 오스트리아 황실 예법은 숨쉴 틈 없이 엄격했는데, 비교적 자유롭게
성장한 엘리자베트에게는 적응하기 어려운 감옥과도 같은 곳이었다고 합니다.
결국 오스트리아에 마음을 붙이지 못한 비운의 황후 엘리자베트는
1898년 제네바 여행 도중 이탈리아인 무정부주의자에게 암살당하는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했다고 합니다.


 

프란츠 요제프 1세
바로 엘리자베트 황후의 남편이었던 프란츠 요제프 1세의 모습입니다.
그는 1848년 오스트리아 황제가 된 이후 무려 68년 간의 재위기간을
자랑하는 황제라고 합니다.
1867년에는 오스트리아, 헝가리 이중 제국을 결성하여 헝가리 왕으로도
즉위했다고 합니다. 재위 기간 동안 이중제국의 독특한 성격을 띤 절충적 정치체제로
균형과 안정을 유지하는데 나름대로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고 합니다.


 

전시실의 끝부분에서 만난 조선의 투구와 갑옷입니다.
1892년 조선은 오스트리아, 헝가리 이중 제국과 수교하면서 수호통상
조약을 체결했다고 합니다. 수교를 기념하여 고종임금은 프란츠 요제프 1세
황제에게 선물로 조선의 투구와 갑옷을 보냈다고 합니다.
바로 그 투구와 갑옷으로, 고종이 직접 입었는 지는 알 수 없지만
당시의 기술로 만들 수 있는 가장 높은 수준의 투구와 갑옷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을
관람하고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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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 < 합스부르크왕가 600년, 매혹의 걸작들 >을 관람하고...(2)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을 다시 만나고 왔습니다. 지난 번 관람시에는 주로 그림을 위주로 사진을 찍어 왔다면 이번 관람에서는 합스부르크 왕가의 소장품 위주로 사진을 찍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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