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 고달사지를 돌아보고~!!

2024. 2. 7. 14:10박물관.문화재

 

 

 

여주 부근을 지나는 길에, 평소 꼭 한 번 들러보고 싶었던

여주 고달사지를 들러 보았습니다.

구불구불 2차선 도로를 따라 고갯길을 넘으니, 사방이 산으로 들러싸인

넓디 넓은 평지가 눈앞에 펼쳐 졌습니다.

바로 고달사지였습니다.

입구에 있는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고달사지를 천천히 돌아 보았습니다.

 

고달사는 신라 경덕왕 23년(764)년에 창건되었다고 전하는 사찰입니다.

그러나 누구에 의해 지어졌는 지는 확실히 알 수가 없다고 합니다.

이곳은 신라말기의 대표적인 선승이었던 원감국사 현욱과 진경대사 심희가

머물렀으며, 고려시대에는 원종대사 찬유 등 당시 불교계를 선도했던

유력한 승려들이 주석하면서 중심적인 사찰이 된 곳이라고 합니다.

특히 고려 광종 때에는 왕실과 중앙정부의 후원을 받아 전국 3대 선원 중의

하나로 그 위상이 높은 곳이었다고 합니다.

조선시대 이후의 연혁은 전하는 내용이 많지 않다고 하며, 여러번의 발굴조사를

통한 결과로는 조선시대에 서서히 쇠락하다가 임진왜란 직후에 폐사된 것으로

확인되었다고 합니다.

 

 

 

고달사지 주변에는 방문객들의 편의를 위해 나무데크로 길이 조성되어 있었습니다.

그 길을 따라 천천히 걸으니, 가장 먼저 석조가 나타났습니다.

 

 

 

비교적 완전한 형태로 보존되어 있는 석조의 모습이었습니다.

석조는 승려들이 물을 담아 두거나 곡물을 씻을 때 사용하던 용기로, 원형,

팔각형, 직사각형 등의 다양한 형태로 만들었지만 직사각형이 가장 많다고 합니다.

여러 절터에서 발견된 석조는 그 크기나 위치가 제각각이지만, 이 석조처럼

건물터 안에서 발견된 예는 드물다고 합니다.

우수한 돌다듬기 기법과 장식 기법이 돋보이는 예술성이 뛰어난 석조이며

석조의 규모를 통해 옛 고달사의 위상이나 내력을 짐작할 수 있을 정도라고 합니다.

 

 

 

석조의 오른편에 거리를 두고 놓여져 있는 또다른 석조의 모습입니다.

이 석조는 파손이 심한 상태로 거의 형태를 잃은 모습으로 놓여져 있었습니다.

 

 

 

석조를 지나니, 건물터 위에 놓여져 있는 석조대좌가 나타났습니다.

보물로 지정되어 있는 소중한 문화재로, 대좌는 부처나 보살이 앉는 자리를 뜻합니다.

대좌 위에 불상이 놓여 있지는 않았지만 보존상태가 좋은 편이었습니다.

 

 

 

대좌의 받침돌은 위, 중간, 아래의 삼단으로 되어 있고 각기 다른 돌을

다듬어 구성했다고 합니다.

아래 받침돌과 위 받침돌에는 연꽃잎이 서로 대칭이 되도록 테두리를 따라

새겨져 있었는데, 이와같은 가운데 꽃잎을 중심으로 좌우로 퍼져 나가는 모양으로

꽃잎을 배열하는 기법은 고려시대 석조미술에서 많이 나타나는 특징이라고 합니다.

 

 

 

대좌의 아래 받침돌 부분을 찍어본 것입니다.

전체적인 조각 양식으로 볼때 고려 전기인 10세기 후반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고 하며, 조각 솜씨가 훌륭한 대표적인 사각 대좌라고 합니다.

 

 

 

석조대좌 뒷편에는 원종대사탑비가 세워져 있었습니다.

역시 보물로 지정되어 있는 문화재로, 원종대사 찬유를 기리기 위한 탑비였습니다.

 

 

 

신라 경문왕 9년인 869년에 태어난 원종대사가 고려 광종 9년인 958년

90세의 나이로 입적하자 고려 광종은 그의 시호를 '원종'이라 하고, 탑 이름을

'혜진'이라 하였다고 합니다.

 

 

 

정면에서 바라본 탑비의 모습입니다.

이 탑은 받침돌과 비석, 머릿돌로 구성되어 있었으나 1915년 비석이 넘어지면서

여덟 조각으로 깨어지자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보관해 오다가 지금은 여주박물관으로

옮겨 전시하고 있다고 합니다.

현재는 2014년에 복제한 비석이 세워져 있다고 합니다.

비문에는 원종대사의 가문, 출생, 행적 그리고 고승으로서의 학덕및 교화와

입적에 관한 내용들이 실려 있다고 합니다.

 

 

 

받침돌에 해당하는 거북의 머리 부분을 가깝게 찍어본 것입니다.

탑비에 기록된 내용에 의하면 원종대사 탑비는, 고려 광종 26년인 975년에

만들어진 것임을 알 수 있다고 합니다.

 

 

 

거북머리를 옆에서 바라본 모습입니다.

용머리에 가까운 거북머리의 모양이나 전체적인 조각 양식으로 볼 때

통일신라 후기에서 고려 전기로 이어지는 탑비 형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합니다.

 

 

 

고달사지는 석조대좌와 탑비외엔 대부분의 흔적들이 사라지고 빈터만

남아 있는 모습이었지만, 그러나 군데군데 그 흔적들이 남아 있기도 했습니다.

 

 

 

석조대좌가 놓여져 있는 건물터 주변에도 여러 유구들이 남아 있었는데

건물터의 크기와 유구들의 모습으로 추측해 볼때, 대단한 위용을 자랑했던 사찰이

존재했었음을 짐작해 볼 수 있었습니다.

 

 

 

고달사지의 가장 윗부분에서 내려다 본 모습입니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골짜기 사이에 아늑하게 자리잡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고달사지 윗부분에 아무런 안내판도 없이 덩그마니 놓여져 있는 유구 하나가 보였습니다.

언뜻 보기엔 바윗돌처럼 보였지만, 자세히 보면 누군가의 탑비를 세웠던 받침돌이란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거북의 머리 부분과 탑비는 사라지고 없었지만 분명 탑비의 받침돌이었습니다.

전체적인 크기는 원종대사의 탑비보다는 훨씬 작은 크기였습니다.

 

 

 

탑비가 사라져버려 누구의 탑비였는 지는 알 수 없겠지만, 정교하게 조각된 거북 무늬와

전체적인 형태로 볼때 분명 당대의 이름난 승려의 탑비였을 것으로 추측되는 모습이었습니다.

 

 

 

고달사지를 벗어나 이제 국보 제4호로 지정되어 있는 승탑을 만나기 위해 산길을 올랐습니다.

계단을 오르니,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넓은 공터가 펼쳐지며 소나무 사이로 승탑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승탑은 승려의 사리나 유골을 봉안하는 묘탑으로, 고승이 입적한 후

그의 죽음을 추모하고 존경심을 나타내기 위해 세워진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승탑에 대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아 승탑의 주인과 건립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전체적인 제작 기법으로 볼때 고려시대 초기인 10세기 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고달사지 승탑을 가깝게 바라본 모습입니다.

고려시대의 승탑으로 높이는 3.4m이며, 꼭대기의 머리 장식이 완전하지 않은 것만

제외하면 전체적인 모습이 대부분 잘 남아있는 승탑이라고 합니다.

가운데 부분엔 거북 한 마리가 입체적으로 새겨져 있고, 좌우로는 모두 네 마리의 용이

새겨져 있다고 합니다.

전체적으로 신라의 기본 조각 양식을 잘 따르면서도 각 부분의 조각에서 고려 특유의

특징을 보이고 있어, 고려시대 전기인 10세기 무렵 세워졌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돌을 다음은 솜씨가 세련되고 우수한 작품이라고 합니다.

 

 

 

중간의 거북 머리가 있는 부분을 가깝게 찍어본 것입니다.

오랜 세월이 지났음에도 조각의 부분 부분이 또렷하게 남아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좌측 부분을 찍어본 것입니다.

 

 

 

우측 부분을 찍어본 것입니다.

 

 

 

승탑을 뒷편에서 바라본 모습입니다.

 

 

 

승탑을 지나 계단을 내려오니, 원종대사탑이 보였습니다.

원종대사의 사리와 유골을 봉안한 승탑으로, 비교적 완전한 형태로 보존되어 있다고 합니다.

승탑이 세워진 연대는 탑비의 비문에 따르면, 고려 경종 2년인 977년이라고 합니다.

 

 

 

이 승탑 역시 보물로 지정되어 있는 문화재였습니다.

원종대사 찬유는 869년, 신라 경문왕 9년에 태어나 고려 광종임금 시대인 958년에

입적한 승려입니다. 신라 진성여왕 6년인 892년에 당나라로 유학을 떠나 29년간

중국에서 활동하다가 921년에 귀국하였다고 합니다.

고려 광종 대에는 왕사(王師)가 되어 증진대사라는 호를 받았고, 이후 임금의 스승이 되는

고승에게 내리던 최고의 법계인 국사(國師)로 추대되었다고 합니다.

 

 

 

승탑의 중간 부분을 가깝게 찍어본 것입니다.

용의 형상을 닮은 거북의 머리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좌우로는 용 네 마리가 구름속을 날고 있는 형상이 새겨져 있다고 합니다.

 

 

 

승탑의 뒷편에서 찍어본 모습입니다.

 

 

그리고, 고달사지의 유물 중 또다른 특이한 문화재가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보물로 지정되어 있는 쌍사자석등으로, 현재 국립중앙박물관 야외전시장에서

그 모습을 만나 볼 수 있었습니다.

아래 사진들은 여름에 국립중앙박물관을 찾았다가 찍어본 사진들로, 옮겨 봅니다.

 

 

고달사지 쌍사자석등의 모습입니다.

사찰에서 법등을 밝히던 고려시대의 석등이라고 합니다.

 

 

 

본래 고달사지에 넘어져 있던 것을, 1959년 경복궁으로 옮겨 왔다가

다시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겨 보관하고 있다고 합니다.

높이는 2.43m이며 원래는 붉을 밝히는 화사석 까지만 남아 있었으나, 2000년에

실시한 발굴조사에서 지붕돌이 발견되면서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고 합니다.

 

 

 

고달사지 쌍사자석등이 특이한 것은, 우리나라 쌍사자석등의 대부분이 서있는

자세인 것에 반해, 이 석등은 쌍사자가 웅크리고 앉아 있는 모습이 특징이라고 합니다.

조각 수법으로 보아, 고려 전기인 10세기 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옆에서 바라본 쌍사자의 모습입니다.

 

 

 

 

 

이렇게, 여주 고달사지를 다녀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