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왕가의 무덤이 모여 있는 곳... 동구릉 한바퀴 돌아보기~!

2014. 1. 9. 08:43박물관.문화재


 

 우리나라 최대 왕릉군(群)이면서 조선 왕가의 무덤이 9기나 모여 있는

동구릉을 한바퀴 돌아 보고 왔습니다.

현재 조선의 모든 왕릉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어 있으며,

특이 이곳 동구릉에는 태조 이성계의 왕릉인 '건원릉'이 위치해 있어서

조선 왕릉의 대표적인 유적지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매표소를 지나 홍살문을 지나면 아름드리 나무들이 줄지어 서있는

울창한 숲이 가장 먼저 방문객들을 반깁니다.

 

 

 

동구릉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능은 수릉입니다.

수릉은 제23대 순조의 아들인 효명세자의 능으로, 22세로 요절했으나

아들 헌종이 왕위에 오르면서 익종으로 추대되고 고종 때 문조로 추존되었다고 하네요.

 

 

 

그의 비 신정왕후와의 합장릉으로 신정왕후 조씨는 철종이 후사없이 승하하자,

흥선대원군과 함께 고종을 왕위에 올린 바로 그 대비마마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여인입니다. 83세까지 천수를 누렸다고 하네요.

 

 

 

두 번째로 만나는 능은 현릉으로 제5대 문종임금과 단종의 어머니인

현덕왕후의 능입니다.

 

 

 

문종임금은 세종임금의 맏아들로 태어나 8세에 세자가 된 뒤 29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세자 자리에 머물렀다고 하네요.

1450년 세종임금이 승하하자 왕위에 올랐으나 건강악화로 재위 2년 만에

39세의 나이로 승하했다고 합니다.

 

 

 

현덕왕후는 세자궁에 궁녀로 들어왔다가 세자의 후궁이 된 뒤 당시 세자빈이었던

순빈 봉씨가 폐위되자 세자빈에 올랐다고 합니다.

그러나 단종을 낳은 후 산후병으로 세상을 떴는데 1450년 문종이 즉위하면서

왕비로 추봉되었다고 하네요.

 

 

 

삼국지의 내용을 빌자면, 유비는 숨을 거두면서 제갈공명에게 아들 유선을

잘 보필해 줄 것을 당부하면서 충격적인 당부를 덧붙입니다.

혹 유선이 황제의 자질이 부족하거든 공명 스스로가 황제가 되어 나라를 다스려

줄 것을 당부하였다고 합니다. 그 말을 들은 공명은 놀라움에 눈물을 흘리며

끝까지 충성을 다할 것을 맹세하였다고 합니다.

어쩌면 못난 아들의 황위를 지키기 위해 유비가 택할 수 밖에 없었던 마지막

계책이었을 것입니다. 혹 일어날지도 모를 공명의 역심을 먼저 얘기를 꺼냄으로서

미리 차단한 것이지요.

 

어쩌면 문종임금도 김종서가 아니라 수양대군을 불러 유비가 공명에게 당부하듯

단종을 부탁했더라면 계유정난이나 단종애사 같은 비극적인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문종이 수양대군을 믿지 못하면서 이미 비극은 시작되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현릉을 지나면 이렇게 소나무들이 능을 호위하는 병사들처럼

줄지어 서있는 길이 나타납니다.

 

 

 

동구릉은 전체가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산책이나 나들이하기에도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이기도 합니다.

계절에 상관없이 구리 시민들의 멋진 휴식처로 각광을 받고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소나무 숲을 지나 세 번째로 만나게 되는 능이 바로 태조 이성계의 능,

건원릉입니다.

 

 

 

정자각 너머로 풀이 무성하게 자라있는 무덤이 바로 건원릉입니다.

건원릉의 봉분을 뒤덮고 있는 것은 억새풀로, 말년에 고향을 그리워하며

그 곳에 묻히기를 원했던 태조를 위해 아들 태종이 태조의 고향 영흥의 흙과

억새를 가져다 봉분에 심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고 하네요.

 

 

 

정자각의 문을 통해서 바라본 건원릉입니다.

건원릉을 담당하고 있는 문화해설사님이 알려주신 멋진 구도입니다.

 

 

 

조선을 개국한 일세의 영웅이었지만 그로 인해 왕위를 탐하던 자식들의

피로 얼룩진 왕자의 난을 두 차례나 지켜보며 비탄의 세월을 보내기도 했던

태조 이성계...... 말년에는 불도에 정진하다 1408년 5월 24일 창덕궁에서

74세의 나이로 승하한 뒤 건원릉에 묻혔다고 하네요.

 

 

 

네 번째로 만나는 능은 목릉으로, 제14대 선조와 두 왕비의 능이 있는 곳입니다.

건원릉 뒷편에 있는 능으로, 오랫동안 개방되지 않고 있다가 2006년 일반에 공개되기

시작한 곳입니다.

 

 

 

목릉의 전경입니다.

목릉은 선조와 두 왕비, 의인왕후, 계비 인목왕후의 능이 각각 따로 조성되어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선조의 능을 기준으로 좌측 뒷편이 의인왕후의 능이며

좌측 앞으로 바라보이는 능이 인목왕후의 능입니다.

 

 

 

의인왕후의 능입니다.

선조의 첫 번째 왕비였으나 몸이 허약하여 아이를 낳지 못하고 4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고 하네요.

 

 

 

두 번째 왕비인 인목왕후의 능입니다.

우리에겐 영창대군의 어머니 인목대비로 잘 알려진 여인입니다.

19세의 나이로 왕비가 된 뒤 영창대군을 낳았지만 선조 승하 후에 광해군이

왕위에 오른 뒤, 권력의 정쟁속에서 자신은 폐비가 되고 친정 아버지 김제남은

사사되었으며, 아들 영창대군은 강화도로 유배되었다가 아홉살의 나이로

살해 당하는 비운을 겪는 기구한 여인이기도 했습니다.

 

 

 

인조반정 이후 대왕대비로 복위 되어 다시 궁궐로 돌아 온 뒤

4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목릉은 동구릉의 능 중에서 유일하게 직접 능을 돌아볼 수 있도록

공개가 되어 있는 곳입니다. 목릉을 올라가보기로 했습니다.

 

 

 

선조는 조선의 임금들 중에서 적자 소생이 아닌 신분으로 왕위에 오른

최초의 임금이었습니다.

명종이 후사없이 승하하자, 평소 명종이 총애했던 조카 하성군으로 하여금

왕위를 이어받게 했는데 바로 그가 선조였습니다.

 

 

 

선조의 아버지는 중종임금의 후궁인 창빈 안씨 소생의 덕흥군으로

선조는 그 덕흥군의 셋째 아들이었습니다.

 

 

 

앞에서 바라본 목릉의 전경입니다.

 

 

 

 

뒷편에서 바라본 목릉의 모습입니다.

정교하게 조각된 병풍석과 돌 난간이 능을 둘러싸고 있었습니다.

 

 

 

능 주변은 여러 개의 동물 석상이 능을 호위하듯 지키고 있더군요.

 

 

 

 

능 앞에 서 있는 문인석과 무인석의 모습입니다.

 

 

 

 

선조는 즉위 후, 당시 대학자였던 이황, 이이 등 인재를 등용하여

선정에 힘쓰는 한편 많은 서적을 간행해 유학을 장려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선조 시대부터 시작된 붕당정치의 심각한 당쟁으로 인해 정치는

불안정해지고 또 임진왜란의 발발로 인해 국토가 황폐화 되는 등

큰 피해를 입기도 한 비운의 왕이었습니다.

 

 

 

1608년 59세를 일기로 41년 동안의 긴 치세를 마감하고 승하하였다고 합니다.

조선 최초로 적자가 아닌 서출 출신의 신분으로 왕이 된 것에 대한 남모를

자격지심이 강했던 선조는 늦은 나이에 두 번째 왕비였던 인목왕후와의 사이에서

영창대군이 태어나자, 이미 세자로 책봉되어 있던 광해군을 폐하고 영창대군을

세자로 책봉할 마음을 품고 있었나 봅니다.

하지만 선조의 급사로 인해 뜻을 이루지 못하는데, 결국 이것이 영창대군이

비극적인 죽음을 맞게한 이유가 되었을 것입니다.

 

 

 

목릉을 돌아 본 뒤, 다시 건원릉 앞을 지나 다섯 번째로 휘릉에 들렀습니다.

휘릉은 조선 제16대 임금이었던 인조의 계비 장렬왕후의 능으로, 인조의 승하 후

26세의 나이로 대비가 된 뒤 효종, 현종, 숙종 대에 이르기 까지 4대에 걸쳐

왕실의 어른으로 지냈다고 하네요.

하지만 인조와의 사이에 자녀를 두지는 못했다고 합니다.

 

 

 

휘릉을 지나 원릉으로 가는 길도 이렇게 울창한 소나무 숲이더군요.

 

 

 

 

그리고 원릉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원릉은 제19대 영조임금과 계비 정순왕후의 능입니다.

사도세자의 아버지로 우리에게 더 잘 알려져 있는 왕으로, 조선의 임금들 중

가장 오랫동안 장수하면서 역시 가장 긴 재위기간을 기록한 왕이기도 합니다.

나이는 83세에 이르렀고 재위기간은 52년이었다고 하네요.

 

 

 

계비였던 정순왕후는 영조의 나이 66세에 15세의 나이로 왕비가 되었는데

조선의 수많은 왕비들 중, 가장 악녀로 취급받고 있는 여인이기도 합니다.

사도세자의 죽음에 빌미를 제공했고 권모술수로 끝없이 권력을 탐했던 여인입니다.

6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떴는데, 혹자는 그녀가 조선에 끼친 피해가 임진왜란과

맞먹을 정도라고 말할 정도였으니까요.

 

 

 

원릉에서 이렇게 호젓한 숲길을 지나면 여섯 번째로 경릉을 만납니다.

 

 

 

 

경릉은 제24대 헌종과 두 왕비, 효현왕후, 효정왕후의 능입니다.

합장릉이 아닌 각각의 봉분을 조성한 삼연릉으로, 조선 왕릉 중에서 유일한

형태라고 하네요. 순조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헌종은, 순조의 손자로

22세에 요절한 효명세자의 아들이며 8세에 즉위했다고 하네요.

동구릉에서 첫 번째로 만나는 수릉이 바로 헌종의 아버지인 효명세자의 능입니다.

재위 중 세도정권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안동 김씨와 풍양 조씨의

권력 투쟁에 휘말리다가 23세로 짧은 생을 마감했다고 합니다.

 

 

 

경릉을 돌아 나와 여덟 번째로 혜릉을 향해 발길을 옮겼습니다.

 

 

 

 

혜릉은 제20대 경종의 원비 단의왕후의 능으로 경종은 장희빈의 아들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왕이기도 합니다.

단의왕후는 세자빈으로 책봉된 뒤 경종이 즉위하기 2년 전 세상을 떠났으나

경종 즉위 후 왕비로 추봉되었다고 하네요.

 

 

 

마지막으로 만나는 능은 숭릉으로, 그동안 공개되지 않고 있다가

2013년 1월부터 일반에 공개되기 시작한 능입니다.

 

 

 

숭릉은 조선 제18대 현종과 명성왕후의 능으로, 장희빈으로 유명한 숙종임금의

아버지가 되는 임금입니다. 조선의 왕들 중, 유일하게 타국 청나라에서 태어난 왕으로

병자호란 후 봉림대군(효종임금)이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 있을 때 심양에서

태어났다고 하네요. 19세에 왕위에 올라 34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떴다고 합니다.

 

 

 

명성왕후 김씨는 10세의 나이로 세자빈에 책봉된 뒤 현종의 즉위와 함께

왕비가 되었으며 4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지능이 비상하고 성격이 과격하여 궁중의 일을 처리할 때 감정적이고

거친면을 보였다고 하네요.

 

 

 

이렇게 동구릉의 아홉 능을 모두 돌아 보았습니다.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더군요.

 

 

 

숭릉을 돌아나오는데 마침 다정한 연인이 숭릉을 향해 걸어 가더군요.

 

 

 

 

동구릉에 머무는 동안 그 연인들이 여러 번 카메라에 들어 옵니다.

 

 

 

 

 

'동구릉'이란 지명은, 조선의 도성인 한양을 기준으로 동쪽에 위치한

아홉 개의 능이 있는 곳이란 뜻을 담고 있습니다.

사계절 언제나 호젓한 숲길을 산책하듯 걸으며 역사의 숨결을 직접 체험하고

느낄 수 있는 아름다운 곳입니다.

이렇게 동구릉을 다녀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