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아트센터에서 '박대성 화백'의 개인전, <정관자득(靜觀自得):Insight>을 관람하고...!

2021. 8. 25. 06:30세상 이야기

 

인사동의 인사아트센터에서 수묵화의 대가
박대성 화백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다녀와 봤습니다.
<정관자득(靜觀自得):Insight>이란 주제로 열리고 있었는데
정관자득이란, '사물이나 어떤 현상을 고요히 관찰하면
스스로 진리를 깨닫는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개인전은 전시관의 1층과 2층엔 산수화가 걸려 있었고
지하전시관에는 '고미시리즈'가 전시되고 있었습니다.
그 중, 산수화들만 옮겨 봅니다.



1층 전시관을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만나는 작품인
< 유루 >(柳樓)입니다.
푸릇푸릇 새싹이 돋고 있는 늘어진 버드나무 가지 너머로
물 위에 떠있듯 서있는 기와지붕 건물이 오히려 배경처럼
바라보이는 아름다운 그림이었습니다.
그림의 크기가 242X120.5cm에 달하는 꽤 큰 그림이었습니다.




< 대동강(연광정) >이란 제목의 그림입니다.
54X69.5cm 크기의 그림이었습니다.




나란히 걸려있는 < 병산서원 >입니다.
병산서원의 만대루가 낙동강 너머의 풍경 속에
편안히 안겨있는 듯한 모습이었습니다.




전시관의 벽면을 가득 채우며 걸려 있는 이 그림은
< 한라산 봉우리 >입니다.
제주의 대표적인 풍경인 주상절리와, 주상절리 사이로
쏟아져 내리고 있는 폭포 너머로 백록담이 표현된
한라산의 봉우리가 어렴풋이 바라보이는 그림이었습니다.
그림 위에는 <탐라 한라산 백록담>이라는 한자가
적혀 있었습니다.
그림의 전체 크기는 가로 490.5cm, 세로 347.5cm로,
전시장 바닥 위로 그림이 드리워져 있을 정도의 크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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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Ⅱ >
100X60cm 2021년에 그리신 작품이라고 합니다.




< 송Ⅲ >
나란히 걸려 있는 같은 크기의 작품으로 역시 2021년에
그리신 작품이라고 합니다.


《 마음을 닦고 다스리는 것이 먼저고, 맑고 부끄러움이 없는
삶의 태도가 먼저다. 자비로움과 자유로움, 거리낄 것 없는
삶의 태도를 100% 실천하느냐가 목표이다. 그래야 붓도
제 자리를 간다. 그것이 궁극적으로 예술의 완성된 경지라고
생각한다. 모든 것은 사람이 어떤 마음가짐을 갖고 다루느냐가
중요하다고 본다. 만물은 '동일체'이며 나뭇가지가 바람에
흔들리는 것도 그냥 흔들리는 것이 아니고, 다 이유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 ...... 소산 박대성




< 청암정 >
봉화 닭실마을의 청암정을 주제로 그린 작품이었습니다.




< 묘향산 상원사 >
역시 2021년에 그리신 작품으로, 1층에 전시되어 있는
그림 중 '유루'를 제외하고는 모두 2021년에 그리신
작품들로 채워져 있었습니다.




< 독락당 >
경주 옥산마을 옥산서원 부근에 있는 독락당을
그린 작품이었습니다.




그리고, 1층 전시관의 안쪽 벽면을 모두 채우고 있는
< 불국 설경 >입니다.
하얀 눈이 쌓여있는 여러 그루의 소나무 너머로, 어렴풋이
불국사의 청운교와 백운교, 그리고 자하문이 바라보이는
아름다운 풍경으로 채워진 그림이었습니다.
그림의 크기가 자그만치 가로 448cm 세로 199.5cm에 달하는
그야말로 대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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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오른쪽의 청운교와 백운교, 그 위로 자하문이 보이는
부분만을 따로 찍어 본 것입니다.




그림 왼쪽의 연화교와 칠보교, 그리고 범영루가 보이는
부분만을 따로 찍어 본 것입니다.




< 백두폭포 >
그림의 크기가 140cmX60cm로 설산과 함께 어우러진
폭포의 모습을 장엄하게 표현한 그림이었습니다.




< 금강 >
79cmX88.5cm 크기의 그림으로 1층 전시관의
마지막에 걸려 있는 그림이었습니다.
이 그림을 끝으로 2층 전시관으로 발길을 옮겼습니다.


《 무엇을 그릴지 억지로 짜내 지도 않고, 잘 그리려 하지도 않고,
꾸미려 하지도 않는다. 작가 자신의 마음과 몸이 가는 대로 하나씩
풀어낸 화면은 필과 묵의 조화를 이루며 우리를 그의 세계로 안내한다.
무거운듯하나 어둡지 않고, 활달하지만 가볍지 않은 중용의 경계를
작품을 통해 보여준다. 작가의 먹색은 흑색(黑色)이 아니라 현색(玄色)이다.
세상 만물을 다 표현할 수 있는 색이 현색인 것을 작가의 수묵화를 통해
보게 한다. 어두운 밤 어스름한 달빛 풍경도 작가의 작품에서는 두렵게
느껴지지 않고, 고요함과 평안함을 주고 사색에 빠지게 한다. 》
-----'이은호'...(홍익대학교 교수)



2층 전시관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작품인 < 칠성각 >입니다.
칠성각은, 수명을 연장시켜 준다는 칠성신을 모신 사찰의
건물이라고 합니다.




< 추정 >
노란 은행나뭇잎도 거의 떨어지고 장독대 아래로
어지러이 쌓여있는 낙엽이 왠지 돋보이는, 늦가을의
적적한 풍경을 표현한 작품으로 보였습니다.




< 만월 >
호수 위의 정자 너머로 보름달이 떠오르고 있고
철지난 연잎과 연밥들이 호수를 향해 고개를 숙이고 있는,
늦가을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습니다.




< 버들 >
1층 전시관에서 맨 처음 만났던 <유루>와 비슷한
작품으로 보였습니다.




< 분황사 >
경주 분황사의 주제로 그린 작품입니다.
그림의 크기가 254cmX279cm로, 분황사 모전석탑을 배경삼아
길게 늘어져 있는 나뭇가지 위에 무심한 듯 앉아 있는
까치 한 마리가 왠지, 미소를 짓게하는 그림이었습니다.




< 금수강산 >
그림의 크기가 185cmX174.5cm의 대작으로, 그림 옆에는
그림에 관한 화가의 설명이 함께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 강산을 열 번도 넘게 가보고 많이 그려봐서 주요 봉우리들의
특징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 새로운 구도를 고민하던 중
물고기의 시각으로 보면 둥글게 보인다는 것에서 착안했다.
또 '금강'이라는 단어가 불교철학의 핵심인 것에서 나왔다고 생각했고,
불교를 상징하는 것으로 연꽃이 연상되었다. 그래서 피어오르는 찰나의
연꽃봉오리 안에 금강산을 넣고 어안(魚眼)으로 형상을 상상해서
그린 것이다. 》 ......소산 박대성



그리고, 2층 전시관의 안쪽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또 하나의 대작인 < 금강설경 >입니다.
금강산의 설경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그림으로,
그림의 크기가 가로 772cm 세로 223cm로, 가로의 길이가
거의 8m에 가까운 어마어마한 그림이었습니다.
< 클릭해서 큰 그림으로 보시길 권합니다. >



그림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게 관람객의 모습과 함께
찍어본 사진입니다.



금강설경의 부분을 나누어서 찍어본 것입니다.
왼쪽 부분의 그림으로, 그림 아래쪽에는 홍난파 작곡의
가곡으로도 유명한 이은상 시인의 '금강에 살어리랏다'가
적혀 있었습니다.



그림 한가운데 부분을 찍어 본 것입니다.



그림 오른쪽 부분을 찍어본 것입니다.
그림을 바라보는 내내 이 놀랍고도 기막힌 대작의 웅장함에
그저 입을 다물지 못할 따름이었습니다.




그리고, 2층 전시관의 마지막에 나란히 걸려있는
제주 천제연폭포구룡폭포를 그린 작품입니다.



< 구룡폭포 >
세로의 길이가 무려 140cm, 가로의 길이가 60cm인 작품으로
관람객들의 발길을 오랫동안 머물게 하는 아름다운 작품이었습니다.



< 제주 천제연 >
천제연폭포 너머로 바라보이는 백록담이 표현된
한라산의 모습이 눈길을 사로잡는 작품이었습니다.



2층 전시관 입구에 걸려있는 박대성 화백의 사진을
찍어 본 것입니다.
작품에 몰두하고 있는 화백의 모습이 담겨져 있었습니다.




박대성 화백은 최근, 다소 뜻밖의 사건으로 이름을 널리
알리게된 계기가 있었다고 합니다.
지난 3월, 경주 솔거미술관에서 열린 작품 훼손 사건이
바로 그 사건이라고 합니다.

박 화백의 전시를 보러왔던 아이가, 전시장 바닥 위로
길게 늘어진 모습으로 전시되어 있던 작품 위로 올라가
이를 훼손했고, 뒤늦게 따라온 그의 부모는 아이를 말리기는 커녕
그 모습을 사진으로 찍으며 방관했던 사건이라고 합니다.
이 일로, 약 1억원의 가치에 해당하는 화백의 작품에
아이의 손때와 발자국이 그대로 찍혀버렸다고 합니다.
영상이 공개되면서 관람문화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들끓고
배상에 관한 이야기가 쏟아져 나왔을 때, 박대성 화백은
대인배의 면모와 인품을 보이며 단호히 <불문에 붙이라.>라며
더 이상 문제삼지 않았다고 합니다.

복구에 관한 얘기가 나왔을 때도 그 또한 역사이니 그대로
두겠다고 하시며, 이 일로 인해 오히려 세간의 관심이 높아진 것을
비유하시며 <'그 놈' 소동이 오히려 '봉황의 발자국이 되었네'>
하시고 껄껄 웃으셨다고 합니다.
박대성 화백의 대인배다운 인품이 널리 알려진 계기가 된
사건이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박대성 화백의 개인전을 관람하고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