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11. 6. 20:05ㆍ추억 이야기
오늘 결국...
그녀가 키우던 공주를 저 세상으로 떠나 보내고 말았다.
지난 여름 영흥도로 함께 여행을 다녀온 후에 심한 당뇨로
투병 생활을 하던 공주는 약 4개월만에 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올해 나이 열네 살로, 11월에 태어나서 11월에 세상을 떠났으니
꼬박 14년을 다 살고 떠난 셈이다.
사람의 나이로 환산하면 여든을 훌쩍 넘긴 나이라고 했다.
어쩌면 장수를 누리고 떠난 셈이 되지만, 아픈 곳 없이
편하게 살다가 떠나길 바랬는데 결국 심한 당뇨에 걸려
고생을 하다가 떠난 것이다.
죽음이 다가오고 있었던 탓인지 공주는 어젯 밤부터
갑자기 이상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갑자기 경련이나 발작을 일으키기도 하고 계속 구석진 곳을 찾아
온 방안을 헤매고 다니기도 했다.
거의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다시피 하면서 보듬어 주기도 하고
토닥거리기도 하면서 달래보려 했지만, 쉽게 수그러들지 않는 것이었다.
양 등짝은 이미 건성 피부로 인해 가려움증이 심해지자 공주가
계속 혀로 핥은 흔적으로 심하게 헐어 버렸고, 그 상처의 고통이
공주를 더 힘들게 만들었을 것이다.
이른 아침이 되면서 창밖엔 빗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공주는 여전히 온 방안을 헤매고 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경련을 일으키는 주기가 점점 잦아지기 시작했다.
공주는 그렇게 오전 11시45분경 세상을 떠났다.
경련을 일으키는 공주를 부둥켜 안고 말해 주었다.
너무 힘들어 하지 말고 떠나라고~ 너와 함께 보낸 시간들이
행복했었다고~ 그리고 너를 사랑한다고...!
조용히 누워있는 공주의 마지막 모습은 무척이나 평화로워 보였다.
그녀와 나는 공주의 장례를 미리 준비해 두고 있었다.
평소 그녀와 내가 자주 등산을 했던 구리시 아차산 자락에
공주의 무덤을 만들어 주기로 결정을 해놓고 있었다.
그래야만 우리가 자주는 아니더라도 가끔은 공주의 무덤을
찾아 볼 수 있을테니까...
내가 생각해둔 장소는 예전 내가 자주 산책을 나갔던
오솔길 주변이었다.
인적이 드문 곳이기도 하고 숲이 울창하며, 가장 큰 이유는
내가 가장 눈이 익은 장소여서 무덤의 위치를 언제라도
쉽게 찾을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산으로 오르는 길 입구에 다다랐을 때 비는 그쳐 있었다.
그녀가 공주의 시신이 담긴 박스를 들고 나는 앞장 서서
오솔길을 향해 걸었다.
적당한 장소를 골라 준비해 간 모종삽으로 깊게 땅을 파고
공주를 정성껏 묻은 뒤, 낙엽으로 무덤을 덮어 주었다.
혹여 산짐승이 무덤을 파헤치지 못하게 커다란 돌을 가져다가
무덤 위에 놓아 두었다.
사진 속에 노란 단풍잎 한 장이 놓여져 있는 곳이 무덤의 위치이다.
그녀는 공주에게 보내는 마지막 편지와 공주가 좋아했던 소시지,
그리고 사료 한 줌을 공주와 함께 묻어 주었다.
평생을 방안에서만 보내게 해서 세상 구경을 시켜주지 못한 것을
가장 안스럽고 미안하게 생각하던 그녀였는데, 죽어서야 드디어
바깥 세상을 마음껏 보게 된 것이다.
공주가 묻힌 자리는 고개를 돌리면 구리시가 훤히 내려다 보이고
더러는 등산객들의 왁자지껄한 말소리가 훤히 들려오는 곳이기 때문이다.
공주의 무덤앞엔 커다란 떡갈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다.
많은 새들이 찾아와 노니는 곳이기도 하며 더러는 딱따구리가
가끔 찾아와 시끄럽게 나무를 쪼아대기도 하는 곳이다.
봄이면 산벚꽃과 아카시아꽃이 피어나고 여름엔 하늘을 뒤덮을 만큼
녹음이 우거지는 곳이며, 가을엔 눈부신 단풍이 오솔길 주변을
물들이는 곳이기도 하다.
이제 그 모든 것들이 공주의 차지가 되고 놀이터가 된 것이다.
그녀는 아무래도 발걸음이 쉬 떨어지지 않는 모양이다.
무덤앞에 서서 또 눈물을 떨구고 있었다.
내가 공주를 만난건 그녀를 처음 만나고 얼마 뒤인 약 8년전이었다.
그러니까 공주의 생애중 약 절반 정도는 나와의 추억을 쌓은
시간이기도 한 것이다.
공주는 나를 무척이나 좋아했고 나 역시 공주를 무척이나 사랑했다.
우리가 만나는 장면은 반가움에 지쳐 요란할 정도였다.
내가 옆에 머무는 동안은 나에게서 한시도 눈길이 떨어지지 않았고
끊임없이 내 손길이, 내 눈길이 자기에게 머물러주길 바랬다.
나에게도 공주는 소중한 존재였던 것이다.
그녀를 달래서 돌아서는 길... 이번엔 내가 어깨를 들썩이며
결국 눈물을 터뜨리고 말았다.
마음 저 아래에서 부터 슬픔이 하염없이 솟구치고 있었다.
바람 한 줄기가 단풍잎 물든 나뭇가지를 흔들고 있었다.
인연이란 이런 것인가보다. 그 대상이 사람이든 동물이든
가까운 인연이 우리 곁을 떠난다는 것은 참으로 슬픈 일이다.
내 몸의 한 부분을 도려내듯 가슴 아픈 일이다.
언제 다시 이 낙엽이 무성하게 덮힌 오솔길을 걸어
공주를 만나러 올 것이다.
그러면 공주와의 추억이 이 숲을 가득 채울 것이다.
그때는 슬픔보다 반가움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
공주와의 기억이 이젠 더 이상의 슬픔이 아니라,
인생의 어느 한 부분을 소중히 채워 주었던 반려로서 기억되기를...
슬픔이 성숙된 행복으로 승화되어 우리 곁에 머물기를...
그래서 그녀와 나, 또한 더 행복해져 있기를...!
다시 되돌아 내려오는 길, 늦가을의 정취가 숲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문득 예전 내가 혼자서 이 오솔길을 천천히 오르던 기억이 떠올랐다.
이 산 아래에서 살았던 나는 유난히 이 오솔길을 좋아했었다.
툭하면 혼자 이 곳을 걸어 오르곤 했었는데, 가장 인상깊었던 풍경은
봄의 풍경이었다.
봄이면 오솔길이 산벚꽃이나 아카시아 꽃잎의 낙화로 눈이 내린듯
하얗게 변해 있었는데 그러면 나는 탄성을 지르며 오솔길을 배회하곤 했었다.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게 되면서 아주 뜸하게 찾아오는 곳이 되고 말았지만
그러나 내 마음 한켠엔 언제나 아련한 향수처럼 남아있던 곳이었다.
그리고 이젠 더욱 더 소중한 길이 될 것이다.
이제 이 길을 걸어 오르는 감회는 예전의 그것과는 사뭇 다를 것이다.
이제는 이 오솔길이 설레임이 가득찬 길이 될 것이다.
나는 그녀가 빨리 이 슬픔을 털어내기를 바란다.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이 슬픔이 인생이 되지를 않길 바란다.
그녀를 집으로 보낸 후, 전화를 걸었더니 그녀가 울고 있었다.
나 역시 이 글을 쓰고 있는 동안 몇번이나 눈물이 흘러 내렸다.
공주도 바랄 것이다. 우리가 슬픔으로 자기를 기억하기보다는
행복으로 기억해 주기를... 그 행복으로 오래오래 마음속에
자기의 이름을 품어 주기를...!
그렇게 공주를 보내고 돌아왔다.
사랑한다. 공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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